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병원에서 반드시 의사가 해야 하는 일까지 간호사에게 무분별하게 전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6일 대한간호협회(간호협)에 따르면 한 병원에서 환자 사망선고를 할 의사가 없어서 간호사에게 사망선고를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간호협은 의사들의 집단사직이 시작되자 지난달 20일 '의료공백 위기대응 현장간호사 애로사항 신고센터'를 개설하고 불법진료 지시 등에 대한 간호사들의 신고를 받고 있다. 이날 오전 9시까지 총 218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간호사들은 병원을 떠난 전공의의 업무까지 강제로 떠안으면서 과로와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고 증언했다.
신고 내용에 따르면 일부 병원에서 이제 막 입사한 신규간호사에게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 교육을 해서 업무에 투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급상황에서 고위험의약품을 구두로 처방받는가 하면, 여러 번 처방을 요청했음에도 처방이 내려오지 않았다는 신고도 접수됐다.
휴일인 주말에도 집에서 원격으로 환자 처방과 기록 작성을 하느라 무기력감과 우울감을 느꼈다는 간호사도 있었다.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이 시작되자 정부는 의료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간호사들이 의사 업무 일부를 합법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시범사업을 지난달 27일부터 실시했다.
시범사업에 따르면 전국 수련병원장은 간호사의 숙련도와 자격 등에 따라 업무 범위를 새롭게 설정할 수 있다.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의료기관에서 실시하는 의료행위는 민·형사적, 행정적 책임으로부터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정부가 간호사에게 허용된 업무범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아 일부 의료기관에서 이 시범사업을 악용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간호협회 관계자는 "시범사업 내용이 간호사의 숙련도에 따라 업무를 분담하면 되고, 민형사상 책임은 정부가 진다고 나와 있다 보니, 일부 의료기관에서 이를 악용해 간호사에게 무작정 일을 떠넘기고 있다"며 "정부에서 업무범위에 대한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간호협회의 요청에 따라 간호사 업무 범위를 더욱 구체적으로 규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고, 이번 주 중 의료기관에 배포할 계획이다.
가이드라인은 일반간호사와 PA간호사, 전문간호사를 구분해 전문영역과 숙련도에 따라 수행할 수 있는 업무 범위를 설정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