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음식과 기분이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뱃속에 있는 특정 장내 미생물이 머릿속 감정 상태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옥스퍼드대 공중보건 연구자인 나자프 아민 박사 등 연구팀이 네덜란드 국민의 국민건강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장내 미생물 16종이 우울증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네덜란드인들의 신체·정신 건강상태를 분석한 데이터 2개를 활용했다. 하나는 1천54명의 건강을 추적 분석하는 `로테르담 코호트 데이터`, 다른 하나는 비슷한 방식으로 1천539명을 분석한 `암스테르담 헬리우스` 데이터였다. 두 데이터 모두 참가자들이 대변 샘플을 제출하고, 자신의 우울증 관련 상태를 평가하는 식으로 수집됐다.
연구팀은 이런 데이터를 활용해 장내 미생물 구성과 우울증 평가점수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우울 증상이 있는 사람들에게서는 `에우박테리움 벤트리오슘` 균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파악됐다. 이 균은 과거 연구에서도 뇌 손상이나 비만과도 높은 연관성을 가진 것으로 지목된 바 있다. 뇌 손상·비만 모두 우울증과도 관련성이 높다.
연구팀은 또 우울증과 특정 장내 미생물의 `인과관계`도 파악하고자 했다. 다만 명백하게 인과관계를 입증할 기술이 없어, 우회적으로 통계를 활용했다고 한다. 이 분석에서는 `에게르텔라`라는 장내 미생물과 우울 증상 사이에 일부 인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우울증이 이 미생물의 개체 수를 늘리는지, 그 반대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연구의 주저자인 에라스무스 메디컬센터의 안드레 아위테를린던 박사는 "이 연구 결과는 `내가 먹는 음식이 내가 된다`는 말의 현실판 증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렇다면 우울감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할까. 이번 연구의 조사관들을 이끈 나자프 아민 옥스퍼드대 공중보건연구센터 박사는 "섬유질을 충분히 섭취하지 않으면 장내세균이 가장 중요한 대사물질 `부티르` 만들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간단히 말해 채소를 많이 먹으라는 의미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잭 길버트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샌디에이고) 교수는 이번 연구에 대해 "인과관계는 일방통행 관계가 아니다"며 "분명한 것은 우리가 우울할 때 장내 미생물이 종종 유익균을 잃어버린다는 점이다. 이런 미생물을 되찾을 수 있면 활기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에도 이른바 `장-뇌 축`(gut-brain axis) 관련 연구, 즉 위장계의 건강 상태가 뇌의 건강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밝힌 연구는 많았으나, 주로 동물 실험이 많았다. WP는 이번 연구가 인간의 데이터를 대규모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고 평가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