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두산그룹의 지주회사죠. ㈜두산의 지분 매각 소식이 시장에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하필 매각 대상 회사가 새 정부의 친원전 정책을 타고 급부상한 두산에너빌리티이기 때문인데요.
이상한 건 매물 출회가 예정된 두산에너빌리티 뿐 아니라 지분을 팔아 수천억원 현금을 확보한 ㈜두산 주가도 떨어졌다는 겁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취재기자와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산업부 방서후 기자 나와 있습니다.
방 기자, 일단 최근 일어난 ㈜두산의 지분 매각 이슈뷰터 정리해주시죠.
<기자>
지난 달 31일이었죠. ㈜두산이 자회사 두산에너빌리티의 지분 4.47%(2,854만주)를 매각했다고 공시했습니다.
처분 단가는 주당 2만50원으로 공시 전날(30일) 종가보다 7.6% 할인됐다고는 하지만 지난 한달 간 흘러나온 원전 관련 호재와 그로 인해 오른 주가를 감안하면 지분 가치가 꽤나 뛴 상태에서 팔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매각 후 ㈜두산의 두산에너빌리티 지분은 30.5%로 낮아지는데요. 지주사는 행위제한 요건에 따라 자회사의 지분 30% 이상을 보유해야 하는 만큼 규제를 준수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지분만 남기고 팔 수 있는 두산에너빌리티 지분 전체를 팔아치운 겁니다.
㈜두산은 자회사인 두산프라퍼티와 두산큐벡스 지분도 팔았습니다.
두산프라퍼티는 두산 계열사의 부동산을 관리하는 비주거용 건물 임대업 기업이고, 두산큐벡스는 계열사 내 급여, 총무, 구매 등 사무 지원과 건물, 시설 등을 관리하는 기업입니다. 이번 매각으로 ㈜두산은 약 7,200억원 가량의 현금을 손에 쥔 셈입니다.
<앵커>
블록딜 대상이 된 두산에너빌리티는 시장에 매물이 대거 풀리니까 주가가 약세를 보였던 건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두산에너빌리티 뿐 아니라 계열사 지분도 팔아서 막대한 현금을 챙긴 ㈜두산 주가는 왜 힘을 못 쓰는 건가요?
<기자>
통상 지주회사에게 자산 매각은 주가 상승 요인입니다.
㈜두산 역시 지분을 판 만큼 차입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주당 순자산가치(NAV) 증대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당장 두산에너빌리티 하나만 놓고 봐도 무려 37%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단순히 말하면 지금보다 주가가 40%는 더 오를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산프라퍼티와 두산큐벡스 지분 매각으로 확보한 1,500억원까지 감안하면 ㈜두산의 주가 상승 여지는 더욱 커집니다.
그런데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하죠.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먼저 두산프라퍼티와 두산큐벡스 지분은 원래 팔았어야 할 지분이고, 사간 주체도 다른 외부 투자자가 아닌 두산에너빌리티입니다.
공정거래법상 지주사와 자회사는 국내 계열사 주식을 동시에 보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두산이 지난해 7월 지주회사로 전환됨에 따라 ㈜두산이나 두산에너빌리티 둘 중 한 곳은 계열사 주식을 처분해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현금이 생겼다기보다는 옮겨온 셈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이유가 결정적인데요. ㈜두산이 두산에너빌리티 블록딜 배경을 차입금 상환과 재무구조 개선이라고 밝히면서 회사 금전 상황에 의구심을 품게 만든 겁니다.
두산프라퍼티와 두산큐벡스 지분 매각이 지배구조 안정에 방점을 뒀다면 두산에너빌리티는 그야말로 현금을 대거 확보하기 위해 팔았다는 건데, 왜 하필 그 수단이 두산에너빌리티냐는 거죠.
<앵커>
사실 파는 입장에서 그래도 값을 비싸게 받으면 좋잖아요.
어차피 재무구조를 개선하려면 돈도 많이 들겠고, 마침 새 정부의 친원전 정책도 나왔겠다 지분이 팔릴 만한 회사를 선택한 거 아닌가요?
