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고금리에 한국이 대표적인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한국시간) "한미동맹은 바이든 대통령 재임 기간에 강화됐지만, 한국 경제는 미국의 급격한 금리 상승의 희생양이 됐다"면서 "연준의 결정과 이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전 세계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해 중순 9.1%까지 치솟았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을 이어온 끝에 작년 초 0%대였던 금리는 현재 5.25~5.50%까지 올랐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도 자국 통화를 보호하려는 의도 등을 이유로 비슷한 행보에 나섰다. 한국은행도 1년 반도 안 돼 10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해 지난 1월 이후 3.5%를 유지해오고 있다.
한국의 금리 인상에는 자국 내 물가 상승률과 주택 시장을 잡기 위한 목적도 있다. 그러나 미국 금리의 불확실성은 한국은행이 경제를 부양하는 동시에 자국 통화를 보호하려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난관이 되고 있다.
프레데릭 뉴먼 HSBC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이 한국은행의 손을 묶어놓은 형국"이라면서 "연준이 고금리를 너무 오래 두면 한국 경제가 약화할 수 있고, 이는 경제 성장에 추가적인 악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의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이후 소비는 정체되고 집값은 장기침체에 빠졌으며, 경제 성장도 둔화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1.4%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다.
연준이 올해 들어 4차례나 금리를 인상해 한국과 미국의 금리 격차가 2%포인트 정도로 벌어진 가운데, 한국은행은 금리 인상을 중단해 미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는 7% 떨어졌다.
미즈호은행의 켄 청 아시아 외환 수석 전략가는 "한국은행은 통화 안정성을 유지하기를 원하고 있으며, 더 높은 미국 금리를 따라잡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다만, 금리를 인상하는 것이 아니라 금리를 깎기 전에 미국 금리가 내려오길 기다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의 전쟁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도 문제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지난달 3.7%까지 내려오긴 했지만, 이는 한국은행의 목표치 2%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한국 가계와 기업의 부채 급증도 골칫거리다. 가계와 기업이 보유한 부채는 2분기 국내총생산(GDP)의 약 229%에 달해 3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가계 부채는 GDP의 105%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전세보증금까지 포함하면 157%로 올라간다.
노무라은행에 따르면 이자 지출 규모가 수십 년 만에 최고치에 근접했고 빚이 있는 가계는 소득의 약 40%를 부채 상환에 쓰고 있다.
노무라의 박정우 이코노미스트는 "과도한 부채 상환으로 인한 금융 스트레스는 한국은행이 연준보다 먼저 금리 인하를 시작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면서 "하지만 한국은행은 내년 4월까지는 금리를 동결한 뒤 (이후 금리 인하에 나서) 내년 말까지 2.5%로 낮출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