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해 대러 경제 제재를 추진해온 유럽이 전례없는 `물가대란`으로 오히려 역풍을 맞고 있다.
31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5월 소비자 물가는 작년 같은 달보다 8.1%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997년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이래 최고치다. 유로존의 물가상승률은 작년 11월 이후로 매월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처럼 인플레이션이 갈수록 가팔라지는 것은 지난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해 유럽 국가들이 부과해온 경제 제재의 영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개전 후 EU는 러시아산 석탄 수입 금지와 러시아 주요 은행과의 거래 중단 등을 포함한 5차례의 경제제재 패키지를 이미 단행했고, 해상으로 들여오는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는 6번째 제재 패키지까지 시행하기로 했다.
이런 제재 흐름은 유로존 내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다. 유로존의 5월 에너지 가격은 작년과 비교해 39.2%나 급등했다.
EU 국가들은 러시아의 돈줄을 죄기 위해 원유와 천연가스 등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크게 줄이려다 보니 가계 경제에서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됐다.
유럽 주요국들에서 현재 고물가는 수십 년간 전례를 찾기 힘든 대란 수준이다.
독일 통계청은 오일쇼크 시점이던 1973년 말부터 1974년 초 이후로 최악의 에너지난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 역시 5월 에너지 가격이 전년 대비 무려 28%나 뛰었다.
에너지뿐 아니라 식료품, 공산품, 서비스 가격도 오르고 있다.
물가급등 때문에 가계는 실질적인 월수입이 깎이는 고통에 직면했다.
유로존 내 근로자들의 임금 상승률은 물가 상승률에 훨씬 뒤처지면서 결과적으로 가계의 지출 여력이 줄어드는 것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올해 유로존의 실질 임금이 평균 2.2%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같은 부작용은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서 더 두드러질 것으로 관측된다.
원자력 발전 비율이 높아 에너지 비용 상승의 타격이 상대적으로 적은 프랑스는 실질 임금이 0.2% 떨어지겠지만,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았던 독일은 실질 임금 하락률이 2.7%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