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박빙 승부가 될 것으로 보였던 47대 미국 대통령 선거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압승으로 끝났다. 심지어 백악관뿐만 아니라 상·하원을 공화당이 장악하는 레드 스윕(red sweep·'붉은색(red)'과 '싹슬다(sweep'의 합성어)을 달성해 집권 2기 국정 운영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8년 전과 달리 집권 2기 내각도 당선 이후 2주 만에 마무리됐다.
일단 시장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트럼프 당선 이후 3대 지수는 대선 직전대비 5% 이상 올랐다. 금융위기 당시 헬리콥터 벤식 유동성 공급책에 비유될 만큼 대선 과정에서 돈을 뿌려 트럼프 후보를 구했던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 주가는 40% 이상 급등세다. 비트코인과 같은 트럼프 트레이드 대상 가격도 10만 달러를 목전에 두고 있다.
앞으로 주가 상승세가 지속될 것인가. 이 문제를 풀어보기 위해서는 8년 전 상황으로 되돌아갈 볼 필요가 있다. '힐러리 클린턴'이란 거물을 물리친 정치 신출내기의 흥분을 가라앉히게 했던 것은 '트럼프 텐트럼'이다. 당시 트럼프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직후 1.8%대였던 10년물 국채금리가 1년 만에 2.6%대로 급등했다. 재정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대선 공약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미국의 재정 여건은 더 악화됐다. 조 바이든 정부 출범 첫해부터 연방 부채 상한선 상향 조정 문제를 놓고 지루한 싸움이 지속돼 왔다. 집권 후반기에 들어서는 임시예산안으로 연명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유럽의 피치와 미국의 무디스사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시키거나 전망을 '부정적(negative)'으로 조정했다.
이번에도 트럼프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 시장의 관심은 '과연 대선 과정에서 내놓은 공약을 실천할 수 있을까'로 빠르게 이동되고 있다. 그만큼 트럼프 후보가 재집권을 위해 내놓은 대선 공약이 너무 방대해 재원 조달 문제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재정수입은 소득세 폐지, 법인세 감면 등 감세로 일관돼 있다. 재정지출은 자신의 구상인 뉴딜 정책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빚내서 더 쓰자'는 현대통화론자의 주장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나올 정도다.
중국을 비롯한 주요 수입국에 대한 고관세로 보전할 방안이 있지만 글로벌 투자은행(IB)은 트럼프 대선 공약이 제대로 이행되면 앞으로 10년간 재정적자가 15조 달러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집권 2기에 트럼프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대선 공약을 이행하지 않거나, 다른 하나는 관세 이외 추가 재원 조달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다.
어느 방안을 선택하든 국채 발행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집권 1기 때 국채를 매입해 낭패를 봤던 낙인 효과가 있는 여건에서 국채를 발행하면 소화될 수 있는가는 점이다. 대외적으로 트럼프 당선자가 '적(敵)'으로 보는 중국은 미국 국채를 사주기보다 오히려 보유분마저 내다 팔 확률이 높다. 일본도 경상수지흑자 축소 등으로 미국 국채를 매입할 수 있는 여력이 집권 1기 때만 못하다.
미국 내부적으로 시장에 맡겨 놓으면 가격이 떨어질 것이 확실한 여건에서 미국 국채를 사는 투자자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강제적으로 소화시키면 국채금리 급등에 따른 '구축 효과(crowding out effect·공공지출 증대를 민간 수요 감소로 상쇄돼 총지출이 늘어나지 않는 것)'로 오히려 경기와 증시에 부담을 줄 확률이 높다.
최후 방안으로 미국 중앙은행(Fed)이 사주는 '부패의 화폐화(bond monetization)'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자 Fed의 개편안이 담긴 '프로젝트 2025'가 주목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많은 내용을 담고 있으나 핵심은 Fed를 폐지하거나, 금리를 결정하는 보드 멤버의 인사권까지 장악하는 것이다. 후자는 현실적으로 가능하나 그마저도 안 되면 Fed 이사를 친트럼프 키즈로 채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어렵게 부채의 화폐화를 추진하더라도 국채금리가 상승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Fed가 국채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늘어난 유동성과 재정지출 증가에 따라 물가가 오르는 트럼플레이션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때 트럼프 집권 2기 초대 재무장관 후보로 거론했던 제이미 다이먼 JP 모건 회장이 10년 국채금리가 8%까지 오를 수 있다는 발언이 재조명되는 것도 이 근거에서다.
