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글로벌 시장 상황의 변화에 발맞춰 철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SK그룹의 사업 리밸런싱에 속도를 내야한다고 언급하며 사실상 구조조정 강도를 높이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SK그룹은 최태원 SK 회장,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등 최고경영진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달 31일부터 2일까지 '2024 CEO세미나'를 열었다. 최 회장은 2일 폐회사에서 "AI 시장 대확장이 2027년을 전후해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며 "SK가 성장 기회를 잡으려면 현재 진행 중인 '운영개선'을 서둘러 완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K가 말하는 운영개선(Operation Improvement)이란 비용 절감과 효율화를 포함한 회사의 경쟁력 확보 과정을 뜻한다.
▲ 최고 화두는 '비대화된 그룹 다이어트'
이번 세미나의 최대 화두는 SK그룹의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이었다. 최근 수년간 잦은 인수합병으로 비대해진 SK그룹의 구조조정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SK는 지난해 말 84조원에 달했던 그룹 순차입금은 손익·현금흐름 개선, 자산 매각 등의 과정을 거치며 올해 2분기부터 감소세로 돌아섰다고 설명했다. 3분기 말에는 70조원대로 순차입금이 줄었다. 지난해 말 기준 219개였던 계열사 수도 올 연말까지 10% 이상 줄어들 전망이다.
실제 세미나 특별 세션에서 김동환 삼프로TV 대표는 "리밸런싱 이전의 SK는 계열사 간 경쟁적인 중복투자, 과잉투자 등의 문제점이 있었다"며 "어느 순간부터는 회사를 사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된 것처럼 보였다"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CEO들은 그동안 진행된 '운영개선' 활동으로 재무구조 안정화라는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을 확인했다. 앞으로는 제조와 마케팅 등 운영 역량을 제고하는 '운영개선 2.0'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하반기 이후 선제적인 리밸런싱과 운영개선 노력의 성과가 가시화하고 있다"며 "지금의 힘든 시간을 잘 견디면 미래에 더 큰 도전과 도약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CEO들을 격려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SK하이닉스가 지난해 8조원에 가까운 영업적자를 기록한 위기를 극복하고, 지난 3분기 7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시장 선도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요인을 소개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곽노정 SK하이닉스 CEO는 "올해 실적 개선은 단순히 반도체 시장 회복에 편승한 결과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곽 CEO는 ▲낸드플래시 생산기지인 청주 M15을 HBM 생산라인으로 구축하는 과감한 의사결정 ▲데이터 중심 의사결정을 통한 수익성 극대화 ▲원 팀 정신으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조직문화 등이 반전의 기회를 이끌어냈다고 설명했다.
▲최태원 "AI로 체질개선 필요"이날 최 회장은 그룹의 일하는 방식으로 '운영개선'을 강조했다.
그는 "운영개선은 단순히 비용 절감과 효율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본원적 경쟁력을 확보하는 과정"이라며 "재무제표에는 담기지 않지만 경영의 핵심 요소인 '기업가 정신'과 '이해관계자와의 소통' 등을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운영개선 고도화를 위해선 AI를 잘 활용할 필요도 있다"며 "젊은 구성원과 리더들이 AI를 접목한 운영개선 방안을 제안해 회사 정책과 제도를 개선하고, 성과에 걸맞은 보상을 해주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AI 사업 방향과 관련해서는 "그룹 계열사 간, 외부 파트너와의 협력을 통해 가장 싸고 우수한 AI 데이터센터를 만들어 그룹 AI 사업을 글로벌 스케일로 확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과제로 ▲반도체 설계, 패키징 등 AI 칩 경쟁력 강화 ▲고객 기반의 AI 수요 창출 ▲전력 수요 급증 등에 대비한 에너지 설루션 사업 가속화 등을 제시했다.
▲그룹 차원의 수출 경쟁력 강화 방안도 논의
경영진들은 앞으로 글로벌 시장 공략과 수출 확대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 SK 계열사뿐만 아니라 중소 협력업체들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는 데도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SK그룹은 지난해 수출액 96조 8천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대한민국 수출(828조원)액 중 12%에 해당한다. 지난해 59조원을 수출한 SK이노베이션은 고부가 제품 확대, 동남아·중남미 등 신규 시장 개척으로 수출액을 더욱 늘리기로 했다. SK하이닉스는 AI 산업 발전과 함께 급속도로 수요가 커지고 있는 HBM을 중심으로 지난해 27조원을 기록한 수출 규모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CEO들은 해외시장 진출과 수출 다변화를 위한 그룹 차원의 지원체계가 필요하다는 데도 의견을 모았다. 다양한 사업 밸류체인 간 협력을 통한 혁신적 제품 개발, '설루션 패키지'를 활용한 수출 경쟁력 강화 방안도 논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