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납치·살해' 사건은 6개월간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인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범행을 주도한 '3인조'는 준비 단계에서 '더 철두철미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하거나, 자신들이 용의선상에서 배제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팀장 김수민 형사3부장검사)은 28일 사건의 주범 이경우(36)·황대한(36)·연지호(30)와 이들과 범행을 공모한 유상원(51)·황은희(49) 부부를 각각 구속기소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검찰이 확보한 범행 차량 블랙박스 영상 829개와 이들의 휴대전화 음성녹음과 통화 내용 등에는 이런 정황이 자세히 담겼다.
납치를 실행한 황대한과 연지호는 자신들의 범행이 폐쇄회로(CC)TV에 찍힐 것을 걱정하면서도, 피해자 A씨와 연결고리가 없다는 점에서 수사망을 피할 수 있다고 여긴 것으로 파악됐다.
블랙박스에는 황대한이 연지호에게 "일단 우린 연관성이 없다고 했잖아. 우린 용의선상에서 배제야. 수사 기간도 오래 걸리고"라고 말한 내용이 담겼다.
이들은 "우리가 철두철미하지 못해 보이지?", "어떻게 죽이겠다는 거냐" 등 대화를 나눈 것으로도 알려졌다.
범행 당일 오후부터 저녁까지 황대한과 이경우가 10차례 이상 통화하며 범행을 논의한 사실도 검찰 수사 결과 확인됐다.
이날 저녁 황대한이 연지호와 A씨를 미행했고, 이경우에게 전화로 "(A씨가) 가방을 들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어떻게 움직일지 몰라서…앞에서 끌고 와야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역시 계획 범죄임을 보여주는 정황이라고 검찰은 판단했다.
황대한과 연지호는 A씨 납치 후에도 곧장 이경우에게 연락했고, 이경우는 그 즉시 유씨 부부에게 연락해 범행 상황을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유상원·황은희 부부가 2020년 A씨의 권유로 가상화폐 '퓨리에버코인' 1억원을 직접 구매하고 투자자를 모집해 30억원을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본 것을 범행 동기로 봤다.
부부가 투자한 퓨리에버코인은 1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으로 폭락했는데, 투자금으로 쓴 가상화폐 이더리움은 같은 기간 4배 이상 가격이 폭등해 앙심을 품었다는 것이다.
이경우가 부부의 환심을 사 함께 가상화폐 사업을 할 계획으로 범행을 제안했고, 경제적으로 어렵던 황대한·연지호 등을 끌어들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부부의 손실금을 메워주고 나머지 금액은 나눠 가지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유상원·황은희 부부도 범행을 보고받고 가담한 점이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부부는 이경우에게 착수금 7천만원을 준 것 등 일부 사실관계만 인정하고 혐의는 전면 부인하며 수사와 재판에 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확보한 황은희의 구치소 작성 메모에는 7천만원의 성격에 대해 어떻게 진술할지에 대한 고민과 투자 실패에 대한 원망 등이 적혀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검사가 추궁하더라도 절대 굴복해선 안 된다'는 다짐과 변호사 상의 없이는 검찰에 출석하지 않겠다는 방침도 적혔다.
검찰은 범행 이후 이들이 용인의 한 호텔에서 A씨의 휴대전화로 가상화폐거래소에 접속해 가상화폐를 빼돌리려 했지만, 로그인에 실패해 미수에 그친 사실도 새롭게 파악했다.
3인조는 A씨를 납치한 뒤 마취제로 사용되는 향정신성의약품을 주사했는데, 이에 정신이 온전치 못한 A씨로부터 정확한 거래소 비밀번호를 받아내는 데 실패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이들이 시신을 대전의 한 야산에 암매장할 때에는 A씨가 이미 약물 중독으로 사망한 상태였다. 이경우가 '뒷처리'를 지시하자 황대한이 A씨에게 두 차례 더 주사를 놓은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A씨의 휴대전화는 유상원·황은희 부부가 이튿날 부산 앞바다에 버려 확보하지 못했다.
검찰은 이런 수사 결과에 따라 이경우 등 3인조와 부부에게는 강도살인·강도예비 혐의를 적용했다. 3인조에는 시체유기 및 마약법 위반 혐의도 적용했다.
또 유상원과 이경우가 A씨의 가상화폐 거래소 접속을 시도한 데 대해서는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추가했다.
A씨의 동선을 파악해 범행에 조력한 황대한의 지인 이모씨와, 간호조무사로 일하던 병원에서 살인에 쓰인 향정신성의약품을 빼돌려 3인조에 제공한 이경우의 부인 허모 씨는 각각 강도예비, 강도방조 혐의 등으로 재판에 함께 넘겨졌다.
검찰은 "보완 수사를 담당한 검사가 직접 공판에 관여해 빈틈없는 공소 유지를 해 피고인들에게 죄에 상응하는 중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