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 전남 순천에서 발생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으로 중형을 선고받았던 부녀의 재심 개시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첫 심문기일이 21일 광주고법에서 열렸다.
'재심 전문'으로 잘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가 이들 부녀에 대한 수사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재심을 요구하고 있다.
광주고법 형사2-2부(오영상 박성윤 박정훈 고법판사)는 이날 오후 4시 201호 법정에서 살인, 존속살해 등 혐의로 기소된 A(73)씨와 딸 B(39)씨의 재심 개시 여부를 판단하는 첫 심문기일을 열었다.
A씨 부녀는 2009년 7월 6일 오전 청산가리를 넣은 막걸리를 아내이자 어머니인 C(사망 당시 59세)씨에게 건네 C씨를 비롯한 2명을 숨지게 하고 2명을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고 부녀의 부적절한 관계가 살인 동기가 됐다는 검찰 수사 내용도 믿기 어렵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자백을 번복했지만 중요한 진술은 서로 일치한다며 A씨에게 무기징역, B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고 2022년 3월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됐다.
이 사건은 핵심 증거인 청산가리가 막걸리에서 검출됐으나 사건 현장 등에서 발견되지 않았고, 청산가리를 넣었다던 플라스틱 숟가락에서도 성분이 나오지 않아 논란이 있었다.
지난해 1월 A씨 부녀의 재심 사건을 청구한 박준영 변호사는 형사소송법 420조 7호에 따른 재심 사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거나 가벼운 지적장애를 가진 부녀에게 검찰이 허위 자백을 유도하고 유리한 증거를 누락했다는 박 변호사의 입장에 대해 재판부가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야 재심이 개시될 수 있다.
당시 검찰 조서에 따르면 2009년 7월 2일 A씨가 순천 아랫장에서 막걸리를 사 왔고 창고에 청산가리(청산염)가 보관돼 있었다.
이후 7월 6일 새벽 B씨가 막걸리에 청산가리를 섞어 화단에 놓았고 이를 피해자가 들고 나가 동네 주민들과 나눠 마셨다는 것이다.
A씨 부녀는 막걸리, 청산가리를 사거나 보관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경찰이 A씨와 B씨의 행적을 파악하려고 5일간 마을에서 순천 시내까지 도로와 버스 폐쇄회로(CC)TV를 조사했고 B씨만 막걸리 없이 버스로 이동한 것으로 파악했음에도 검사가 CCTV 기록이 없다고 거짓말하며 법원에 제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 A씨처럼 오이 농사를 짓던 주민 50명 이상이 "농사에 청산가리를 쓰지 않는다"고 증언했음에도 검찰이 해충 박멸을 위해 유황을 태우는 것을 청산가리로 착각한 주민들의 진술 앞부분만을 활용했다고 주장했다.
피고인들의 진술 영상도 일부만 녹화했고 자술서 작성 경위도 석연치 않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재심청구인들이 부친의 성추행 및 청산가리 범행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음에도 검사는 'B씨가 낳은 아이가 A씨 자식인 것 같다'는 둥 피고인들이 한 적도 없는 진술을 제출해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허위공문서 작성죄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이어 "재심청구인들은 강압수사에 취약한 대상임에도 반복되게 허위·유도 심문을 했다. 담당 검사와 수사관들이 모두 공범"이라며 "재심을 개시하고 재심 기간 형집행정지를 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들의 재심 절차와 관련한 2차 심문기일은 오는 5월 23일 열린다.
(사진=순천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