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정말 센세이션했지만, 이제 변신만 하면 좀 심심하죠.
거대 변신 로봇을 완벽하게 현실로 끌어내 많은 마니아를 만든 영화 트랜스포머는 사실 미국 자동차 산업을 상징하던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를 잘 보면 범블비를 비롯한 제너럴모터스 쉐보레 차량이 주로 등장하는데, 오토봇을 이끄는 대장 옵티머스 프라임만 제조 회사가 다른 거 아세요?
사실 영화만 아니었다면 굉장히 투박하다고 볼 수도 있는 전형적인 미국 트럭을 만든 회사인데, 그만큼 흔하고 잘팔리는 모델을 생산했다고도 볼 수 있겠죠?
대륙을 횡단할 정도의 장거리 운송에 최적화된 디자인 덕분에 트럭 판매량에선 웬만한 완성차 회사들 못지 않고, 영업이익률도 매년 연 10%가 넘으니 주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올해 들어서는 공급망 회복으로 주문이 밀려들면서 연말까지 공장을 풀 가동해야 할 정도라고 하는데, 대체 어떤 기업이기에 이런 시장을 쥐고 있는 걸까요?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미국 뉴욕 주식시장에서 반짝이는 기업들을 들여다보는 '바이 아메리카'
무려 84년 연속 흑자를 기록 중인 북미 대표적인 트럭 메이커이자, 전기 트럭 경쟁까지 대비하고 나선 운송 산업의 블루칩, 파카/팩카(PACCAR, 티커 PCAR)입니다.
파카는 본사가 현재 워싱턴 벨뷰에 있지만, 원래는 1905년 시애틀자동차 제조 회사로 출발한 곳이에요.
그러다 영국, 독일 자동차 회사들이 그렇듯 세계대전이 벌어지면서 전차, 군용 트랙터를 제작하면서 공장을 늘리고 미국 전역으로 사업을 키우게 돼요.
전쟁 이후엔 공백 상태나 다름없는 미 대륙 운송 차량을 자연스럽게 선점하게 됐고, 켄워스(Kenworth), 피터빌트(Peterbilt,1958년)를 차례로 인수한 뒤 지금의 구조를 갖췄다고 보면 돼요.
퍼시픽 카 앤 파운드리(Pacific car & foundry)로 이름을 바꿔 트럭 부품, 대출 회사까지 차렸다가 더 간결하게 파카(Paccar)로 재탄생한 회사입니다. 투박해보이지만 필요한 것만 딱, 군더더기를 싫어하는 회사처럼 보이기도 해요.
사실 전 세계 트럭시장 점유율로만 보면 고성능에 차체 제어기술로 빠지지 않는 독일 다임러(프라이트라이너), 폭스바겐그룹(만), 스웨덴 볼보 등이 주름 잡고 있는 단단한 시장이기는해요.
하지만, 파카는 이들 유럽계 트럭회사 공세에도 점유율 2, 3위를 지키면서 살아남아 매년 사상 최대 실적, 신고가를 쓰고 있습니다.
경기 침체 우려와 달리 팬데믹 이전 트럭 판매량을 2년 만에 회복했고, 미국 내 기계, 트럭 수요가 증가하면서 파카 역시 올해 주문 가능 수량을 이미 초과한 상태입니다.
이 회사가 이렇게 실속있는 성적을 매분기, 매년 기록하는 건 명확한 수요, 북미, 호주 대륙의 특수한 환경에 잘 맞춰진 품질, 서비스 때문이기도 해요.
우리나라나 일본은 도로가 그리 넓지 않다보니까 사고 위험을 줄이고, 골목에서 회전하기 쉽게 앞면은 납작하고, 지상고를 낮추는 형태가 많이 팔리 잖아요.
그런데 땅덩어리가 큰 나라들은 무슨 골목에서 트럭 몰 일이 얼마나 있겠어요. 심지어 초대형 컨테이너에 유류를 줄줄이 싣고 허허벌판을 달려야 하잖아요.
게다가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북미에서도 그야말로 억대 연봉을 받을 만한, 초극한 직업으로 꼽히는 직종이 트럭 운전사입니다.
미국에서 캐나다로 혹은 남미 대륙에서 워낙 먼 거리를 밤낮없이 며칠씩 운송해야하니까, 중간에 쉴 수 있도록 지붕이 크고, 정비가 쉬운 형태의 트럭이 오랫동안 인기를 끌어왔어요.
어떻게 보면 미국 감성이라고도 보여지는 이 트럭 디자인이 오랫동안 유지해야하고, 덕분에 같은 모델을 조금씩 변형해가며 최대 40년, 기본 수십 년씩 생산하다보니 이익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배경이 됩니다.
파카는 여기에 엔진, 트랜스미션을 포함한 웬만한 중요 부품들을 모두 직접 공급할 수 있도록 '파카 파츠'를 두고 수직 계열화하고 있거든요.
