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을 겪으면서 우리나라에서 저가 상품 가격이 고가 상품보다 더 크게 오르는 '칩플레이션'(cheapflation)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분석됐다.
가격이 낮다는 의미의 '칩'(cheap)과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인 이 현상은 고물가 시기 저렴한 상품을 주로 소비하는 취약계층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더 가중됐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18일 보고서에서 "대한상공회의소가 3천여개 조사 대상 판매점의 판매 기록을 저장한 '스캐너 데이터'를 이용해 가공식품 상품의 가격 분위별 물가지수를 산출한 결과, 팬데믹 이후 칩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지난 2019년 평균 가격을 기준으로 동일 품목 내 상품들을 1~4분위로 분류한 뒤 2020년 1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분위별 누적 상승률을 비교했다.
예를 들어 소시지류 품목을 '판매점1 A햄, 판매점2 B햄, 판매점1 C소시지, 판매점3 D햄' 등으로 나눠 가격에 따라 줄을 세우고 그 변동을 분석했다.
그 결과 1분위 저가 상품의 가격 상승률은 16.4%에 달한 반면, 4분위 고가 상품의 가격 상승률은 5.6%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연구팀은 더 나아가 칩플레이션이 가계 소득계층 간에 체감 물가(실효 물가)의 격차를 벌려 인플레이션 불평등을 심화하는 요인이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 2019년 4분기~2023년 3분기 중 하위 20% 저소득층의 실효 물가 누적 상승률은 13.0%에 달해 상위 20% 고소득층(11.7%)보다 1.3%포인트(p) 높았다.
칩플레이션 원인으로는 수입 원자재 가격의 급격한 상승을 지목했다.
저가 상품에는 국내산 재료보다 수입 원자재가 많이 사용되는데, 팬데믹 이후 수입 제조용 원재료의 국내 공급 물가가 국내 생산·출하 원재료보다 더 크게 상승했다는 것이다.
저가 상품 수요 증가에 따른 가격 상승도 있었다.
연도별 상품 가격 분위별 매출액 비중을 보면, 저가 1분위 상품의 매출 비중은 팬데믹 이후 늘고, 고가 4분위 매출 비중은 줄어 대조를 보였다.
연구팀은 "저소득층이 더 고통받는 칩플레이션은 물가 급등기에 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며 "통화정책을 통해 전체적으로 물가안정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결국 저소득층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길"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 정책 측면에서는 중저가 상품의 가격 안정에 집중함으로써 취약계층의 부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며 "할당 관세나 가격 급등 품목에 대한 할인 지원 때 중저가 상품에 선별 지원을 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겠다"고 덧붙였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