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의 수석 외교 보좌관이 러시아 유튜버의 장난 전화를 걸러내지 못한 데 대해 책임지고 사임했다고 안사(ANSA) 통신이 3일(현지시간) 전했다.
멜로니 총리는 이날 총리 관저인 로마 키지궁에서 내각 회의를 주재한 뒤 기자회견에서 수석 외교 보좌관인 프란체스코 탈로가 사임했다고 밝힌 뒤 "이 문제는 잘 다뤄지지 않았고, 우리 모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탈로 보좌관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비롯해 이스라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주재 대사를 역임한 65세의 베테랑 외교관으로 올해 말 은퇴를 앞두고 불명예스럽게 옷을 벗었다.
멜로니 총리는 아프리카연합의 고위 외교관을 사칭한 러시아 2인조 유튜버의 장난 전화에 속아 전쟁 피로감을 토로한 약 15분짜리 통화 녹음이 전날 공개돼 국제적인 망신을 샀다.
실제 통화는 9월에 이뤄졌지만, 전날 온라인에 공개된 통화 녹음에서 멜로니 총리는 "유럽 지도자들이 전쟁에 지쳐 있다. 곧 우리 모두가 이 전쟁에 탈출구가 필요하다고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사실이 알려진 후 논란이 커지자 총리실은 성명을 내고 통화 내용이 사실이라고 인정한 뒤 "총리가 속은 것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멜로니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화 통화가 끝날 무렵 의심이 들긴 했지만, 사기꾼이라는 확신은 없었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는 이런 전화를 하루에 적어도 80통 이상 처리한다. 외교 보좌관실에서 전화를 연결해주면 당연히 그 사람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발신자를 가려내지 못한 직원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최대 야당인 민주당(PD)은 국가 안보에 대한 중대한 사안이라며 멜로니 총리에게 의회에 출석해 이번 사건에 대해 보고해달라고 요청했다.
멜로니 총리는 전쟁 피로감 발언에 대해서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멜로니 총리를 골탕 먹인 주인공은 각각 '보반'과 '렉서스'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러시아 유튜버 블라디미르 쿠즈네초프와 알렉세이 스톨야로프다.
스톨야로프는 전날 로이터 통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로봇처럼 말하는 다른 대부분의 유럽 지도자와 달리 적어도 멜로니는 진심을 얘기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도 이날 멜로니 총리가 "그의 입장과 생각"을 표현했다고 거들었다.
이들은 화려한 장난전화 이력을 갖고 있다. 피해자 중에는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해리포터'의 저자 조앤 롤링 등이 있다.
이탈리아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는 "이들은 러시아 정보기관과 연계돼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