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행에 자원으로 사면된 범죄자들이 점점 더 많이 러시아로 돌아오고 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러시아 중부 칼루가에 사는 안나 볼티뉴크는 2014년 18세였던 딸 야나를 잃어 영영 볼 수 없게 됐지만, 야나를 강간하고 살해한 범인 예브게니 타타린체프는 불과 3년을 복역하고 나서 자유의 몸이 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용병단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러시아 감옥을 돌며 직접 대원 모집에 나섰는데, 타타린체프도 지난해 프리고진의 감옥 방문 후에 종적이 묘연해졌다고 한다.
볼티뉴크는 러시아 연방 교정당국에 타타린체프의 행방을 알려달라고 수없이 호소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나중에는 그가 사면됐다는 말만 겨우 전해 들었다.
볼티뉴크는 "타타린체프가 활보하고 있다"며 "내가 딸의 무덤에 갈 때 그는 친구들과 바비큐를 먹으러 간다"고 분개했다.
2022년 동원령으로 강제 징집된 러시아 남성이 대부분 전역일이 정해져 있지 않은 채로 전장에 투입돼 여전히 전투를 치르고 있지만, '자원자'인 죄수들은 6개월짜리 계약을 맺고 러시아 국방부의 지원을 받는 용병그룹에 합류했다.
이들은 전장에서 의무 기간을 보낸 이후 예전 거주지로 돌아오고 있으며, 일부는 이미 재범행에 나서고 있다. 이에 피해자와 가족들은 공포에 질려 있다.
피해자들은 심지어 범인들이 풀려났다는 사실을 당국으로부터 공식 통지 받지 못한 채, 남들에게 듣거나 피해배상금이 갑자기 끊겨 알게 됐다.
시베리아의 베르츠크에서는 2019년 차량을 훔쳐 팔려는 목적으로 한 여성을 살해한 남성이 풀려났는데, 주민들은 지난달 지역 택시 앱에 올라온 이 남성의 프로필을 보고 그의 사면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남성 역시 바그너그룹의 용병으로 일하고 나서 사면된 것으로 추정됐다.
러시아 서부 야로슬라블 출신의 니콜라이 오골로뱌크는 악마숭배 의식의 하나로 10대 청소년 4명을 살해해 복역하던 중 참전했다. 원래대로라면 2030년까지 감옥에서 지내야 했던 그는 전장에서 3개월을 보내면서 포탄 파편에 맞아 다쳤고, 지난 11월 고향에 돌아왔다.
오골로뱌크는 어머니에게 장미 꽃다발과 10만루블(142만원)을, 아버지에게는 자동차를 선물하며 귀향했고 주민들은 경악했다.
정작 오골로뱌크는 지역 언론 기자에게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감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에게 그 정도면 충분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그는 감옥에서 빨리 나오고 싶었던 것이 부분적으로는 참전한 이유라면서도 기본적으로는 "땀과 피로 속죄하기 위해"였다고 주장했다.
죄수들의 이른 귀환에 피해자 가족과 주민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지만 러시아 당국은 이 정책을 옹호했다.
이에 피해자들은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해외로 떠나기도 한다.
인권 변호사인 알레나 포포바는 가해자가 풀려난 뒤 안전에 위험을 느끼는 여성이 러시아를 떠날 수 있도록 도왔다고 전했다.
포포바 변호사는 "우리의 유일한 선택지는 이들 살인자·강간범에 의해 희생된 피해자들의 가족이 연대해 단체로 검찰과 대통령궁에 충분한 설명을 요구하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FT는 이 같은 과정이 "정의가 국가의 필요와 희망을 위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나라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포포바 변호사는 "이(러시아) 정권은 폭력이라는 한 가지 요소로 단결돼있으며 항상 가해자들을 옹호한다"며 "사법 시스템은 항상 살인자의 편이다. 집행유예, 사면을 받는 등 시스템이 이들을 보호해준다. 그리고 이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