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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증시 여러 번 살렸다…美 실업청구건수의 비밀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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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지표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포함 범위에 따라 거시와 미시, 분야별로는 성장·물가·고용·국제수지, 경제 활동 주체별로는 정부·기업·국민, 일상생활에 와 닿는 정도에 따라 체감 지표를 비롯해 기준에 따라 거의 무한대로 구분할 수 있다.


지금까지 경제를 진단하고 예측하는 데는 대표성을 띤 경제지표가 주로 활용돼 왔다. 경제학 교과서와 각종 투자 지침서는 대표 지표를 중심으로 기술됐다. 경제정책이나 경영계획을 수립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런 관행이 오랫동안 지속되다 보니 대표 지표 이외에 다른 지표는 아예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


코로나 사태 이후 디지털화가 급진전되면서 경제지표의 유용성과 생명력이 달라지고 있다. 경기순환상 '주기의 단축화'와 '진폭의 순응성'은 날로 심해지는 추세다. 통계기관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경제지표 이외에 주변에서 경기 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대리지표(proxy)가 많아졌다. 네트워킹과 팬차트 효과로 공식 지표 간의 경계도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뉴 노멀'이라 불리는 이런 통계 여건에서는 그때그때마다 의문점을 풀어줄 수 있는 신속성과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체감성을 갖고 있는 경제지표일수록 유용성과 생명력이 있다. 하지만 대표성을 띤 경제지표일수록 각 주(미국의 경우)에서 보고한 기초 자료를 토대로 의미 있는 통계로 산출 발표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고 피부에 잘 와 닿지 않는다.


지난 7월 미국의 실업률이 4.3%로 높게 나오자 경기침체 우려가 엄습하면서 나스닥 지수가 하루에 1천 포인트가 폭락하는 8.4 쇼크가 발생했다. 국내 증시에서도 사이드카와 서킷 브레이크가 동시에 발동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상황에서 8월 둘째 주 이후 주간실업청구건수가 3주 연속 감소세로 나오자 미국 만 아니라 세계 증시가 정상을 되찾았다.


고용 지표로 널리 알려진 것은 단연 실업률이다. 하지만 이 지표는 산출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데다 개념도 모호하다. 실업률을 신출 하는데 분자에 들어가는 비자발적 실업(분모는 경제활동인구)은 지난 7월처럼 자연재해 등으로 갑자기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수급상 불일치(mismatch)로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았을 때 과연 경기침체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하지만 주간 실업청구건수는 다르다. 실업률처럼 대표성을 띠지 않지만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가 실업급여를 청구만 하면 산출 발표된다. 실업수당만큼 피부에 와 닿는 지표도 없다. 디지털 시대에 노동시장에서 설 자리가 없어지는 중하위 계층일수록 더 그렇다. 같은 후행지표라 하더라도 선행성을 갖고 있어 주식 투자자에게는 의미가 더 크다.


주간 실업청구건수의 유용성과 생명력은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다시 한번 입증됐다. 회의 직전까지 베이비컷(0.25% 포인트 인하)을 추진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빅컷(0.5% 포인트 인하)이 단행됐다. 시장 예상에 부합하는 순응적 선택을 해온 관행과 달리 역행적 선택을 하면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 조건이 무너지면 시장은 반란이 일어난다.


알려진 것처럼 금리인하가 증시에 반드시 호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경기침체 우려 없이 시장금리와의 격차 등을 해소하는 미들 사이클 조정이라면 호재다. 1998년이 대표적인 사례로 첫 금리인하 이후 1년 동안 S&P 지수가 20% 급등했다. 반면 경기침체 국면 진입을 확인시켜주는 빅 사이클 조정이라면 악재다. 2007년의 경우로 S&P 지수가 20% 폭락했다.


9월 FOMC 회의 이후 빅컷을 단행했지만 충분한 근거가 없었다. 시장은 반란이 일어났다. 주가는 떨어지고 달러 가치가 강세를 띠는 가운데 정책금리에 가장 민감한 2년물 국채금리마저 올랐다. 베이비컷을 주장한 Fed 인사를 중심으로 성급한 빅컷으로 어렵게 잡은 물가가 다시 오르는 '볼커의 실수(Volker's failure)'를 저지르지 않느냐는 시각까지 나왔다.


제롬 파월 의장도 이 점을 의식해 빅컷을 단행한 것은 지금보다 앞으로 닥칠 경기침체에 선제 조치라면 강조했지만 시장은 동조하지 않았다. 피봇의 필요성이 제기된 지 2년이 지났고 선제 조치라면 7월 FOMC 회의에서 베이비컷이라도 추진했으면 최소한 8.4 쇼크를 방지할 수 있었다는 시각이다. 9월 FOMC에서도 물가가 목표치를 웃도는 여건에서는 빅컷보다 베이비컷을 추진했으면 경기침체와 볼커의 실수 우려를 동시에 잡을 수 있었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Fed가 빅컷을 단행함에 따라 결과적으로 피봇이 가장 늦어진 한국은행도 물가 등 대표 경제지표에만 집착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디지털 시대에 맞게 신속 정확하고 국민이 쉽게 체감할 수 있는 경제지표를 개발해야 한다. 뉴 노멀 통화정책은 특정 지표만 잡는 데 집착하는 '프레임(frame)'에 갇히기보다는 일상에 파고드는 '프레이밍 효과(flaming effect)'를 지향해 줄 것을 당부한다.





