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억원대 전세 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 이른바 '건축왕'이 전세사기 사태가 불거진 지난해 말부터 구속 전까지 피해자들에게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며 계속 회유한 정황이 파악됐다.
24일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사기와 공인중개사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건축업자 A(61)씨는 지난 1월 대책위 관계자를 직접 만나 '대책위 제안 가이드라인'이라는 문건을 전달했다.
A씨는 대책위와 합의가 필요한 이유로 '이번 사태는 빌라왕 등의 전세 사기와는 다르다'며 '(임대인들이 피해자들을 돕고자 만든) B 업체의 전체 자산이 7천억원대로 추산돼 대출금과 전세 보증금을 빼도 최소 1천억원 이상의 잉여 자산이 있다'고 문건에 명시했다.
이 문건에는 '전세사기로 매도당하면서 매각에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고 경찰 수사 등으로 수습할 시간 없이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며 '임대인이 구속되면 임차인 보증금 해결은 불가하고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내용도 담겼다.
실제 올해 3월 한 피해자가 받은 '임차금 미반환 채권 확인서'에서도 B 업체는 주택 2천864채와 동해이씨티 부지 185만1천㎡ 등 8천억대 보유 자산을 유동화해 2026년 4월 청산 지급하겠다고 주장했다.
A씨의 회유는 대책위에 준 문건 전반에 걸쳐 계속됐다. 그는 오는 6월 30일까지 수습 기간을 달라고 한 뒤 대책위와 합의가 이뤄지면 은행들과 경매 중지·취하를 협의해 피해 주택의 분양과 신규 임대를 하겠다고도 약속했다.
그는 '해당 기간 임차인들은 집회와 언론 제보를 중단하고 관리비를 정상적으로 납부하라'고 종용하며 '보증금을 지키고 시세 차익을 극대화하려면 낙찰보다 매수가 나은데 집을 매수하려는 임차인에게는 대출 이자나 세금 지원을 검토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은행과 협의 중이라는 A씨의 주장과 달리 당시 피해 세대들의 경매 중지나 취하는 이뤄지지 않았다.
한 건축왕 전세사기 피해자가 지난 1월 A씨와 한 통화 녹취에는 "경매 막을 거예요"라며 "이제 분양 대행사들이 많이 몰려오고 있고 분양해서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저희 물건들도 지금 팔고 있으니까 조금 기다리세요"라는 A씨의 답변이 담겼다.
A씨는 또 어떤 상황인지 말을 해 달라는 피해자의 말에 "최선을 다한다고 했으면 됐지 선생님만 있느냐"며 고함을 치기도 했다. 결국 이 피해자의 집은 1차례 유찰 후 지난 2월 1억900만원에 낙찰됐다.
A씨는 지난해 12월 23일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됐지만, 결국 지난 2월 20일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은 현재 피해자 481명으로부터 전세 보증금 388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 A씨 일당 61명에게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죄가 적용되면 조직 내 지위와 상관없이 조직원 모두 같은 형량으로 처벌받는다.
(사진=전세사기 피해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