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대한 정부와 여론의 `이자 장사`, `돈 잔치` 비난이 커지는 가운데, 지난해 5대 은행 임직원에 지급된 성과급만 모두 1조3천억원이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명당 많게는 수억 원, 적게는 수천만 원에 이르는데, 결국 금융당당국이 이런 보수 산정에 합리적 근거가 있는지 들여다보기로 했다.
"민간기업의 임금 산정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어불성설", "지나친 관치 금융"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지만, 대통령까지 나서 "은행은 공공재"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 만큼 당분간 은행 등 금융기관에 대한 현 정부의 공익성, 사회적 책임 압박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14일 국회에서는 은행 임직원의 전체, 평균 성과급 규모가 잇따라 공개돼 `돈 잔치` 논란의 불씨를 이어갔다.
금융감독원이 정무위원회 황운하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5대 시중은행의 성과급은 모두 1조3천823억원으로 파악됐다. 2021년 성과급 총액(1조19억원)보다 약 35%나 늘었다.
개별은행 임원 1명의 평균 성과급을 따져보면, KB국민은행이 2억1천60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하나은행(1억6천300만원), 신한은행(1억7천200만원), 우리은행(1억400만원), NH농협은행(4천800만원) 순이었다.
직원 1명의 평균 성과급의 경우 NH농협은행(3천900만원)이 1위를 차지했다. 하나은행(1천300만원)·신한은행(1천300만원)·KB국민은행(1천100만원)·우리은행(1천만원)도 모두 1천만원을 넘었다.
NH농협은행은 이에 대해 "기본급을 제외한 정기 상여금 등이 포함된 수치"라며 "은행별 급여체계 차이에 따라 상여금이 많은 것으로 집계됐을 뿐, 총급여 수준은 다른 은행들보다 낮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이 양정숙 의원(무소속)에게 낸 자료에서는 2021년 5대 시중은행의 성과급이 1조709억원으로 집계됐다.
5대 시중은행의 성과급은 ▲ 2017년 1조78억원 ▲ 2018년 1조1천95억원 ▲ 2019년 1조755억원 ▲ 2020년 1조564억원 ▲ 2021년 1조709억원으로 5년간 줄곧 1조원을 넘어섰고, 2022년 성과급은 2021년 당시 최대 실적을 바탕으로 더 늘었다. 지난해 인터넷은행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토스뱅크도 전년보다 각 139%, 105%, 78% 많은 258억원, 138억원, 34억원을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성과급뿐 아니라 주요 은행들의 주주 배당도 계속 불어나는 추세다.
양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17개 은행의 배당(현금·주식배당) 합계는 7조2천412억원으로, 2020년(5조6천707억원)보다 28%나 많았다.
배당 규모는 ▲ 2017년 4조96억원 ▲ 2018년 5조4천848억원 ▲ 2019년 6조5천446억원 ▲ 2020년 5조6천707억원으로, 코로나19가 터진 2020년을 제외하면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양 의원은 "2021년에는 7조2천억원이 넘는 배당금을 60∼70%의 외국인을 포함한 주주들에게 나눠줬고, 최근 5년간(2017∼2021년) 현금지급기처럼 뿌린 배당금만 29조원에 육박한다"고 지적했다.
은행이 성과급과 배당을 지나치게 늘리는 데 대한 여론의 비난은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최근에는 정부가 공개 석상에서 끊임없이 직접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을 목적으로 실제 행동에 나섰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급증한 대출과 최근 기준금리 상승으로 손쉽게 돈을 벌면서, 늘어난 이익을 공익에 환원하기보다는 내부 임직원들의 상여금이나 퇴직금을 늘리고 주주 배당 확대에만 몰두하는데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내부 임원 회의에서 "고금리와 경기둔화 등으로 국민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권이 사상 최대 이자 이익을 바탕으로 거액의 성과급 등을 지급하면서도 국민과 함께 상생하는 노력은 부족하다는 비판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은행권의 (공익적 금융) 지원 내역을 면밀히 파악해 실효성 있는 지원이 이뤄지는지 점검해 적극적으로 감독하라"고 주문하며 "성과보수 체계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의 취지와 원칙에 부합하게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해 점검하겠다"고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앞서 13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은행은 공공재적 성격이 있다. 수익을 어려운 국민,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에게 이른바 상생 금융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향후 금융시장 불안정성에 대비해 충당금을 튼튼하게 쌓는 데에 쓰는 것이 적합하다"며 "은행의 `돈 잔치`로 국민들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금융위는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보수 체계 수술뿐 아니라 금융지주 회장들의 `셀프 연임` 시도 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금융그룹 지배구조 개선 작업도 본격적으로 시작될 분위기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금융발전심의회 전체 회의에서 "금융회사 내부통제 강화와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조속히 세부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다음 달 초 `기업지배구조 개선 태스크포스(TF)` 출범을 예고했다.
금리 상승과 함께 은행의 이자 이익이 크게 늘어난 만큼, 다양한 감면과 인하를 통해 취약계층의 이자 부담을 줄여주는 것은 공익적 측면뿐 아니라 은행의 건전성 관리 측면에서도 필요하다는 데는 은행들도 공감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권은 현재 다양한 취약계층 금융 지원책도 실제로 실행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지나치게 금리, 급여체계, 인사 등 금융의 모든 본질적 요소에 개입해 좌지우지하는 것은 시장 원리에 맞지 않고 효율성도 떨어진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지주와 은행은 공공재가 아니다. 주주가 있는 엄연한 민간기업일 뿐"이라며 "사기업으로서 적정한 급여로 인력 수급을 관리해야 하고 이익으로 충당금을 많이 쌓아 대출 위험 관리도 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도 "정부가 지나치게 예금·대출 금리 조정에 간섭하면, 예금 금리와 시장금리, 대출 금리가 자연스럽게 연동되는 금리 체계가 망가져 오히려 소비자들이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며 "더구나 사기업 은행에 공익 지출만 강조하는 것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최후의 완충장치로서 충격을 흡수해야 하는 은행의 체력을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