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러 달러 강세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지난 3월 미국 중앙은행(Fed)의 첫 금리 인상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달러 강세가 2차 대전 이후 국제금융시장에서 빅뱅을 초래했던 상징선(pivot)을 순차적으로 넘어서고 있다.
첫째, Fed의 금리인상과 일본은행(BOJ)의 울트라 금융완화정책과 맞물려 엔화 가치가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지난 4월 엔·달러 환율이 125엔을 넘느냐를 놓고 “안 넘는다”는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와 “130엔까지 갈 것이다”라는 사카끼바라 에스게 전일본 재무관 간이 논쟁에서 태동됐던 ‘구로다 라인’과 ‘미스터 엔 라인’이 모두 무너졌다.
이달 들어서는 엔화가 추락하더라도 불가능할 것으로 봤던 ‘플라자 라인’마저 뚫렸다. 플라자 라인이란 2차 오일쇼크로 불거진 물가를 잡는 과정에서 심화됐던 미국의 쌍둥이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선진 5개국 간 맺었던 1985년 9월 플라자 합의 당시에 엔?달러 환율 수중인 142엔선을 말한다.
둘째, 유로화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심상치 않다. 1999년 ‘1달러=1유로’ ‘패러티 라인’에서 출발했던 유로화 가치는 2016년 6월 브렉스트 당시 한차례 붕괴될 위험에 몰린 적이 있지만 작년까지 유지됐다. 하지만 올해 들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피해가 집중되면서 지난 7월 패러티 라인이 힘없이 무너진 후 지금까지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그림 1> 美 달러 가치 동향 (자료: 한국은행)‘검은 수요일’ 30주년을 맞아 영국의 파운드화는 ‘소로스 라인’이 뚫렸다. 검은 수요일이란 1992년 9월 19일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가 파운드화를 투매해 영국을 유럽환율메커니즘(ERM)으로 탈퇴시킨 사건을 말한다. 앞으로 파운드화는 ‘1파운드=1달러’선마저 무너져 유로화와 같은 운명을 걸을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위안화 가치도 이른바 ‘포치 라인’이라 부르는 달러당 7.0위안이 무너졌다. 2012년 취임 이후 시진핑 국가주석이 위안화 국제화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포치 라인을 생명선처럼 여겨왔다. 위안화 가치가 이 라인 밑으로 절상되면 위안화 국제화 과제가 성공하는 것으로 평가됐기 때문이다.
포치 라인이 뚫림에 따라 다음달에 있을 공산당 대회에서 ‘시황제’ 반열에 오르려는 시진핑 주석의 야망에 금이 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분기 성장률이 0.4%로 추락한 것을 계기로 올해 목표치 5.5% 달성이 멀어지자 급부상하고 있는 중진국 함정 우려와 함께 양대 장애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넷째, Fed의 급격한 금리인상에 따라 1990년대 중반보다 더 심하게 대발산이 나타남에 따라 신흥국들이 부도 사태가 잇따르는 ‘디폴트 라인’을 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미국과 신흥국 금리 간 대발산이 나타남에 따라 1994년 중남미 외채위기, 1997년 아시아 통화위기,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움 사태가 잇달아 발생했다.
이미 스리랑카는 디폴트됐다. 파키스탄, 라오스, 방글라데시 등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 놓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1990년대와 달리 IMF도 자체적으로 채권발행을 검토할 만큼 재원이 녹록치 않다는 점이다.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위기판단지표로 보면 취약 신흥국 74개국 중 무려 58개국이 디폴트 당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다섯째, 원·달러 환율도 최후까지 버틸 것으로 여겨졌던 ‘캉드쉬 라인’이 무너졌다. 캉드쉬 라인이란 1997년 여름 휴가철 이후 외국인 자금이 갑작스럽게 이탈하는 ‘서든 스톱’이 발생하자 펀더멘털론으로 맞서다가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서자 손을 들어 외환위기를 초래했던 강경식 경제팀의 실수에서 비롯된 용어다.
가장 궁금한 것은 앞으로 원·달러 환율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많은 변수 가운데 Fed가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이후 중국이 미국 국채를 빠른 속도로 내다 팔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때 1조 3천억 달러가 넘던 미국 국채 보유분이 지난 8월 말에는 9천 500억 달러선까지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미국 국채 매각으로 미·중 간 마찰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대중국 견제는 ‘나바로 독트린(까마귀 대 까마귀)’에 따라 무역 분야에만 치중됐다. 하지만 조 바이든 정부는 ‘셀러번 독트린(독수리 대 까마귀)’에 따라 기득권 분야에서 확실하게 우위를 점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첨단기술 굴기 전략의 일환으로 반도체, 2차 전지 등 미래 국부를 좌우할 인프라 분야의 자급도를 끌어 올려왔다. 동시에 중국이 당면한 최대 현안인 ‘신용경색’을 겨냥하는 정책을 추진해 시진핑 주석의 시황제 등극에 최대적(敵)이 될 제3의 천안문 사태까지 우려될 정도로 성과를 거둬왔다.
중국이 유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미국 국채를 내다 파는 일이다. 중국의 국채매각으로 시장금리가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상 이상으로 올라가면 연방부채상한을 넘어선 국가채무와 위험수위에 도달한 가계부채를 안고 있는 바이든 정부의 정곡을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역(逆)트리핀 딜레마에 따른 미국 경제 부담도 만만치 않다. 가뜩이나 인플레를 잡기 위해 금리인상과 양적축소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국채매각으로 유동성이 더 줄어들면 달러 가치가 강세가 되기 때문이다. 역트리핀 딜레마에 따른 의도치 않은 강달러 부작용은 미국의 수출둔화와 빅테크 기업의 수익악화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Fed의 금리인상‘이라는 공통요인에다 무역적자 확대, 불법자금 해외유출, 연기금의 해외투자 등과 같은 우리 내부요인이 겹치면서 1380원선마저 넘어선 원·달러 환율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미·중 국채전쟁은 어떤 변수보다 원?달러 환율 움직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의 미국 국채매각은 원·달러 환율을 끌어올려 한국 경제를 겨냥하는 목적도 강하다는 점이다. 새 정부 들어 대미국 정책은 문재인 정부 시절의 ‘안미경중(安美經中)’에서 ‘안미경세(安美經世)’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시진핑 주석은 바이든 정부에 가장 적극적인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그림 2> 중국 경제성장률 추이 (자료: CEIC, 한국은행)중국의 미국 국채매각으로 원?달러 환율이 더 올라가면 우리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종전만 못하다. 우리 수출입 구조가 마샬-러너 조건, 즉 외화표시 수출수요의 가격탄력성과 자국통화표시 수입수요의 가격탄력성을 합한 것이 ‘1’을 넘지 않아 수출증대와 경기부양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 경제가 당면한 양대 아킬레스건을 건드릴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미국 국채매각으로 원·달러 환율이 올라가면 대규모 미국 진출계획을 발표한 한국 기업들의 환차손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부적으로는 수입물가를 끌어올려 이를 잡기 위한 추가 금리인상 과정에서 이자 부담 등으로 한국 국민들은 취약계층일수록 경제고통이 높아진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는 것을 우리 내부보다는 외부요인 탓으로 돌리는 정책당국의 자세는 지극히 위험하다. 외환위기 발생 가능성을 판단하는 각종 지표가 민간보다 국가와 연관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도 외환위기에 따른 낙인효과가 얼마나 큰가를 지난 25년 동안 뼈저리게 경험한 만큼 프로보노 퍼빌릭코 정신을 발휘해 국가에 적극 협조해 나가야 할 때다.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한국경제TV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