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최근 국내 가전 기업들이 부진한 실적을 기록한 가운데 중국 가전업체의 약진이 도드라지고 있습니다.
특히 연구개발비를 대폭 늘리며 AI 솔루션 같은 첨단 분야에서 국내 기업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어 위기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습니다. 전효성 기자입니다.
<기자>
냉장고와 연동한 휴대전화에서 냉장 온도와 얼음 모양을 선택합니다. 클릭 한번으로 청소기를 움직이고 커튼을 닫기도 합니다.
중국 가전기업 하이얼스마트홈의 'AI 홈' 기술입니다.
이처럼 중국 기업들은 첨단 가전 분야에서의 기술력을 고도화하며 세계 가전 시장을 빠르게 장악 중입니다.
해관총서에 따르면 1~9월 중국의 가전 수출액은 5345억위안으로 1년전보다 15.2% 늘었습니다. 연간 수출액은 우리 돈 160조원에 달할 전망입니다.
수익률도 양호했는데 중국 가전 3사(메이디·하이얼·그리전기)의 상반기 순이익은 454억위안(8.6조원)으로 세 곳 모두 두 자릿수 이상 성장률을 보였습니다.
지금까지 저렴한 제품을 많이 파는 전략이었다면 중국 기업들은 이제 고수익·고부가가치 제품을 선보이며 국내 기업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습니다.
메이디그룹은 올해 상반기에만 연구개발 비용으로 76억위안(1.4조원)을 투입했고,
하이얼스마트홈은 스마트홈 분야에서 3100여건의 특허를 보유해 이미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특허를 확보한 상황입니다.
조주완 LG전자 대표는 올해 국제가전박람회(IFA)에서 "중국 기업을 두려워해야할 정도"라고 평했습니다.
반도체 분야에서 추격도 거셉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D램 분야에서 한국과 중국 기술 격차가 최소 5년 정도였지만, 최근엔 3년 수준으로 줄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이윤호 전 지식경제부 장관).
실제 중국은 자국 기업 화웨이를 앞세워 그래픽 처리장치(GPU) 시장 개척에도 나서는 상황입니다.
공개가 초읽기로 다가온 화웨이의 신제품 어센드 910C는 엔비디아의 주력 모델 H100을 겨냥했습니다.
국내 기업들이 엔비디아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납품하는지 여부로 골머리를 앓는 동안 중국 기업은 엔비디아에 직접적으로 맞설 제품 개발에 성공한 겁니다.
[류성원 / 한국경제인협회 경제혁신팀장: 사실 앞선다고 얘기할 수 있는 분야는 메모리 반도체나 2차전지 일부 어떤 분야에 한정되어 있는 수준이고요, 거의 대부분 중국 기업들이 우리 기업들의 수준에 육박했다…]
저가 물량 공세로 시작한 중국의 도전이 이제는 첨단 산업에서의 기술력 경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앵커>
이어서 산업부 배창학 기자 나와 있습니다.
배 기자, 가격에 기술 경쟁력까지 더한 중국의 굴기가 반도체와 전기·전자 등 첨단 산업으로 뻗고 있습니다.
철강과 석유화학 등 굴뚝 산업은 이미 중국에 잠식되고 있는데, 얼마나 심각한 것입니까?
<기자>
중국 기업들은 산업계 전반에 걸쳐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저가 공세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정부로부터 천문학적인 보조금까지 지급받아 가격 경쟁력을 한층 강화하며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습니다.
반도체, 전기·전자 등 첨단 산업이 중국이 갓 도전장을 내민 시장이라면, 철강·석유화학 등 굴뚝 산업은 중국이 일찌감치 주도권을 잡은 시장입니다.
특히 중국은 지난 20여 년간 철강 생산량을 8배 넘게 늘렸습니다.
중국의 철강 생산량은 전 세계 철강 생산 점유율의 절반을 웃돕니다.
그런데 미국 등 세계 각국이 중국산 철강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서 관세가 없는 한국으로 엄청난 양의 중국제가 유입됐습니다.
국내 철강사 관계자들을 취재하니 중국이 헐값에 재꼬 떨이를 하면서 국내 철강 시장이 붕괴되고 있었습니다.
철강사들과 조선사들은 반기마다 후판 가격을 협상하는데 국산 대비 20% 이상 저렴한 중국산 때문에 철강사들이 조선사들로부터 제값을 받지 못한 채 후판을 넘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현대제철을 비롯한 철강사들은 정부에 중국산 철강제 반덤핑 제소를 제기했습니다.
석유화학과 조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석화의 경우 에틸렌 등 기초 유분 대다수를 중국이 생산하여 판매가를 떨어뜨리고 있고, 조선의 경우 최근 독일, 스위스, 그리스 등이 발주한 총 50척의 컨테이너선을 중국 조선사들이 최저가 입찰로 싹쓸이했습니다.
<앵커>
중국이 최근 도전장을 내민 전기차, 배터리 같은 첨단 제조 분야는 어떤 상황입니까?
<기자>
중국 정부는 10년 전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을 국가 3대 신산업으로 정했습니다.
3대 신산업 모두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산업군으로, 한중 간 정면충돌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습니다.
중국이 신산업에 지급하는 연간 보조금 규모는 OECD 국가 평균 최대 10배 수준으로 약 30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중국 내 신산업 기업 99%가 보조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중국 정부의 지원 사격에 중국 기업들 대다수는 100% 넘는 공장 가동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공장 가동률이 100%를 넘은 것은 근로자들이 야근 등 초과 근무를 했다는 것입니다.
중국은 지난해에만 전기차 113만 대, 전기차용 배터리 156만 대, 태양광 291GW(기가와트)를 초과 생산하여 재고로 쌓아뒀습니다.
<앵커>
결국 중국을 뿌리쳐야 국내 기업들이 실적 부진의 늪에서 탈출하고 반등할 수 있을 텐데요. 해답이 있습니까?
<기자>
굴뚝 산업은 친환경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탄소중립 실천이 전 세계적인 화두에 오른 가운데 한국의 친환경 기술력이 중국보다 앞서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국내 기업들은 수소로 중국에 대항하고 있습니다.
철강은 수소로 철을 생산하는 수소환원제철을, 조선은 수소 생산 원료인 암모니아 운반선을 미래 먹거리로 삼고 있습니다.
석유화학과 정유사들은 수소를 비롯한 고부가가치 제품 연구개발에 공을 들이는데,
발 빠르게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한 몇몇 기업은 올해 들어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금호석유화학은 타이어용 합성 고무와 장갑용 라텍스가 실적을 견인하며 연간 매출액과 영업이익 모두 지난해 대비 두 자릿수 성장률을 낼 것으로 예상됩니다.
OCI는 금호석유화학과 전기차 소재를 제조하는 합작사를 설립한 데 이어 2차전지용 실리콘 음극재 소재, 반도체 공정용 인산, 가스 등을 신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어 첨단 산업은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이 중국의 맹추격에 위기감을 느끼고 사업 영역 확장과 같은 미래 청사진을 공개했지만, 기업의 개인기만으로는 중국을 따돌리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중국처럼 보조금을 지원하고 세제 혜택을 주는 등 정부의 정책 지원이 동반되어야 뾰족한 수가 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조성대 /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센터 실장: 국가 안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첨단 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조금 더 직접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주는 것이 (필요하고요.) 자칫 기회를 놓치면 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모멘텀을 잃어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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