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53·포르투갈)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이 한 번 더 그라운드에서 태극 전사들을 지휘할 수 있을까.
한국은 12월 3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포르투갈을 상대로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을 치른다.
1무 1패로 조별리그 탈락의 위기에 빠진 벤투호가 극적으로 16강에 오르려면 포르투갈을 반드시 꺾은 뒤 같은 시간 열리는 가나-우루과이 경기 결과를 봐야 한다.
포르투갈과 비기거나 지면 곧바로 탈락이 확정된다.
`벼랑 끝 경기`에서 우리 대표팀은 벤투 감독이 벤치를 지키지 못하는 악재까지 이겨내야 한다.
벤투 감독은 28일 열린 가나와 2차전 경기가 끝난 뒤 주심에게 강하게 항의하다 레드카드를 받으면서 포르투갈전 벤치를 지키지 못하게 됐다.
한국이 16강 진출에 실패하면 최근 4년간 대표팀을 지휘해온 벤투 감독은 이번 대회가 끝난 뒤 재계약하지 않는 한 28일 가나전이 사실상 고별전이 된다.
벤투 감독은 레드카드로 인해 12월 3일 포르투갈전에는 관여할 방법이 없다.
2009년 국내 프로축구에서 신태용 감독 등이 무전기로 관중석에서 팀을 지휘한 사례도 있었지만 2010년 FIFA는 "징계 중인 코칭스태프는 무선 통신 시스템으로 경기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을 명확히 했다.
따라서 벤투 감독도 포르투갈과 3차전에 무전기나 휴대전화 등으로 지시를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영표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29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전술은 경기 전에 다 만들어지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며 "문자 메시지 등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기는 하지만 문자메시지까지 어떻게 막을 방법은 없다"고 예상했다.
벤투 감독이 마냥 손 놓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규정을 어기고 몰래 지시하다가 적발이라도 되면 더 큰 논란을 불러올 수도 있는 만큼 세르지우 코스타 수석코치에게 경기 운영을 일임할 가능성도 있다.
경기 전날 공식 기자회견에는 벤투 감독이 참석할 수 있지만 경기 당일 하프타임 라커룸 출입은 금지된다.
포르투갈 출신으로 포르투갈 축구를 가장 잘 아는 벤투 감독이 자리를 비우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손흥민(토트넘)도 가나와 경기를 마친 뒤 인터뷰에서 "(벤투 감독의 결장이) 팀으로서 좋은 상황은 아니다"라며 "감독님이 요구하는 것들을 더 잘 이행하기 위해 새겨들으려고 노력하고, 며칠 안 남은 기간에 준비를 더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표 부회장은 "어떤 경우에는 (감독이) 벤치에 없어도 승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우리 선수들이 감독이 벤치에 앉지 못하는 부담감을 충분히 이겨내면서 경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강인(마요르카)은 "당연히 저희에게 안 좋은 상황"이라면서도 "그래도 감독님이 어디 계시든, 함께 하시는 것을 선수들이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마지막 경기를 준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한국 축구 역사상 월드컵 본선 경기에 감독이 벤치를 비운 것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벨기에와 조별리그 3차전 이후 이번이 24년 만이다.
당시 차범근 감독이 네덜란드와 2차전 0-5 참패 이후 지휘봉을 내려놨고, 김평석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 3차전을 치렀다.
2패로 이미 탈락이 확정됐던 한국은 3차전에서 유상철의 동점 골, 이임생의 붕대 투혼 등을 앞세워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한국을 이겼어야 16강 진출을 바라볼 수 있었던 벨기에는 한국과 함께 탈락했다.
1998년 월드컵에는 감독이 대회 도중 팀을 떠난 것이 선수들의 투지를 자극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