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 방향을 바꿀만한 지표는 이번에도 나오지 않았다. 미 노동통계국이 공개한 지난달(1월) 생산자물가지수는 전월대비 0.3% 상승해 기대치 0.1%는 물론 최근 둔화 추이를 깨뜨렸다.
현지시간 16일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주요 지수는 지난 소비자물가지수에 이은 생산자물가지수 실망감으로 인해 크게 흔들였다. 주요 500개 기업을 대표한 S&P500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24.16포인트, 0.48% 내린 5,005.57로 최고점을 반납했다.
엔비디아도 이날 약세로 전환하면서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은 전 거래일보다 130.52포인트, 0.82% 하락한 1만 5,775.65에 그쳤고, 다우존스 지수는 145.13포인트, 0.37% 내린 3만 8,627.99를 기록했다.
미 10년물 국채금리는 지표 발표 직후부터 급등해 4.1bp 오른 4.281%, 2년물은 7.6bp 뛴 4.644%를 기록했다. 국제유가는 지정학 위기와 달러화 영향으로 서부텍사스산원유 3월 인도분 기준 1.53% 오른 79.22달러로 작년 11월 이후 최고가를 기록했다.
● 시장 무너뜨린 PPI…이달말 PCE도 쇼크 온다
미국의 1월 생산자물가가 예상을 넘은 건 에너지 가격 하락과 무관한 서비스 물가가 여전히 견고하기 때문이다. 서비스 물가는 전월 대비 0.6% 상승했는데, 병원 진료비가 2.2% 상승한 것이 가장 크게 영향을 줬다. 반면 에너지 물가는 1.7% 하락을 이어갔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1월 근원 생산자물가는 0.5% 상승해 다우존스가 집계한 월가 전망치 0.1%를 넘겼다. PNC 수석 이코노미스트 커트 랭킨은 "한 달치 데이터가 추세를 만들지는 않지만, 지속적인 임금 압력과 소비자 수요로 예상을 뛰어넘었다"고 분석했다.
월가 이코노미스트들이 지난 소비자물가지수와 생산자 물가지수를 함께 반영한 1월 개인소비지출은 지난해 9월 이후 최고치, 근원소비지출은 5월 이후 최고치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뱅크오브아메리카, 바클레이스, 씨티, JP모건 등 10곳의 1월 개인소비지출 전망 중위값은 0.34%, 근원개인소비지출은 0.41%로 나타났다.
미 상무부 경제분석국에 따르면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개인소비지출은 지난해 11월 0.1%, 12월 0.2%를 기록했다. 월가 전망대로 나올 경우 에너지 외 물가 압력에 대한 시장의 우려는 더 커질 전망이다.
● 늦춰지는 인하 시계…6월 첫 인하 전망 71% 그쳐
이날 지표 악화로 인해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집계한 페드워치(FedWatch)에 따르면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금리를 동결할 확률은 89.5%, 5월 동결 확률도 66.2%로 치솟았다. 시장 참가자들은 6월 25bp 인하가능성을 52.2%로 여전히 올해 최대 4차례 가량의 금리인하가 이뤄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연준 인사들의 입장은 여전히 완강하다. 비둘기파적인 발언을 내놓던 인사들도 금리인하 시점이 더 지연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라파엘 보스틱 애틀랜타 연준 총재는 이날 CNBC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기 위해 해야할 일이 더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전날 뉴욕대에서 열린 연설에서도 1월 소비자물가지수를 언급하며 "인플레이션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보스틱 총재는 지난달 발언과 마찬가지로 올해 3분기 첫 금리인하가 이뤄질 것이라면서 연내 "2차례의 금리인하"를 전망했다. 또한 그는 시장의 유동성을 파악하는 역환매조건부채권(역레포)를 언급하며 "자금시장이 어느 정도 한계점에 근접했는지 관심을 두고 있다"고 전했다.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준 총재 역시 이날 연설에서 "인플레이션 안정이 가시화되었지만, 인내심이 더 필요하다"며 연준 내 신중론에 힘을 실었다.
