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등 정부의 의료개혁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100일째로 접어든 가운데, 대학병원의 경영 상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주요 병원들은 일제히 비상경영을 선포하며 대응하고 있지만, 줄도산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는 실정이다.
29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공의들이 지난 2월 20일 근무지를 이탈한 후 100일째 돌아오지 않으면서 주요 병원의 경영난은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주요 수련병원들은 3개월 넘게 이어진 집단 이탈로 진료와 수술이 급감, 누적되는 적자를 감당 못할 수준이라고 토로한다.
'빅5' 등 상급종합병원 중에서도 규모가 큰 곳에서는 하루에 많게는 10억원 이상 적자를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요 병원은 잇따라 '비상경영'을 선포한 뒤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차입금을 늘리면서 버티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기존 500억원 규모였던 '마이너스 통장'의 한도를 2배로 늘려 1천억원 규모로 만들었고, 경북대병원도 마이너스 통장 규모를 100억원에서 250억원으로 늘렸다.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등을 비롯해 전국 곳곳의 병원들은 의사를 제외한 간호사, 행정직 등을 대상으로 무급휴가 신청을 받고 있다. 일부 병원은 희망퇴직 신청도 받고 있다.
이에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해 수련병원에 건보 급여비를 선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건보 급여비 선지급은 정산이 완료되기 전 일정 규모의 급여비를 우선 지급하고, 추후 실제 발생한 급여비에서 다시 정산하는 것이다.
정부는 경영난을 겪는 병원의 신청을 받아 지난해 같은 기간 급여비의 30%를 우선 지급하고, 내년 1분기 이후 정산할 계획이다.
이 같은 대책 마련에도 의료계에서는 그동안 국내 의료를 이끌어왔던 대형병원이 줄도산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승범 상급종합병원협의회 회장은 "(전공의 집단이탈) 사태 장기화로 상급종합병원의 누적 적자가 임계점에 달하고 있다"며 "현재 상급종합병원은 존폐가 불투명한 위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의료계 내부에서는 정부가 각종 지원을 늘리고 있는 만큼 당분간 버틸 수 있으리라는 조심스러운 기대도 있다.
단기간 의료수익이 급감했다고 해서 그동안 공고하게 유지돼왔던 상급종합병원들이 순식간에 도산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은 "(도산 얘기가 나올 만큼) 위태로운 병원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정부가 병원들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정책을 마련하는 것으로 안다"며 "건보 급여비 선지급 등 지원책을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어 도산까지 이르진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