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유례없는 저출산에 '인구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했습니다.
그러면서 일가정 양립과 보육, 주거에 초점을 맞춰 육아휴직급여 월 최대 250만원, 연 2주 단기육아휴직 도입, 출산 가구 주택 우선 분양 등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생활밀착형 대책들을 내놨는데요.
특히 예상치 못했던 깜짝 대책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바로 결혼과 출산을 가로 막는 가정 내 육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외국인 가사 관리사'를 본격 도입하는 것입니다.
이미 시범 사업을 통해 오는 9월부터 서울에 필리핀 가사 근로자 100명이 들어오는데요. 정부는 시범사업을 마친 후 내년에 전국으로 확대하고 규모도 상반기까지 1200명으로 대폭 늘리기로 했습니다.
● "월 206만원 내고 굳이?"…외국인 가사근로자 실효성 논란은 "진행 중"저출생 대책은 실효성을 두고 늘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외국인 가사관리사' 전면 도입 계획이 발표되자 갑론을박은 더욱 뜨거워지는 양상입니다.
여전히 '월 이용료' 부담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용허가제(E-9, 비전문취업) 비자를 받아 들어오는 서울시의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은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근로자'로, 최저임금을 적용받게 되는데요.
이렇게 되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간 하루 8시간씩 가사서비스를 이용했을 때 올해 최저임금 기준을 적용해 월 206만 가량의 이용료를 내야 합니다.
지난해 기준 가사서비스 수요가 높은 30대 가구의 중위소득은 509만원이었는데요.
한 달 소득의 약 40%를 돌봄 서비스에 써야 하는 만큼 아이 키우는 가정에서 200만원이 넘는 돌봄 비용을 매달 지출한다는 건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겠죠.
일부에선 같은 비용이라면 차라리 의사소통이 잘 되는 한국인을 쓰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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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을 꼭 줘야 하나요?…"정부가 택한 방법은…."
당초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이 급물살을 탄 것도 '저렴한 가격' 때문이었습니다.
홍콩·싱가포르 모델처럼 월 100만원 수준의 이용료로 맞벌이 부부의 돌봄 비용 부담을 줄여주자는 취지였죠.
그렇다면 여기서 외국인 가사근로자에게 꼭 최저임금을 줘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을 적용 받는 근로자인 E-9 외국인 가사근로자에 최저임금을 주지 않는 것은 법을 어기는 일입니다.
또 외국인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도 비준한 '고용과 직업에서 차별을 금지'를 명시한 국제노동기구(ILO) 차별금지협약(제111조)에 위반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노동계는 외국인 돌봄서비스에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것은 외국인 가사근로자에 대한 차별이자 노동권 침해이며, 나쁜 일자리만 양산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고요.
최저임금 적용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결국 정부는 '우회적인 방법'이지만 나름대로의 묘안을 내놓았습니다.
이번 저출생 대책에서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 확대와 함께 '외국인 가사사용인 제도'를 신설하겠다고 한 건데요.
현행 근로기준법에는 '가사사용인'에 대한 예외 조항이 있는데, 이를 활용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가사사용인은 가구주와 직접 1 대 1로 계약을 맺기 법적 근로자가 아닙니다. 최저임금법과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즉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기에 임금 수준을 낮출 수 있단 얘기입니다.
앞서 설명했듯 우리나라는 ILO의 '고용·직업에서의 차별금지에 관한 제111호 협약'을 비준했지만, '사적 계약'이라면 이 협약을 피해갈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입니다.
정부는 이르면 연내 D-2(유학)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 유학생, F-3(동반)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의 배우자 등에게 가사 돌봄 활동 취업도 허용하기로 했는데요.
우선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않는 외국인 유학생과 근로자 배우자를 활용해 '가사사용인 제도'의 첫 발을 떼겠다는 구상입니다.
이와 별도로 민간기업도 외국인 가사사용인 도입·중개·관리가 가능하게 하는 제도도 추진 중입니다.
민간 중개업체가 외국인을 소개하고 국내 개별 가정이 계약하는 방식이 유력한 데, 도입이 확정될 경우 가사 돌봄 서비스 시장 구조와 규모에 큰 변화가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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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차등 적용 불가능?…"하향식 적용은 해외에도 없다"이처럼 정부와 서울시 등에서 외국인 가사관리사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배제'를 추진하지만,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사실상 어렵다"는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지난 20일 서울시청에서 서울연구원 주재로 열린 '최저임금 전문가 토론회'에선 국내 외국인 가사관리사 임금 문제를 두고 홍콩과 싱가포르 등의 사례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재현 부산대 법학연구소 특별연구원은 "법정 단일최저임금이 존재하지 않는 싱가포르, 입주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의 적용을 제외하거나 국적을 이유로 차등 임금을 적용하는 홍콩의 입법례는 한국의 제도 설계에 참고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고 말했습니다.
오상봉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ILO 차별금지 협약 위반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외국인에 대해서만 최저임금을 차별할 수 없다"고 주장했는데요.
홍콩과 싱가포르 사례에 대해서도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굉장히 저렴하게 사용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조사해보면 간접비용이 굉장히 많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는 최저임금액보다 '더 낮은' 최저임금 설정을 위해선 보다 구체적인 과학적 통계 제시와 법률상 명시적 근거 조항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보고서는 이 주장의 근거로 독일, 호주, 일본을 예로 들었는데요.
3개 국가 모두 복수의 최저임금을 운영하는데 국가(법정) 최저임금 보다 더 높은 최저임금을 지역과 업종에 따라 적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더 낮은 최저임금을 두자는 논의와 정반대입니다.
입법조사처는 "최저임금을 더 낮추는 '하향식' 최저임금 차등적용 논의는 과학적·객관적 통계, 그리고 현재 최저임금이 최저임금법이 의도한 최저임금보다 훨씬 높음을 입증하는 과정 없이는 타당성을 가지기 힘들 것"이라며 "해외 사례와 유사하게 단일 최저임금제도를 보완하는 성격의 구조를 설계해 기준 최저임금과 병행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