● AI 수혜...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깜짝 실적
인공지능 반도체 수요가 증가하면서 반도체 설계, 생산, 부품 기업들에 시장의 자금이 몰려들고 있다. 웨이퍼 부품 업체인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는 4분기 매출 67억 1천만 달러로 예상 64억 8천만 달러를 넘겼고, 주당 순이익 역시 전년대비 19%증가한 2.13달러로 예상치 1.9달러를 상회했다. 잉여현금흐름은 23억 3천만 달러를 기록했다.
게리 디커슨 최고경영자는 "산업의 변곡점"이라면서 "인공지능 중요 고객의 차세대 칩 기술을 강화로 인해 계속해서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의 2분기 주당순이익 전망치는 1.79~2.15달러로 애널리스트 예상치 평균 1.78달러를 대폭 웃돌았다.
할렌 서 JP모건 애널리스트는 "향후 몇 년간 뛰어난 성과를 이끌어낼 여러 기술 변화 속 좋은 위치에 있다"며 비중 확대 의견과 함께 목표 주가를 기존 170달러에서 230달러로 높였고, 씨티의 아티프 말리크 역시 211달러로 목표치를 높여 제시했다.
● 10배 오른 뒤 급락 SMCI…오픈AI 타격입은 어도비
인공지능 열풍에 주식시장의 과열로 인한 후폭풍도 나타났다. 엔비디아 등 반도체를 기반으로 서버 공급을 주력으로 해온 슈퍼마이크로컴퓨터(SMCI)는 이날 개장 직후 1,077.87달러로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뒤 돌연 급락했다.
SMCI는 전날까지 1년간 약 947%, 올해 들어 250% 가까이 뛴 AI 최대 수혜주 중에 하나다. 이날 SMCI는 찰스 리앙 창업자가 블룸버그에 출연해 "더 많은 반도체 칩이 필요하다"며 현재 생산능력으로 250억 달러 매출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SMCI가 지난 실적 발표에서 제시한 2024 회계연도 매출 전망치 143억~147억 달러 범위를 뛰어넘는 숫자이지만 월가 기대치를 맞추지 못했다. 해당 발언 이후 SMCI는 오히려 낙폭을 키워 20% 가까이 하락 한 채 거래를 마쳤다.
한편 사진과 영상 편집 기술 선두 기업인 어도비는 전날 오픈AI가 공개한 영상편집툴 소라(Sora) 발표 타격을 입었다. 소라는 하늘·허공을 뜻하는 일본어(空·そら)에서 따온 이름이다. 오픈AI는 소라를 통해 검색하듯 문자 입력을 기반으로 현실 세계와 분간하기 어려운 최대 1분 이내의 영상 샘플을 전날 전격 공개했다.
오픈AI는 ChatGPT와 이미지 생성 도구인 DALL-E 이어 영상 제작까지 창작 소프트웨어 시장을 차례로 잠식해 나가고 있다. 이날 공개된 영상은 '산 정상에서 팟캐스트를 하는 개 두 마리', '눈 위를 걷는 매머드', 드론 없이 산토리니 상공과 캘리포니아 금광을 활주하는 영상 등으로 눈길을 끌었다.
생성형 영상 제작툴은 초기 쿠키를 먹은 뒤 조각이 사라지지 않는 등 허점을 노출한지 몇 개월 만에 석양의 빛, 동물의 움직임 등을 매우 사실적으로 구현해 냈다.
오픈AI는 소라에 대해 "제품을 광범위하게 적용하진 않는다"면서 "초기 피드백을 얻기 위해 연구를 공유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는 걸 도와줄 수 있는 물리적인 세계를 인공지능이 이해하도록 훈련 중"이라고도 밝혔다. 샘 알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는 레드팀의 위험성 테스트를 거쳐 베타 테스터들에게 공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텍스트 기반 이미지에 이어 영상툴까지 등장한 여파로 SaaS 기반 창작 도구를 제공해온 어도비가 장중 크게 흔들렸다. 어도비 주가는 이날 하루에만 -7.41%, 이번 주 약 12% 하락하며 주중 나스닥 주요 종목 가운데 가장 큰 낙폭을 기록한 채 거래를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