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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벗'으로 요약되는 2024년…2025년은?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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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국제금융시장은 주요국 중앙은행이 피벗을 추진한 것으로 요약된다. '웩더독(wag the dog·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상)'이라 불릴 만큼 신흥국을 필두로 스위스, 스웨덴 등 비(非)유로 선진국 중앙은행이 피벗을 추진했다. 같은 해 6월부터는 유럽중앙은행(ECB), 영란은행(BOE), 미국 중앙은행(Fed), 그리고 한국은행(BOK) 순으로 동참했다.

하지만 2025년을 목전에 두고 선진국 중앙은행과 한국은행이 피벗 '실수론'과 '실기론'에 동시에 시달리면서 중앙은행 무용론이 일고 있는 가운데 Fed의 경우 폐지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전자는 피벗을 추진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다는 의미로, 후자는 추진 방향은 맞았지만 '선제성(preemptive)'을 잃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Fed는 빅컷을 단행한 지 한 달도 채 못 된 때부터 '파월의 실수(Powell’s failure)'에 시달려 왔다. 9월 FOMC 회의에서 빅컷을 추진한 이후 발표되는 경제지표가 워낙 좋게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4분기 성장률도 다시 3.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오쿤의 법칙상 GDP 갭을 구해보면 1% 포인트 이상 인플레 갭이 발생하는 수준이다.



각종 물가 지표는 여전히 목표치를 웃돌고 있는 가운데 지난 10월 이후부터는 재상승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최근처럼 '노 랜딩'이란 용어가 나올 만큼 펀더멘털이 강한 여건에서 피벗을 추진하면 1980년대 초 당시 Fed 의장이 저지른 '볼커의 실수(Volker’s failure)'를 다시 저지르지 않겠느냐는 비판이 통화론자를 중심으로 제기하고 있다.



지난 2022년 3월 금리 인상 때도 Fed는 실기론에 시달렸다. 2021년 4월 이후 모든 물가가 급등하자 '일시적'이라 판단하고 오히려 평균물가목표제(AIT·average inflation targeting)를 도입해 방관했다. 그 후 말이 뛰는 식으로 급등하는 캘로핑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빅스텝(0.25%p), 자이언트 스텝 (0.75%p)으로 금리를 올리는 과정에서 경제 주체에게 충격과 부담을 줬다.




2024년 6월 이후 금리를 내려온 유럽중앙은행(ECB)에 대해 실기론이 핵심 유로국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목표치 2% 밑돈 지 오래됐다. 하지만 유로의 맹주 격인 독일 경제는 2023년에 -0.3% 성장한 데 이어 2024년에도 -0.2%로 예상돼 역성장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또 하나의 유로 핵심국인 프랑스 경제도 녹록치 못하다.



ECB의 실기론을 제기하는 핵심 유로국의 논리는 이렇다. 준스테그플레이션에 해당하는 지금의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2024년 6월부터 추진했던 피벗 시기를 더 앞당겼어야 했다고 반박한다. 실기를 했다면 10월 ECB 회의에서라도 베이비컷보다 빅컷을 단행했어야 한다는 시각이다. 유로 경제 앞날에 대한 시각도 낙관적이라고 비판한다.



핵심 유로국의 불만은 유로 앞날과 유로화 가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다. 8년 전 영국의 유럽통합(EU) 탈퇴에 이어 '넥스트(Nexit=Netherlands+Exit)'가 나올 정도로 유로 내에서도 균열 조짐을 일고 있다. 달러인덱스 구성 통화 중 유로화 비중이 58%인 점을 고려하면 유로 균열로 유로화 가치가 약세를 보이면 강달러 시대가 전개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2024년 10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피벗을 단행한 것에 대해 한은 ECB와 같은 성격의 실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유로보다 더 떨어졌다. 경기도 2024년 2분기 성장률이 -0.2%로 역성장한 데 이어 3분기에도 0.1로 제로 수준에 그쳤다. 준스테그플레이션 정도가 유로보다 더 심하다.



하지만 ECB에 비해 피벗 추진 시기가 늦었고 그 폭도 소폭에 그쳤다. 피벗 성격도 가계부채, 강남 집값 불안, 교육 문제 등을 우려해 매파적 성향이 강해 추가 금리인하 여부도 불투명하다. 매파성 금리인하로 혼선을 빚은 시장에서는 "그럴 거라면 금리인하를 하지 말지 왜 했느냐"는 볼멘소리까지 터져 나오고 있다.



Fed의 실수론, ECB와 BOK의 실기론은 통화정책 전환기에 중앙은행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트릴레마 국면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조세와 복지, 그리고 국가채무 간 상충관계인 재정 트릴레마에 빗된 통화 트릴레마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금리를 내리면 물가가 오르고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 경기가 침체되는 현상을 말한다.



각국 중앙은행이 트릴레마를 헤쳐 나가는 과정은 '해로드-도마의 칼날 성장 이론'에 비유된다. 작두를 타는 무속인이 칼날 위에서 떨어지면 큰 상처가 나듯이 물가를 다 잡기 전에 금리를 성급하게 내리면 '볼커의 실수', 경기가 다 회복되기 전에 금리를 성급하게 올리면 '에클스의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트릴레마 국면처럼 통화정책 목표 간 상충될 때는 '틴버겐 정리(Tinbergen’s theorem·정책목표 수대로 정책 수단을 가져가는 것)'대로 중앙은행은 1선 목표인 물가 안정에 우선순위를 두고 다른 목표는 해당 부처에게 맡기면 된다. 한은처럼 경기, 물가, 고용, 가계부채, 강남 집값, 심지어는 교육 문제까지 고려하다 보면 2025년에는 어느 하나 못 잡는 상황에 닥칠 수 있다.



