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이 안 돼서 아이 몸에 땀띠가 나고 잠을 설쳤습니다. 인터넷 카페에서 소개받은 옆 숙소 분이 연고를 빌려주셔서 아이가 많이 호전됐어요."
아내와 21개월 딸을 데리고 여행을 다녀온 이용현(38)씨는 "결혼 10주년 기념이었는데 평생 잊지 못할 여행이 됐다"며 웃었다. 이씨는 대한항공 KE8422편을 타고 와 30일 0시20분께 인천공항 제2터미널 입국장을 나왔다.
지난 22일(현지시각) 괌 국제공항이 폐쇄된 지 일주일만인 전날 오후 8시48분 내국인 승객 188명을 태운 진에어 LJ942편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착륙하자마자 기내에서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다고 탑승객들은 전했다. 오후 11시51분 대한항공까지 29일에만 민항기 5편이 무사히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슈퍼태풍' 마와르로 괌에 발이 묶였다가 전날부터 귀국한 관광객들은 예정에 없던 고되고 불안한 여행 속에서도 서로 배려하고 나누는 시민의식을 발견했다고 입을 모았다.
7살 딸과 여행을 다녀온 조상철(38)씨와 김두리(34)씨는 "머물던 리조트에 물이 나오는 시간이 제한돼 현지 체류 중인 한인들끼리 서로 목욕실을 빌려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인들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서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되는 곳을 알려주거나 상비약을 나눠주는 분들이 계셨다. 아이들 장난감도 순번을 정해 공유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여행객들은 갑작스러운 재난으로 숙소를 구하기 어려운 데다 무더위에 수도 공급마저 끊겨 고충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다녀온 안상효(42)씨는 "수도가 끊겨 호텔에서 통에 담아 건네준 빗물을 직접 변기에 부어야 하는 게 제일 불편했다"고 말했다.
친구와 함께 괌에 다녀온 조모(38)씨는 "호텔에서 쫓겨나 현지에서 빌린 차 안에서 하루를 보낸 적도 있다. 간신히 숙소를 잡았지만 단수로 목욕을 이틀에 한 번만 했다"고 말했다.
임신부 안다경(33)씨와 남편 유한결(44)씨는 "방 내부 온도가 30도까지 올랐지만 물이 끊기고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아 어려움이 컸다. 물티슈로 몸을 닦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김봉준(37)씨는 "아이 체온이 39도까지 올랐는데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게 가장 힘들었다. 정전으로 숙소 승강기에 몇 번 갇히기도 했다"며 미간을 찌푸렸다.
계획보다 길어진 여행 탓에 낭패를 본 이들도 많았다. 곽민주(34)씨는 "나는 프리랜서여서 일정에 차질이 없었는데 숙소에 함께 묵은 사람들 일부는 갑작스럽게 연차를 써야 해 걱정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티웨이항공을 타고 귀국한 석희수(39)씨는 "공항에 주차해놨는데 요금이 걱정"이라며 "하루 2만5천이라고 들었는데 공항에 문의했더니 별도 지시는 없었다더라"며 아쉬워했다.
30일 0시10분께부터 제2터미널 입국장을 나오기 시작한 대한항공 탑승객들은 대부분 반팔 티셔츠에 슬리퍼 등 편안한 복장이었다. 잠깐 수돗물이 나오는 사이 손빨래를 하고 왔다는 관광객도 있었다.
여행이 길게는 일주일 연장된 탓에 일부는 경비가 바닥났다고 한다.
송도에 거주하는 이모(46)씨는 "여행경비로 300만원을 예상했는데 배 가까운 비용을 지출했다"며 "나는 여유자금을 챙겨가 다행이었지만 현지에서 돈을 꾸는 사람도 있었던 걸로 안다"고 말했다.
이국에서 재난을 맞은 가족을 가슴 졸이며 기다리던 시민들도 일찌감치 공항에 나와 마중했다.
김모(40)씨는 자녀와 함께 아내를 맞았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은 엄마를 만나면 "웰컴"이라고 외치고 싶다며 들뜬 표정이었다.
최동기(61)씨는 여행 다녀오는 딸을 전날 오후 8시30분부터 기다렸다. 그는 "딸이 에너지바와 컵라면, 생수로 끼니를 때웠는데 그것도 구하기 힘들다고 했다"며 "송금하고 싶어도 단전 때문에 보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외교부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날 한국에서 괌으로 출발한 우리 국적기는 총 11편이다. 가장 먼저 인천공항에 도착한 진에어를 시작으로 대한항공·티웨이항공·제주항공 등 항공편이 30일까지 약 2천500명을 수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