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료기관에서 감기나 설사 같은 경증·비응급 상황의 환자를 수용하지 않거나 진료를 거부해도 의료진은 책임을 면할 수 있게 됐다.
16일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응급의료법상 진료 거부의 정당한 사유 지침 안내' 공문을 전날 전국 17개 시도와 대한병원협회, 대한의사협회, 대한간호사협회 등에 보냈다.
응급의료법 제6조는 응급의료종사자가 업무 중에 응급의료를 요청받거나 응급 환자를 발견했을 때 곧바로 의료행위를 하도록 하는데, 복지부는 이 지침을 통해 정당한 진료 거부 사례를 명시했다.
우선 복지부는 한국형 중증도 분류체계(KTAS) 4∼5급에 해당하는 경증·비응급 환자를 응급실에서 수용하지 않더라도 의료진에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KTAS 4급은 준응급, 5급은 비응급 환자다. 4급에는 착란(정신장애)이나 요로 감염이, 5급에는 감기나 장염, 설사 등이 대표적 증상으로 꼽힌다.
이들을 받지 않더라도 의료진이 책임지지 않도록 한 것은 응급실 의료진이 본연의 목적에 맞게 중증 환자에게 집중하도록 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환자 스스로 정확한 몸 상태나 그 중증도를 알기 어려워 일단 응급실을 찾는 경우가 많은 실정을 고려하면 이런 지침 역시 구체성이 다소 떨어져 현장에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복지부는 또 응급실에서 폭력이 발생하거나 그럴 우려가 있는 경우를 정당한 진료 거부·기피로 규정했다. 여기에는 응급의료 종사자에 대한 폭행이나 협박, 위계, 위력 혹은 의료용 시설·기물의 손괴 등이 해당했다.
또 환자나 보호자가 모욕죄나 명예훼손죄, 폭행죄, 업무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의료인이 정상적인 의료행위를 하지 못하게 된 경우에도 정당한 진료 거부로 보기로 했다.
이 밖에 복지부는 응급의료기관의 인력이나 시설, 장비가 부족해 적절한 응급의료 행위를 할 수 없는 경우, 통신·전력 마비나 화재 등 재난 때문에 환자를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의료진이 정당하게 진료를 거부할 수 있게 했다.
의료진은 환자 또는 보호자가 의료인의 치료 방침에 따르지 않겠다고 하거나 의료인으로서의 양심과 전문 지식에 반하는 치료 방법을 요구받는 경우에도 진료를 거부할 수 있다.
복지부는 다만 이번 공문에서 응급의료법과 의료법에 따라 정당한 진료 거부 사유의 범위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지침을 마련했다면서도 "법령의 제·개정, 판례와 유권해석의 변경 등에 따라 (범위가) 바뀔 수 있다"고 안내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