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도 마무리됐다. 올해 하반기 이후 글로벌 증시의 최대변수는 미국 중앙은행(Fed)가 출구전략의 마지막 카드로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양적긴축(Quantative Tightening)’이다. 지난 5월 Fed 회의에서 확정된 로드맵을 보면 6월부터 475달러로 출발했던 QT가 9월부터는 950억 달러로 배로 늘려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Fed의 보유자산은 4조 달러에서 9조 달러로 급증했다. Fed가 보유자산을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가져간다면 5조 달러를 줄여야 한다. 유동성 환수 효과가 기준금리 인상보다 2배 이상 많은 점을 감안해 월가에서는 ‘앞으로 5조 달러 QT 재앙이 자산시장에 어떤 충격을 줄지 최대 관심사다.
하지만 지난 6월 QT를 추진한 이후 지금까지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에 미친 영향을 보면 2017년 이후 실시됐던 때와 다른 일곱 가지 뚜렷한 움직임(대부분 악재)이 나타나고 있어 Fed가 과연 로드맵대로 QT를 추진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벌써부터 Fed의 급진적인 QT 추진에 반대하는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림 1> 최근 국제금융시장 동향 (자료 : 블룸버그, 한국은행)
첫째, 급격한 QT는 기준금리 인상과 달리 시장금리를 반드시 끌어 올린다는 점이다. 2004년, 2015년 이후처럼 기준금리 인상에도 시장금리가 떨어지는 ‘그린스펀 수수께끼’ 현상이 발생했다. 하지만 QT를 추진하면 시장에 채권공급이 늘어나 채권가격은 떨어지고 역관계에 있는 시장금리는 올라간다.
둘째, 세계 총부채가 위험수위를 넘은 상황에서 시장금리가 올라가면 마이클 루이스가 경고했던 ‘빚의 복수’가 시작된다. QT 추진으로 시장금리가 올라가면 빚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각국 중앙은행이 초저금리와 양적완화로 빚의 무서움을 모르게 하는 ‘부채경감 환상’에 빠지게 해 위기 극복을 모색하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역풍이다.
셋째, QT 추진으로 유동성이 줄어들면 거품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자산시장에도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 사태 이후처럼 초금융완화 정책으로 모든 자산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미국 중앙은행(Fed) 회의에서 테이퍼링이 처음 논의된 이후 채권, 코인, 주식에 낀 거품이 순차적으로 꺼지고 있는 가운데 집값마저 흔들리고 있다.
넷째, QT 추진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에 미칠 충격이다. 2년 전부터 미국 경제는 회복세를 보여 왔지만 ‘부(富)의 효과’가 지탱하고 있어 지속 가능성을 의심받아 왔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 등은 QT 추진으로 부의 효과가 사라지면 미국 경제는 ‘구조적인 장기 침체론’에 빠질 위험이 높다고 주장해 왔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다섯째, Fed에 이어 다른 중앙은행도 출구전략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 사태 이후 자국의 금융시장과 경기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통화정책의 동조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Fed의 QT 추진에 맞춰 테이퍼링을 마무리한 유럽중앙은행(ECB)도 7월부터 기준금리를 올려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여섯째, 포트폴리오 지위상 우리가 속한 신흥국은 ‘긴축 발작’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 사태 이후 신흥국에 유입된 자금은 금라차와 환차익을 겨냥한 캐리 트레이드 성격이 짙다. Fed를 필두로 다른 선진국 중앙은행이 순차적으로 QT를 추진하면 ‘유입(포지티브 캐리 트레이드)’보다 ‘유출(네거티브 캐리 트레이드)’ 여건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일곱째, 선진국의 자산 거품 붕괴과정에서 발생한 마진 콜에 응하기 위해 디레버리지와 겹칠 경우 신흥국에 미칠 충격은 증폭된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 때도 미국에서 이탈한 자금이 한국 증시에 유입되면 주가가 크게 오를 것이라는 낙관론을 토대로 주식 매입을 권유했던 것이 투자자에게 커다란 손실(다우 45% 하락, 코스피 65% 폭락)을 가져다줬다.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정상화시켜 자산 거품 제거와 물가 안정, 그리고 지속적인 성장기반 확보 등과 같은 정책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다. 특히 QT가 추진될 때 경기 차원에서 중앙은행과 중앙은행 총재의 역할이 제한된다. 최근 들어 중국의 리커창 총리와 미국의 재닛 옐런 장관에 힘이 부쩍 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의 리커창 총리는 현재 중국 경제가 우한 사태보다 더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최고통수권자 이외의 현직 각료가 경제가 어렵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일부에서는 리커창 세력이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시진핑 대체론’마저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지난 6월에 열렸던 선진 7개국(G7) 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장기화된다면’이라는 조건을 달긴 했지만 미국 경제가 스테그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기를 낙관하고 있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는 다른 시각이다.
