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증시가 지정학 위기 진정과 이번 주 대형 기술기업들 실적에 대한 경계감 속에 소폭 상승세를 이어갔다. 반도체 수출 악재로 TSMC와 엔비디아 등이 하락했지만 애플과 구글, 메타 등이 올라 시장에 버팀목이 됐다. 이스라엘과 이란간 지정학 긴장이 한 고비를 넘기면서 국제유가가 폭락하고, 원유 관련 기업들도 약세를 이어갔다. 현지시간 28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S&P500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5.4포인트 0.27% 오른 5,823.52,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은 48.58포인트, 0.26% 상승한 1만 8,567.19에 거래됐다. 다우존스 산업 평균지수는 273.17포인트 0.65% 뛴 4만 2,387.57로 거래를 마감했다.
● 중국 위장 수입에 발칵..TSMC, 사태 수습 후폭풍
세계 최대 위탁반도체 생산업체인 대만 TSMC가 중국 반도체 설계사에 대한 출하를 중단하는 등 미중간 갈등이 다시 표면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TSMC는 중국의 신생 반도체 설계사인 소프고 (Sophgo 算能)를 통해 화웨이에 첨단 반도체가 공급된 것으로 보고 관련 출하를 중단하기로 했다. 앞서 테크인사이트는 화웨이 어센드(Ascend 910B) 내에 TSMC에서 생산한 반도체가 탑재된 것을 알렸고, 이후 미 상무부가 관련 사안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소프고 (Sophgo 算能)는 화웨이와 무관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TSMC는 미국의 규제에 따라 2020년 9월 이후 화웨이에 대한 제품 수출 중단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사태가 확산될 조짐에TSMC 주가는 하루 -4.3% 내렸고, 엔비디아 -0.72%, 브로드컴 -0.57%, 반도체 장비업체인 램 리서치는 -2.98% 하락했다.
이번 사태 속에 모리스 창 TSMC 창업자의 발언도 재조명되고 있다. 그는 전날 대만 신주현에서 열린 TSMC 연례 체육대회에서 "최신 반도체 부문의 자유무역은 죽었다"며 "이러한 환경에서 어떻게 계속 성장할지가 우리의 도전"이라고 평가했다. 모리스 창은 "5년 전 TSMC가 성공하면서 책략가들은 지정학적으로 군사상 반드시 차지해야 할 곳이 된다고 말했는데, 현재의 TSMC가 진정으로 그러한 곳이 됐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2020년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을 이유로 중국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구매 제한 조치를 단행했고, TSMC는 이후 추가 수출이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발 악재는 유럽 최대 자동차 기업인 폭스바겐과 의료기기 공급업체인 필립스에도 타격을 줬다. 폭스바겐은 설립 87년 만에 처음으로 최소 3개 공장을 폐쇄하고 나머지 공장 운영 규모도 축소하는 대대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공개했다. 또한 1994년부터 유지한 고용안정 협약을 조기 종료하고 현재 30만 명의 근로자 가운데 수 만 명을 해고하는 등 조직 정비에 돌입할 예정이다. 독일 슈피겐지에 따르면 전체 직원 가운데 약 2만 명 가량이 해고될 것으로 추정된다. ?다니엘라 카발로 폭스바겐 노사협의회 의장은 이러한 계획을 공개하고서 "독일의 모든 폭스바겐 공장이 영향을 받을 것이고, 누구도 더 이상 안전하다고 느낄 수 없다”며 회사측의 계획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필립스는 중국의 반부패 단속으로 인한 병원 공급 물량 축소와 현지 소비 수요 등의 감소로 연간 매출 전망치를 내렸다. 필립스의 로이 야콥스 최고경영자는 “3분기 중국 수요 감소가 상당하다”며 “지난 분기 전망보다 악화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필립스의 2024년 연간 가이던스에서 지난해 대비 비교가능 매출 성장률은 최고 1.5%로 이전에 제시한 하단 3%의 절반 수준 성장에 그칠 것으로 예고했다. 필립스 주가는 뉴욕 증시에서 15.9% 폭락했다.