같은 맥락에서 기준금리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각종 시장금리의 기준이 되는 정책금리와, 다른 하나는 대출 등 금융거래의 기준이 되는 지표금리다.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정책금리 변경에 초점을 맞춰 추진돼 왔다. 하지만 통화정책 전달경로 상 중간 표적변수(proxy)에 해당하는 지표금리가 받쳐주지 못하면 정책금리가 무력화되고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요즘 들어 정책금리와 지표금리는 과도기에 놓여 있다. 전자는 미국 중앙은행(Fed)가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피봇을 단행함에 따라 '금리인상'에서 '금리인하' 국면으로 전환됐다. 후자는 종전의 지표금리가 뉴노멀 금융환경을 맞아 기능과 신뢰가 동시에 떨어짐에 따라 새로운 지표금리로 속속 교체되고 있다.


지표금리 교체의 출발은 '리보(Libor·런던 은행 간 금리)'다. 1960년대 중반 이후 국제기채시장에서 지표금리의 벤치마크로 활용되던 리보가 금융위기 이후 각종 조작 사건에 휘말리면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고심 끝에 결정한 영란은행(BOE)의 퇴출 방침에 따라 리보는 작년 6월 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당사국인 영국이 리보 퇴출을 결정한 이후 Fed를 중심으로 리보를 대체할 새로운 지표금리를 연구해 왔다. Fed가 가장 먼저 제시한 것이 미국 무위험 지표금리인 'SOFA(Secured Overnight Financing Rate·담보부 익일 조달 금리)'였다. 산출 방식은 시장 참여자의 실제 거래금액을 고려해 중간 금리라는 점은 리보와 비슷하다.

하지만 SOFR는 무담보인 리보와 달리 담보부 금리인 데다 익일 확정금리라는 점에서 구별된다. 올들어 하루 평균 거래금액도 8000억 달러가 넘어 5억 달러에도 못 미쳤던 리보와 커다란 차이가 난다. 리보에서 문제가 됐던 조작은 사실상 불가능해져 지표금리의 생명인 신뢰를 이미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새로운 지표금리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국제금융시장을 상징할 수 있을 정도의 대표성을 띠어야 하고, 인식 차원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정도의 보편성을 지녀야 한다.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의향이 잘 반영될 수 있도록 정책금리 간의 체계까지 잡히면 금상첨화다.


Fed가 주도가 된 SOFR이 정착됨에 따라 뉴욕의 국제금융 위상은 한층 더 강화됐다. 이제 전 세계 모든 주식 투자자가 자국의 여건보다 그날그날 전해오는 뉴욕 증시 움직임을 보고 종목을 결정할 정도다. 달러 가치도 경제 다극화와 사회주의 국가의 탈달러화 노력에도 여전히 세계 기축통화 위상을 지키고 있다.


반면 브렉시트에 이어 리보까지 폐지됨에 따라 런던의 국제금융 위상은 완전히 추락했다. BOE의 리보 퇴출 결정 이후 유럽 금융시장 재편 상황을 보면 주식시장은 런던에서 프랑스 파리와 베네룩스 3국(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로, 채권시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빠르게 이전되고 있다. 유럽의 변방 금융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위기를 느낀 영국도 리보를 대체할 새로운 지표금리인 '소니아(SONIA)'를 검토해 왔다. 하지만 결정 방식이나 무담보 금리라는 점에서 리보와 차이가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레포(Repo), 즉 환매 금리를 검토해 왔으나 다른 금리와 연계성에 문제가 생겨 도입하지 않았다. 지표금리의 생명인 신뢰가 한번 깨지면 영원히 잃어버리는 낙인 효과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로버트 먼델 교수가 주장한 최적통화이론에 따르면 새로운 지표금리가 도입돼 통용 범위가 전 세계로 확정되면 해당국만 아니라 전 세계 중앙은행의 정책금리도 변경해야 한다. Fed도 SOFR에 맞춰 현재 정책금리인 'FFR(연방기금금리)'를 'on RRP(익익 환매 금리)'로 조만간 교체할 예정이다.


한국은행도 이런 국제 흐름에 맞춰 한국 무위험 지표금리인 'KOFA'를 선정해 2011년 11월부터 산출·공표해 오고 있다. 하지만 종전의 지표금리인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가 관행적으로 사용됨에 따라 금융거래 표준으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SOFR의 조기 정착 과정을 보면 '일방적인 요구(혹은 협조)'보다 '성숙된 시장 여건'이 중요하다는 점을 참조해야 한다.




올해도 벌써 10월에 접어든다. 이달을 기점으로 정책금리 변경과 지표금리 교체, 그리고 이에 따른 중심축 이동 등 새로운 금융환경이 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과도기에는 주가, 환율 등 각종 금융변수도 과거에 볼 수 없었던 현상이 나타날 확률이 높다. 국제금융시장 의존도가 높은 우리 입장에서는 앞으로 닥칠 변화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 놓아야 할 때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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