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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데믹 시대의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 [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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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 4개월 동안 세계 경제와 우리 경제에 커다란 충격을 줬던 코로나 사태가 공식적으로는 마감됐다. 지난 5월 유엔이 코로나 방역체제 해제를 선언한 데 이어 우리도 6월부터 동참했기 때문이다. 모든 예측기관들은 엔데믹 시대에도 세계 경제와 우리 경제는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한다.

두 가지 요인 때문이다. 하나는 코로나 사태가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채 엔데믹 시대를 맞는 ‘미완성에 따른 두려움’이다. 다른 하나는 코로나 사태에서 입증했듯이 엔데믹 시대에도 ‘혼돈 속에 대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앞날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놓지 못한 것에 따른 우려가 겹치고 있기 때문이다.

엔데믹 시대에 세계 경제와 우리 경제는 환경 면에서는 ‘뉴 노멀’에서 ‘뉴 앱노멀’, 위험관리 면에서 ‘불확실성’에서 ‘초불확실성’으로 한 단계 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뉴 앱노멀·초불확실성 시대가 무서운 것은 어느날 갑자기 누니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경고한 초거대 위협(mega threats)’가 닥친다는 점이다.


엔데믹 시대를 맞은 지난 한 달 동안 세계 경제는 ‘속이 꽉 찬 버거(solid burger)’가 아니라 ‘속이 빈 버거(nothingburger)’이 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외형상으로 2차 대전 이후 세계 경제 질서를 주도해온 국제기구와 국제규범이 남아 있더라도 실질적인 역할과 구속력은 더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 속을 채워줄 새로운 국제기구와 국제규범이 태동될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과 중국이 경제패권을 놓고 대립하는 과정에서 ‘화합’보다 ‘편 가르기’에 더 열을 올리고 있다.

최악의 경우 무정부·무규범의 혼돈 시대를 맞을 수 있다. “짐의 말이 곧 법이다”할 만큼 경제 절대 군주 시대에서는 새로운 국제기구와 규범을 만들기 위해 각국이 머리를 맞대는 일조차 어렵다. 설령 만들어지더라도 구속력과 이행력이 따르지 않는 느슷한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이미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보여줬고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장기집권 과정에서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국제통화질서도 ‘시스템이 없는’ 지금의 체제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러시아 등 사회주의 국가를 중심으로 탈(脫) 달러화 움직임이 빠르게 진전되는 가운데 유로화, 위안화, 엔화 등 현존하는 통화가 달러화를 대체하기도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를 발행하는 것을 계기로 디지털 기축통화 자리를 놓고 미국과 중국 간 또 한 차례 환율전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기가 발생할 것인가에 대한 우려는 오히려 코로나 사태 때보다 더 높아졌다.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풀린 돈이 회수되지 않은 여건에서 코로나 사태를 맞아 중앙은행의 역할이 포기됐다는 비판을 들을 만큼 더 많이 풀렸기 때문이다. 초저금리로 부채도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종전과 다른 점은 중국과 미국의 금융위기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졌다는 점이 실제 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차기 금융위기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문제는 ‘다음 세대’보다 ‘다음 선거’, ‘국민’보다 ‘자신의 자리’만을 생각하는 정치꾼이 더 판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현대통화론자(MMT)의 주장처럼 돈을 더 풀고 빚을 더 내서 쓸 경우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대형위기가 찾아올 가능성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등과 같은 국제경제기구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여건에서는 글로벌 초대형 위기로 발전될 수도 있다.

산업적으로는 알파 라이징 산업(α-rising industry), 빈곤층 비즈니스(BOP business), 해빙에 따른 북극과 그린란드에서 시작되는 신천지 산업(new frontier industry), 대중화 단계에 들어가는 우주항공 산업(off the earth industry) 등 종전에 볼 수 없었던 ‘제3 섹터’가 부상하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대량 실업에 따른 사회병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제조업도 계속해서 중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매년 초 스위스 작은 휴양 도시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이 단골 메뉴처럼 지적해온 디스토피아 문제는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디스토피아란 유토피아의 반대되는 개념인 반(反)이상향으로, 예측할 수 없는 지구상의 가장 어두운, 특히 극단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말한다.

해가 갈수록 이상기후 현상이 ‘대(great)’가 붙어야 할 정도로 심했다. 북미 지역은 대폭염, 중남미 지역은 대가뭄, 아시아 지역은 대태풍, 유럽 지역은 대홍수, 아프리카 지역은 대사막화, 오세아니아 지역은 강한 바람에 편승한 대쥐떼 등으로 전 세계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엄격히 따진다면 지난 3년 4개월 동안 전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 사태도 이상기후에 따른 디스토피아 문제다.

문제는 한국 경제다. 어떤 변화에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원더링(wandering)’, 즉 방황의 시기를 겪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선책인 뉴 앱노멀·초불확실성 시대에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초거대 위협을 주도하지 못하더라도 적극적으로 다가가 두드려야 차선책이라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미국과 중국 간 경제패권 다툼 과정에서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다. 투키디데스 함정은 신흥 강대국이 급부상하면서 기존 강대국이 느끼는 두려움으로 전쟁이 불가피해지는 상황을 말한다. 기원전 5세기 스파르타가 아테네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27년 동안 치렀던 펠로폰네스 전쟁을 다룬 투키디데스의 이름에서 비롯된 용어다. 2015년 9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언급한 이후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은 이미 이 함정에 빠져 경제패권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시각도 많다. 트럼프 정부는 출범 초부터 추구했던 달러 약세에 맞서 시진핑 정부가 위안화 약세로 맞대응하는 과정에서 ‘환율전쟁’ 위기에 몰리다가 ‘관세전쟁’으로 한 단계 높아졌다. 조 바이든 정부 들어서는 미래기술산업 주도권을 놓고 ‘첨단기술 전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3차 대전을 경고할 정도다.

한반도는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져 운명이 크게 엇갈린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19세기 이후 일본이 급부상함에 따라 당시 강대국이었던 중국(청·일 전쟁), 러시아(러·일 전쟁), 미국(태평양 전쟁)과 전쟁을 잇달아 치르는 과정에서 ‘일본 식민지 시대’와 ‘남북 분단’이라는 한반도의 비극이 태어났다.

국제관계는 냉혹하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 변화에 미국, 중국, 북한이 전략적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지금보다 더 복잡한 ‘수(數)’ 싸움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중재자 역할’이다. 이 역할을 잘한다면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는 반면 잘 수행하지 못한다면 의외로 큰 시련이 닥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갈라파고스 함정에 빠졌다’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로 급변하는 세계 흐름에 잘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대외환경에 크게 의존하고 미국과 중국 간 중간자 위치에 놓여 있는 한국 경제 입장에서는 특정 가치와 이념에만 편중된 프레임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탈피하지 못할 경우 더 치명적이 될 수 있다. 재테크 시장도 한국 경제 모습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한국경제TV 해설위원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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