올가을 대형 이벤트를 앞두고 있는 양대 최고통수권자 입장에서 스테그플레이션 조짐을 풀지 못한다면 자신들의 앞날에 커다란 난관에 부딪칠 수 있다. 소득이 떨어지고 물가가 올라가 경제고통지수(misery index, MI=실입률+소비자물가상승률)가 높아지면 국민 지지도가 더 추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른 국가의 최고통수권자들도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정책대응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3년 만에 오프라인 행사로 치러진 올해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 참석한 제이슨 퍼먼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인플레이션율 1%포인트를 잡기 위해서는 실업률이 6%포인트가 높아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희생률(sacrifice ratio)을 제시했다. 한번 높아진 물가는 잡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엄청난 기회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의미다.
결국 금리를 통한 총수요 관리대책으로는 각국 최고통수권자의 현안을 풀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1980년대 초에 스테그플레이션 국면을 풀었던 공급중시 경제학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공급중시 경제학의 효과를 살펴보면 감세 등으로 총공급 곡선이 우축(AS1→AS2)으로 이동하면 성장률이 높아지고 물가는 떨어지게 된다.
<그림 2> 공급중시 경제학의 효과(자료: 한국경제신문)
최근에 나타나는 스테그플레이션이 무서운 것은 태생적 한계인 정책대응이 더 어렵다는 점이다. 1980년대 초에 나타났던 스테그플레이션은 2차 오일쇼크 후유증이란 ‘단일 단선형 성격’인 데 반해 이번에는 지정학적 위험, 디스토피아, 이상 기후, 공급망 훼손, 출구전략, 경제봉쇄조치 등과 같은 ‘다중 공선형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각국의 대응이 달라지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대처 방향이 금리인상 등과 같은 총수요 관리대책에서 총공급 중시대책으로 우선순위가 바뀌고 있는 점이다. 총공급 대책도 1980년 초의 주수단이었던 감세뿐만 아니라 규제 완화, 노사 화합, 생산성 증대, 인프라 확충, 공급망 확보 등 가용 가능한 모든 수단이 동원되고 있다.
증시 입장에서는 ’성장률 수준‘보다는 ’경기 저점‘이 언제 형성되느냐가 더 중요하다. 중국과 미국이 총공급 중시대책을 추진할 경우 올해 2분기가 저점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마코프 스위치 국면전환 모델인 추정해 보더라도 2분기가 저점으로 나온다. 추락만 하던 세계 주가가 하반기에는 반등하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고개를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은행의 입장이다. 그 어느 국가보다 대외환경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 경제가 스테그플레이션이 닥칠 확률이 낮다고 보고 있다. 새 정부의 복합위기, 경제 태풍이 몰아칠 것이라는 시각과는 사뭇 다르다. 그 근거도 성장률이 낮을 데로 낮아진 잠재수준을 밑돌 가능성이 적은 점을 둘고 있어 취약하다.
현재 한은의 입장대로 실물경기 부담 없어 물가를 잡는 데 우선순위를 두더라도 실업률이 높아지면 노조가 강한 우리 경제여건 상 ‘희생률’이 높아질 수 있다. 물가를 잡기 위한 금리인상에 따른 부담도 MZ 세대와 소상공인 등과 같은 취약계층이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스테그플레이션이 닥칠 확률이 낮다는 한은의 인식부터 개선돼야 한다.
<그림 3> 한국 기준금리 변경 추이(주 : ( )안은 기준금리 변경일자/자료 : 한국은행, 통화신용정책보고서, 2022년 6월)
한상춘 한국경제TV 해설위원·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