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행정부가 갑작스럽게 붕괴한 실리콘밸리은행(SVB)의 매각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안전장치를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12일(현지시간) 연방정부가 예금보험 대상이 아닌 모든 SVB 예금을 보호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 사안을 잘 아는 복수의 소식통은 재무부,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지난 주말 이러한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통상 FDIC는 한 은행 계좌당 최대 25만달러에 한해 보험을 제공하지만,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등 기관들을 주로 상대하는 SVB의 경우 전체 예금의 거의 90%가 이러한 보험 한도를 초과한다.
따라서 상당수 고객사는 SVB 매각이 지연되거나 실패할 경우 오랫동안 돈을 찾지 못해 월급 지급이 늦어질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스타트업들의 줄도산 우려마저 나온다.
한 소식통은 WP에 "그들(재무부, 연준, FDIC)은 모든 비보험 예금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정치적으로 합리적인 길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방안은 특정 은행의 파산이 광범위한 금융권 시스템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보험 한도를 초과한 예금도 보호할 수 있다는 연방예금보험법 조항을 근거로 한다.
다만 이 조건을 충족하려면 연준 이사회와 FDIC 이사회에서 각각 3분의 2가 '시스템 리스크가 우려된다'고 판단하고, 재닛 옐런 재무장관도 동의해야 한다고 WP는 전했다.
당국의 예금 보호 확대 추진은 SVB 매각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비상 대책 중 하나다.
FDIC는 전날 밤부터 이날 오후까지 SVB 매각을 위한 경매 절차를 진행했다.
미 CNBC 방송도 연준과 FDIC가 SVB 매각 실패를 대비해 2개의 다른 금융 기구를 통해 SVB 사태를 관리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첫 번째는 WP에서 보도한 대로 연방예금보험법에 따라 이 은행의 비보험 예금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SVB에 노출된 다른 금융권을 지원하기 위해 '일반 금융기구'를 설치하는 방안이라고 방송은 전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연준은 은행들이 손실 없이 자산을 현금으로 바꿀 수 있도록 연준의 대출 기구인 할인창구(discount window) 이용 조건을 완화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이는 SVB가 밀려드는 예금 인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대부분 미 국채로 구성된 자산을 어쩔 수 없이 큰 손해를 보고 매각하는 바람에 초고속 붕괴한 것과 비슷한 일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실제로 지난 10일 SVB 파산 절차가 시작된 후 일부 은행들은 유동성을 강화하기 위해 이러한 할인창구에 의지하기 시작했다고 이 사안을 잘 아는 소식통이 블룸버그에 전했다.
미 금융당국은 다른 기업이 통째로 SVB를 인수하는 것을 최선의 시나리오로 보고 있지만,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IT 전문 온라인 매체 디인포메이션은 다른 지역은행들이 SVB 경매 절차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며 PNC파이낸셜, US뱅크, 트루이스트, 캐피털원과 같은 지역 은행들이 '이상적인 입찰자'라고 전했으나, 일부 잠재적 인수자들의 관심이 식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SVB 인수에 관심을 보였던 PNC파이낸셜과 캐나다 로열은행(RBC)이 발을 뺀 것으로 보인다.
자산 기준 미국 10대 은행에 속하는 PNC파이낸셜은 당초 SVB 전체를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하다 부분 인수로 방향을 선회했고, 결국 인수 논의에서 발을 빼기로 결정했다고 한 소식통이 밝혔다.
RBC도 잠재적 리스크와 캐나다 당국을 설득하는 문제 등을 고려해 결국 SVB 인수를 추진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기업 매각이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을 경우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뿐 아니라 잘 알려진 유명 테크기업들의 경영에도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에 따르면 TV 스트리밍 업체 로쿠는 현금 보유액의 26%에 해당하는 4억8천700만달러가 SVB에 묶였고,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도 전체 현금과 증권 잔고의 5%인 30억달러가 SVB에 묶여 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