미국 완성차 업체 포드도 예상을 빗나간 실적을 공개했다. 올해 3분기 주당순이익은 49센트로 월가 컨센서스 47센트보다 높고, 차량 판매 매출은 431억 7천만 달러로 컨센서스 대비 15억 달러 이상 성과를 보였지만 연간 전망에서 기대치를 밑돌았다. 포드측이 제시한 연간 이자,세금 상각전 이익은 약 100억 달러로 이전 분기에 제시한 100억~120억 달러보다 낮았다. 이번 발표로 장중 2% 가량 상승했던 포드는 시간외 거래에서 오후 5시 현재 약 4.4% 하락 중이다. 미국 3대 완성차 업체 가운데 제너럴 모터스를 제외한 포드, 스텔란티스 등의 실적 부진이 깊어지는 등 업황 회복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반면 이번 주 분기 실적을 앞둔 대형 기술기업들은 시장의 긍정적 반응을 끌어내는 소식이 이어졌다. 애플은 아이폰16 출시 한 달여 만인 오늘 iOS18.1 운영체제 업데이트를 통해 애플 인텔리전스(AI) 첫 배포에 들어갔다. 당초 지난 6월 세계개발자대회(WWDC) 당시 공개한 생성형 이모지, 시리와 챗GPT 통합은 없지만 텍스트 자동 교정, 알림 요약, 사진 자동 편집 등의 일부 기능이 우선 적용됐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왐시 모한 애널리스트는 “출시 시차를 감안해 10월말 이후 아이폰 판매 실적이 살아날 전망”이라고 밝혔다. 다만 JP모건은 지난 9월기준 2024회계연도 1분기 애플 실적은 기대치를 넘어서겠지만, 이달부터 시작한 2025 회계연도 가이던스는 예상보다 낮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이폰16 초기 판매가 전작보다 더디게 살아나, 내년 초중반이 지나야 컨센서스 이상의 판매량을 회복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앞서 궈밍치 대만 TF인터내셔널 애널리스트는 애플이 아이폰 수요 감소에 대응해 약 1천만 대의 생산 축소에 나섰다며 내년 초까지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도 이번 분기 실적에 대한 시장의 기대치가 낮아지는 추세다. 월가는 클라우드 부문에서 전년대비 29% 성장이 기대되지만 주 수익원인 검색과 광고 매출에서 1년 중 가장 부진한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모펫네이선은 “AI 기업 등 검색 경쟁자들의 진입에 시장의 균열이 일고 있고, 구글의 대응은 여전히 느리다”고 지적했다. 다만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루스 포랏 최고재무책임자가 떠난 뒤 부임할 아나트 애쉬캐나지 CFO 체제에서 “놀라운 비용절감과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며 제프리스, 모건스탠리, 웨드부시 등과 함께 매수 의견을 유지했다. 한편 디인포메이션은 구글이 ‘프로젝트 자비스’라는 이름의 AI 에이전트를 연말께 공개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구글은 최근 딥마인드 아래 AI 개발 인력을 통합하고, 생성형 인공지능과의 대화를 넘어 알아서 사용자의 작업을 대신하는 AI 에이전트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 일주일여 남은 미 대선..더 강해진 트럼프 트레이드
미국 대선이 8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선거와 관련한 종목들의 움직임도 크게 일어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요 주주인 트럼프 미디어는 이날 하루 21%, 이달초 주당 16달러이던 가격은 이날 47달러선으로 약 한 달 만에 3배 가까이 뛰었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7일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막판 유세를 통해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트럼프는 이날 유세에서 “인플레이션을 멈추고 범죄자들이 미국에 들어오는 것을 막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은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주의 필라델피아에서 흑인 유권자와의 대화에 나서는 등 양측 선거전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전국 단위 여론조사에서 두 부호는 오차범위 박빙이지만 일부 경합주에서 트럼프의 지지율이 올라서면서 그의 당선 가능성에 대비한 트럼프 트레이드가 주식시장의 흐름을 움직이고 있다. 이날 트럼프 미디어뿐 아니라 미 국채금리가 재급등하는 등 시장은 향후 미국의 재정적자 증가와 채권금리 상승에 대한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2년 만기, 5년 만기 미 국채 경매도 시장 예상보다 저조한 응찰률을 보였다. 이 여파로 10년만기 미 국채금리는 5.2bp 뛴 4.284%까지 올랐다. 암호화폐에 대한 우호적인 정책으로 코인베이스 기준 비트코인 가격이 6만 9천 달러를 재돌파하는 등 관련 상품 가격도 들썩이고 있다.
국제유가는 이스라엘의 지난 주말 공습에서 원유와 핵시설이 제외된데다 이후 이란의 재보복 가능성이 크게 낮아지면서 폭락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지는 전날 “공습은 정확하고 강력했다”며 “모든 목표를 달성했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이후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26일 이란에 대한 침략을 과장한 것을 틀렸다”면서도 “시온주의 정권이 이란의 국력과 결의의 수준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비교적 온건한 입장을 공개했다. 양측간의 보복으로 유혈 사태가 확산될 것을 우려하던 시장은 지정학 위기가 한 고비를 넘긴 것으로 평가했다. 이로 인해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는 전 날보다 5.31% 급락한 배럴당 67.97달러에 그쳤다. 런던 ICE선물시장에서 12월물 북해산 브렌트유도 하루 5.36% 내린 배럴당 71.97달러로 연중 최저 수준에 다시 근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