<기자>
바꿔 생각하면 그런 알짜 회사 지분을 팔 만큼 회사가 어렵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두산에너빌리티라는 회사는 두산그룹에겐 아픈 손가락입니다.
두산그룹이 처음 유동성 위기를 맞게 된 원인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지켜낸 회사가 바로 두산에너빌리티거든요.
그러니까 두산에너빌리티가 두산중공업이던 시절,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자회사 두산건설에 대한 자금지원 부담으로 재무구조가 악화된 상황에서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자금난에 빠졌고, 이것이 두산그룹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채권단이 긴급 자금을 지원하는 대신 두산그룹에게서 재무구조 개선 등을 골자로 한 자구계획안을 받아낸 건데요.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두산그룹이 매각한 자산만 3조원이 넘습니다. 이 안에는 두산인프라코어(8,500억원)와 두산솔루스(6,986억원) 등 현금 창출력이 높은 핵심 계열사가 포함됐고요.
두산중공업, 즉 지금의 두산에너빌리티 하나 지키자고 허리띠를 졸라매다 못해 허리가 끊어졌는데, 이제 와서 그 두산에너빌리티 지분을, 그것도 지주사 요건을 지킬 만큼만 남기고 모두 팔아버린다니 ㈜두산이 힘들어도 보통 힘든 게 아니구나, 이런 불확실성이 투자 심리를 크게 위축시켰다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앵커>
㈜두산이 정말로 그렇게 어려운 상황인가요?
<기자>
최악의 상황은 아니지만 지표 상으로는 나빠진 것은 사실입니다.
회사의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 중에 유동비율이라는 게 있습니다.
유동자산을 유동부채로 나눈 건데 이 지표가 100% 미만이면 유동성이 부족하다고 하고요.
이 말은 곧 1년 내로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이 같은 기간 갚아야 하는 부채보다 적다는 뜻입니다.
㈜두산의 유동비율은 올해 2분기 기준 76.7%입니다. 100%에는 당연히 못 미치고 회사가 채권단 관리에 들어가기 직전인 2019년 말(68.2%)보다 조금 높은 수준입니다.
지난해까지 20%대였던 차입금 의존도 역시 올해 33.1%로 뛰었습니다. 통상 차입금 의존도는 30% 이하일 때 안전하다고 평가됩니다.
분명 자구 노력을 하면서 재무 상황이 개선돼 왔지만 그간 단행한 구조조정 노력이 무색할 만큼 또 다시 악화된 것입니다.
<앵커>
㈜두산이 채권단 관리를 벗어난 시기가 올해 1분기잖아요. 졸업한 지 반 년밖에 안 됐는데, 갑자기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기자>
㈜두산은 자산을 팔아 확보한 유동성으로 빚을 갚기보다는 M&A와 계열사 지원 등에 썼습니다.
아무래도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여러 자체 사업이 사라졌기 때문에 신성장 동력을 찾을 필요가 있었겠죠.
그래서 국내 반도체 테스트 1위 업체 테스나를 인수해 두산테스나를 출범시킨 겁니다.
하지만 현금 흐름을 창출하던 다양한 사업부를 정리하고 계열사 배당 수익도 10% 수준으로 줄어든 상황에서 4,600억원 규모의 지분 인수를 추진한 건 조금 무리한 행보였다는 지적이 나오고요.
심지어 인수 대금 중 절반은 현금을 투입하고 절반은 또 금융권에서 빌렸습니다.
이렇게 곳간은 비어가는데, 금리까지 오르면서 상환 부담이 커졌습니다.
현재 ㈜두산의 회사채 신용등급이 BBB인데요. BBB급 회사채 발행 금리는 최근 6% 안팎으로, 코로나19 이전인 4%대보다 높아졌습니다.
금융시장 불안이 지속된다면 차입금 만기 연장으로는 대응하기 어렵고, 자칫 또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애지중지하던 두산에너빌리티를 눈물을 머금고 팔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앵커>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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