미국은 자동차 정비와 튜닝이 일반적이라서 오리지널 부품 대신 엔진(주로 커민스)도 심지어 다른 회사 제품을 끼워 쓸 수 있는데, 이런 부품 공급망에서 가장 발달한 트럭회사라고 보면 됩니다.
높은 지붕이 달린 컨벤셔널 트럭은 한 대에 새차 가격이 기본 2억 원 중반을 훌쩍넘고, 5년~10년 정도 된 중고차도 요즘 우리 돈 1억 원 이상을 호가하다보니 품질은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하죠.
게다가 비싼 차량 가격 탓에 한국에도 흔한 차량 대출 사업은 요즘처럼 금리 오를 때에 앉은 채로 돈이 긁어모으는 식인거죠.
전체 사업 부문별로 보면 매출에서 트럭과 파워트레인 매출로 75%, 부품 20%, 금융부문으로 5%를 벌어들이고 있다고 해요.
그 중에서도 엔진을 포함한 핵심 부품도 효자 사업인데, 여러 차종에 같은 걸 공급하면 브랜드를 여러개 두고 판매는 최대한 늘리면서 대량 생산해 비용을 만회하는 운용이 가능한겁니다.
파카는 주력 차량 브랜드만 유지하는게 아니라 경쟁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인수 합병, 그러니까 다른 트럭회사와 부품회사 인수, 기술회사 인수도 끊임없이 진행해왔어요.
앞에서 얘기한 트랜스포머에 등장한 모델 대표적이죠.
지금은 바뀌었는데, 옵티머스 프라임 초기 모델은 북미 기준 클래스8, 15톤 이상 초대형 트럭의 전형적인 차량 '피터빌트 379'인데, 이 브랜드도 사실 초기 인수한 회사의 대표 모델이에요.
파카는 피터빌트와 켄워스도 대중적인 트럭, 보다 고급인 트럭으로 나눠 핵심 브랜드로 키워가는 중이고, 여기에 유럽 운송, 광산, 산림 분야에서 특히 수요가 많은 중형 트럭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네덜란드의 다프(DAF)도 갖고 있어요.
네덜란드가 알고보면 제조 강국이잖아요. 필립스, ASML 그리고 오렌지색을 상징으로 한 이 트럭도 포함됩니다. 다프 트럭은 파카에 합병된 영국 레이랜드(Leyland) 공장을 통해 유럽에 팔리는데 덕분에 공장이 자리한 영국 내 1위, 팬데믹과 공급망 위기에도 파카의 유럽내 점유율을 유지하는 기반이 됐어요.
고효율로 84년째 흑자를 써온 파카는 이제 영원한 블루칩으로 남으려 기술기업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바로 잠재적인 경쟁 상대, 아마 일론 머스크 팬들은 여력이 되면 ' 한 대 사고 싶다'고 하실지도 모를 '테슬라 세미 트럭' 때문이죠.
펩시가 대량 구매 계약을 진행하면서 마케팅효과를 서로 누리고 있고, 유통 기업들 사이에서 조금씩 팔려나가고 있어요.
유럽과 미국에서 친환경 차량 규제가 강화되면서 내연기관 기반, 앞서 보여드린 앞코가 큰 트럭들의 설자리가 점점 줄어드는게 현실이죠.
하지만 트럭만 100년 넘게 만들고 있는 파카도 변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일본 도요타와 수소연료전지 트럭, 자체적인 전기 트럭 상용화할 채비를 마쳤고, 현대차도 투자한 미국 자율주행기업 오로라 기술을 탑재해 지난 CES에서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마치 거대 로봇이 변신하듯 첨단 기술로 무장한 초대형 트럭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기도 합니다.
트럭이 이렇게 많이 팔릴까 싶지만, 전세계 운송 시장에서 지형을 가리지 않고, 지역 곳곳에 라스트마일까지 책임지는 핵심 수단은 운송시장의 72%를 차지한 트럭들입니다. 초대형부터 중소형으로 세분화된 트럭 운송 시장이 그만큼 크다는 거겠죠.
팩카는 트럭 판매 대수는 지난해 기준 52만대나 팔린 다임러의 1/3수준으로 조금 밀리지만 초대형 트럭, 특정 분야만 오래 집중한 덕분에 매출 대비 순익익 비중, 트럭 한 대당 순이익 면에서 다임러, 볼보, 이베코 등을 압도하는 경쟁력을 갖고 있어요.
이를 기반으로 매분기 실적 전망치를 깨부순 상태이고, 팬데믹 이전 트럭 생산량까지 회복하면서 월가 투자의견 가운데 매도 의견없이 절반 이상이 중립 의견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캐시우드의 아크인베스트먼트가 먼저 알아보고 담기도 했고, 올해들어 월가 투자은행들도 12개월 목표주가는 주당 81달러, PER은 10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올해까지 사상 최고가, 거침없는 기세를 보여준 독특한 트럭 회사. 아이언맨 일론 머스크가 만든 첨단 전기트럭의 도전을 앞두고, 초대형 트럭 강자인 파카가 영화처럼 멋진 변신 기술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