2025년에 최대 관심사인 Fed가 얼마나 금리를 내릴 것인가 하는 점은 2024년 9월 빅컷이 단행한 이후 이뤄진 금리 수준에 대한 평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론적으로 통화당국이 기준금리를 어떻게 조정해 왔으며 그것이 과연 적절했는가를 사후적으로 검증하는 방법 중이 하나가 '테일러 준칙(Taylor's rule)'이다.



산출 공식은 실질 균형 금리에 평가 기간 중 인플레이션율을 더한다. 여기에 평가 기간 중 인플레이션율에서 목표 인플레이션율을 뺀 수치에 정책반응 계수(물가 및 성장에 대한 통화당국의 정책 의지를 나타내는 계량 수치)를 곱한다. 그리고 평가 기간 중 성장률에 잠재성장률을 뺀 값에 정책반응 계수를 곱한 후 모두 더해 산출한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테일러 준칙에 의해 도출된 적정수준보다 높아 2022년 3월 이후 Fed의 금리 인상이 얼마나 급하게 단행했던가를 입증해 주고 있다. 2021년 5월 이후 인플레이션이 불거질 당시 '일시적'이라 오판하고 평균 물가 목표제로 관리해 온 Fed가 뒤늦게 '볼커 모멘텀'으로 대처해 온 결과다.





볼커 모멘텀식 대응은 장단기 금리 간 역전 현상을 불러온다. 캘로핑 금리 인상으로 통화정책에 민감한 단기금리가 빠르게 올라가기 때문이다. 2년물과 10년물 국채금리 간 역전 현상이 2년이 넘도록 장기화되면서 이제는 굳어지는 상황이다. 2023년 하반기에는 100bp((1bp=0.01%포인트) 이상으로 40년 만에 최대 폭으로 벌어진 적도 있었다.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2분기 연속 성장률 추이로 경기를 판단한다. 하지만 '선제성'를 중시하는 Fed는 NBER식으로 경기를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유효성 문제가 있긴 하지만 Fed가 경기를 예측하는 기법으로 '수익률 곡선'를 고집하다가 최근에는 중립금리를 중시해 기준금리를 변경하는 '최적통제준칙(OCR·optimal control rule)'을 준수하고 있다.



볼커 모멘텀식 대응의 가장 큰 부작용은 'r 스타(r*)' 금리가 'r 더블 스타(r**) 금리'보다 높아진 점이다. r* 금리는 실물경기를 침체시키거나 과열시키지 않는 중립금리다. 반면 r** 금리는 금융시스템의 건전성을 훼손시키지 않는 또 하나의 중립금리다. r* 금리가 r** 금리보다 높아지면 금융시스템이 불안해져 금융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간다.



코로나발 인플레이션이 불거질 직전까지 20년 이상 저물가가 지속돼는 여건에서 r* 금리와 R** 금리 간의 괴리는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2022년 3월 이후 각국 중앙은행이 실물경기 섹터에서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단기간에 급하게 올리는 과정에서 r* 금리가 높아졌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했다.



r* 금리가 r** 금리보다 얼마나 높아졌는가에 대해서는 추정하는 방식에 따라 다르다. 분명한 것은 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만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더 올리면 두 금리 간의 격차가 벌어져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더 떨어지게 된다. Fed가 피벗을 지연시킴에 따라 상업용 부동산 침체를 키웠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단기간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r* 금리가 r** 금리보다 높아진 여건에서는 물가가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했더라도 중앙은행의 통제권에 들어오면 통화정책(혹은 재정정책)은 ‘경기부양’ 쪽으로 우선순위가 바뀌어야 한다. 물가가 목표치까지 도달할 때까지 금리 인상을 고집하다간 경기를 침체시키는 실수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미국 경기침체 논쟁의 발단이 된 '삼의 법칙(Sahm‘s rule)'에 대한 논쟁도 이뤄진 것도 주목된다. 삼의 법칙이란 클라우디아 삼 뉴 센츄리 어드바이저 수석이코노미스트가 주장한 것으로 최근 3개월 실업률 평균치가 지난 1년간 최저 실업률을 0.5%포인트 이상 높으면 경기가 침체한다는 실증적인 이론을 말한다. 1970년 이후 실업률이 이 법칙에 걸리면 한 차례를 제외하고는 미국 경기가 침체국면에 빠졌다.







2024년 7월 실업률이 당초 예상보다 높은 4.3%로 삼의 법칙에 부합된 것으로 나오자 미국 경기침체 우려가 급부상했다. 실업률은 비자발적 실업자 수를 경제활동인구로 나눠 산출한다. 비자발적 실업자란 일 하고자 할 의향이 있으나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는 노동시장 참가자를 뜻한다.



2024년 5월 이후 실업률이 4% 이상 상승한 것은 해당 기간 중 집중적으로 발생한 자연재해 등으로 노동시장에 참가한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경기침체보다 일시적인 병목(bottle neck)과 불일치(mismatch)의 결과다. 2025년 통화정책 추진에 비중을 둘 고용시장이 문제가 없다면 추가 금리인하가 빠른 속도로 추진하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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