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금융 재벌이 서방의 제재를 회피하려고 자신이 공동 설립한 우크라이나 은행에 10억 달러(1조3천800억원)를 예치하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최대 은행인 `알파은행 우크라이나`의 감사위원장인 로만 시펙은 WSJ에 "지난 6월 미하일 프리드만이 은행에 개인 자산 10억 달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제안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금은 우크라이나 기반시설, 의료, 식품, 에너지와 관련된 사업에 사용될 수 있다"며 "알파은행 우크라이나는 전쟁이 끝나면 우크라이나 경제 재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련 시절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프리드만은 러시아 최대 민간은행인 알파은행의 공동 설립자다. 이 은행은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등지에서도 영업 활동을 해왔다.
프리드만은 수십 년간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으며 재산을 불렸으나,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사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영국 회사에 있던 프리드만의 자산은 동결됐고, 미국은 프리드만 개인에게 제재를 가하지는 않았으나 재무부가 알파은행과의 거래나 사업을 금지하는 강력한 처벌을 내렸다.
프리드만은 우크라이나에 이같은 제의를 한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들은 제재 대상이 된 러시아인 수십 명이 재정적 부담에서 벗어나고자 프리드만과 유사한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고 WSJ에 전했다.
미국의 한 당국자도 "프리드만의 이같은 제안은 서방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업가, 은행, 기업이 은밀히 서방과 접촉하려는 사례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프리드만의 제안은 서방의 도움을 얻어야 하고 우크라이나도 호의적이지 않아 성사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프리드만은 자신의 계좌에 접근해 돈을 보내려면 유럽연합(EU)의 특별한 허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알파은행이나 제재 대상 기업에 있는 자금을 옮기려면 미국 재무부의 승인도 필요하다.
마리아나 베줄라 우크라이나 의회 안보국방위원회 부의장은 WSJ에 "우리는 러시아와 어떤 거래도 할 수 없다"며 "우크라이나는 군사 정보를 제공하는 러시아인과만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관계자도 "제재 완화를 겨냥한 제안은 전쟁이 종료된 뒤에야 생각할 수 있다"며 "제재 목표는 부유한 러시아인으로부터 돈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 엘리트들에게 전쟁을 중단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