트럼프 텐트럼이 발생함에 따라 엔화로 미국 국채를 사둔 것이 직격탄을 받고 있다. 작년 4월 이후 엔화로 미국 국채 열풍은 뜨거웠다. 일본은행(BOJ) 총재가 구로다 하루히코에서 우에다 가즈오로 바뀌면서 아베노믹스가 종식되고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 인상 국면을 마무리할 것이라는 양대 피벗(pivot·통화정책 기조 변화)이 기대됐기 때문이다.
결과는 정반대 현상이 발생했다. 작년 4월 이후 지난 7월 말까지 엔·달러 환율은 123엔대에서 161엔대로 급등했다. 같은 기간 중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도 3.4%대에서 4.2%대로 상승했다. 당초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엔·달러 환율과 미국 국채금리가 흘러감에 따라 증권사 권유대로 엔화로 미국 국채 투자 손실액이 홍콩 ELS의 손실액만큼 늘어났다.
법정 다툼에 가기 일보 직전에 엔화로 미국 국채 투자 손실액을 잠시 있게 했던 것이 지난 7월 말 BOJ의 금리 인상 조치였다. 때맞춰 일본 재무성의 달러 매도 개입까지 겹치면서 엔·달러 환율은 140엔 내외 선까지 하락했기 때문이다. 일부 증권사는 엔·달러 환율이 125엔 선까지 하락해 엔 캐리 자금이 본격 청산될 것이라는 예상까지 내놓았다.
지난 9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OMC) 회의에서 빅컷을 단행함에 따라 미국 국채 투자의 매력이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기 시작했다. Fed 인사의 금리 변경 의향이 담긴 점도표에서는 내년 말까지 기준금리가 2.75%까지 대폭 인하될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오면서 또 다시 엔화로 미국 국채를 사라는 증권사의 권유와 함께 실제 투자한 사람도 많았다.
이번에도 증권사의 이런 예상과 권유는 여지없이 빗나갔다. 지난 9월 FOMC 회의 이후 엔·달러 환율은 140엔에서 155엔 내외로 되돌림 현상이 나타났다. 같은 기간 중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3.6%대에서 4.4%대로 불과 두 달 남짓 기간에 무려 80bp(1bp=0.01%포인트) 급등했다. 지금까지 엔화로 미국 국채에 추가 투자한 손실액이 1차 때보다 더 빨라 이러다간 제2의 키코(KIKO)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한국의 환위험 관리 역사상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는 '키코(KIKO)' 사태로 되돌아가면 금융위기가 미국에서 발생했던 만큼 한국은 피해 갈 것이란 시각이 많았다. 오히려 미국에서 이탈한 자금이 유입될 것이라는 기대까지 겹치면서 주가가 오르고 원·달러 환율이 하락할 것을 예상해 은행을 중심으로 키코에 가입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주가 하락 폭으로 본다면 위기 진원지인 미국의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45%에 그쳤던 반면 한국의 코스피 지수는 65%나 폭락했다. 금융위기 발생 이후 달러당 850원 밑으로 하락할 봤던 원·달러 환율은 거꾸로 1600원까지 올라가 '키코 사태'를 낳게 한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국내 기업이 낭패를 본 것은 글로벌 투자은행(IB)이 금융위기로 '마진 콜(margin call·증거금 부족)'을 당하면 경제 여건이 좋은 곳을 디레버리지(deleverage·기존 투자자산 회수) 대상으로 선택한다는 점과 고수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레버리지 비율(leverage ratio·증거금대비 총투자 금액)이 높았던 점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황은 안 좋다. 47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후보의 압승으로 끝나면서 고금리·강달러로 엔화로 미국 국채에 투자한 것이 직격탄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1월 20일에 출범하는 트럼프 정부는 재정수입 면에서 소득세 폐지, 법인세 감면 등 감세를 추진할 예정이다. 반면 재정지출 면에서는 뉴딜 정책을 구상하고 있어 재정적자가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적자 확대에 따라 국가부도 위험이 증가하면 미국 국채금리는 오를 수밖에 없다. 뉴딜 정책 추진에 따라 재정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여건에서는 Fed도 지금 추진하고 있는 피벗을 멈출 확률이 높다. 미국의 고금리·강달러 쇼크가 나타나는 여건에서는 BOJ가 금리를 올리더라도 엔화가 강세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엔화로 미국 국채를 투자하다 실패하면 그 어느 투자 실패보다 충격이 크다. 안전자산으로 믿었던 엔화와 미국 국채, 두 축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종전의 이론이 통하지 않는 뉴 노멀 투자 여건에서 안전자산과 위험자산 간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만큼 특정 자산에 쏠리기보다는 투자 대상별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때가 됐다. 증권사와 투자자 모두에게 해당된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