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상업용 부동산시장 침체 지속으로 지난 2분기의 부동산 자산 압류 규모가 9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상승했다.
29일(현지시간)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시장정보 제공업체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지난 4∼6월 미국에서 압류된 사무용 건물과 아파트, 기타 상업용 부동산 규모는 205억5천만 달러(약 28조4천억원)로 1분기 대비 13% 증가했다.
이는 2015년 3분기(275억달러) 이후 약 9년 만에 가장 큰 규모다.
미국의 부동산 압류 규모는 2021년 이후 꾸준하게 증가세를 이어오고 있다.
팬데믹 이후에도 재택근무가 일반화되면서 사무실 수요가 이전보다 급감한 데다가 고금리 장기화로 이자 부담이 많이 늘어난 게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 낮은 수준의 고정금리로 돈을 빌린 건물주들은 대출 만기가 다가오면서 훨씬 비싼 이자로 돈을 빌려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은행 등 금융사들은 대출을 못 갚는 차주들의 자산을 압류한 뒤 자금을 일부라도 회수하는 대신 대출 만기를 연장해주는 방식을 선호해왔다.
자금 회수가 어렵다고 판단해 곧바로 손실을 인식하는 대신 대출을 연장해주고 시장 상황이 개선되는 것을 기다리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향후 금리가 내려가더라도 사무실 공실률이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임을 깨닫기 시작한 대출기관이 늘어나면서 부실 부동산의 압류가 늘어나고 있다고 WSJ은 분석했다.
WSJ은 "미국 경제가 침체에 접어들고 해고가 늘어나 사무공간 수요가 더 줄어들 경우 상업용 부동산 가치는 앞으로 더욱 하락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DC에선 최근 다수 건물이 헐값에 팔렸는데, 보험회사 스테이트팜의 경우 최근 백악관 인근 사무용 건물을 압류해 1천760만 달러(약 243억원)에 매각하기도 했다. 이는 건물주가 2010년에 산 값 대비 70% 할인된 수준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과거 역사에 비춰보면 압류의 증가는 부진한 시장 상황이 바닥에 다가가고 있음을 가리키는 신호가 돼왔다고 WSJ은 언급했다.
최근 워싱턴DC 건물 2채를 헐값에 매입한 부동산 개발업자 맷 페스트롱크는 "대출기관들은 이제 담보물 가격에 좀 더 냉정해지고 있다"며 "이는 시장 사이클 국면이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다만, 시장이 바닥에 다가가고 있더라도 상업용 부동산 업계가 느끼는 고통은 장기화할 수 있다고 WSJ은 지적했다.
규제당국도 상업용 부동산 시장 침체가 금융 시스템에 미칠 잠재적인 충격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시장정보업체 트렙에 따르면 올해부터 2027년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상업용 부동산 관련 대출 규모는 총 2조2천억 달러(약 3천조원)에 달한다.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 관련 연체율 증가도 향후 압류 자산이 추가로 증가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트렙 자료에 따르면 상업용 부동산 대출을 기초자산으로 해 발행한 상업용부동산저당증권(CMBS)의 연체율은 이달 8.11%로 2013년 11월(8.58%) 이후 약 1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 상황이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작고 금리가 또한 과거의 '제로(0) 금리' 시절보다 훨씬 높다 보니 부동산 개발업자들도 과거와 달리 자산을 정리하고 사업에서 발을 빼는 경우가 늘어난 분위기라고 WSJ은 전했다.
부동산 부문 투자은행 이스트딜 시큐어드의 니콜라스 자이덴버그 매니징 디렉터는 "이번 (침체) 사이클에선 많은 투자자가 사무용 건물의 가치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여긴다"며 "투자자들은 이제 '이봐, 난 싸울 생각 없어. 이제 그만둘래'라고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