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국제유가가 1주일만에 100달러를 재돌파한 가운데, 1970년대와 같은 오일쇼크가 재발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세계적인 에너지 전문가인 대니얼 예긴 S&P글로벌 부회장은 14일 한국경제TV와의 인터뷰에서 "의도적이든 우발적이든 러시아가 촉발한 전쟁이 심화할 위험이 있다"며 "1970년대와 같은 오일쇼크, 또는 그 이상의 혼란에 대한 위험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번 에너지 위기는 석유 뿐만 아니라 천연가스, LNG, 석탄에도 해당되며, 세계의 두 핵 강대국이 문제를 푸어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주목했다.
예긴 부회장은 또 "이번 사태로 에너지 초강대국이었던 러시아가 유럽에 미쳤던 영향력을 잃고 말았다"며, "푸틴이 2차 세계대전의 러시아 승전일인 5월 9일 이전까지 일종의 선언을 보여주려고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 전망했다.
또 미국의 경우 "에너지 자립을 이룬 후 에너지 안보에 대해 잊고 지냈는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바이든 정부가 녹색 에너지 만큼이나 전통 에너지 기업과의 긴밀한 대화에 나설 필요성이 강조됐다"고 봤습니다.
한편, 신재생에너지 패권 시대에서는 많은 광물과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이 매우 강력한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예긴 부회장은 또 한국에게 "수소에너지 분야에 확고한 입지를 다지는 것이 중요하고, 배터리 기술의 선두주자로서 역량을 확고히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 조언했다.
대니얼 예긴 S&P글로벌(전 IHS마킷) 부회장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에너지-국제 관계 전문가로, 클린턴부터 트럼프까지 미 4개 행정부 에너지 자문위원회에 몸 담은 권위자로 꼽힌다.
20세기 석유를 둘러싼 국제정치사를 담은 저서 `황금의 샘(The Prize)`으로 퓰리처상을 받았고, 최근 저서 `뉴맵(The New Map)`은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미리 앞서 예견해 다시금 시장의 이목을 끌고 있다.
해당 인터뷰 영상은 한국경제TV 채널과 유튜브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다음은 예긴 부회장과 나눈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기자> 바이든 대통령이 대규모 비축유 방출을 발표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단기적 시장 균형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대니얼 예긴 S&P글로벌 부회장>
러시아는 매일 400만 배럴의 석유를 유럽에 공급해왔으니 이번 방출로 러시아 공급량의 4분의 1을 대체할 수 있게 됐죠.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석유 공급난이 얼마나 계속될지에 따라 다를텐데, 다만 유럽이 러시아 석유 가스의 수입을 중단하기로 결정 내렸기 때문에 앞으로 유가 향방은 지켜봐야 할 겁니다. 시장에는 다양한 위험이 존재하고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러시아가 전쟁을 멈추지 않는다면 말이죠. 의도적이든 우발적이든 전쟁이 심화할 위험도 있습니다. 가격 상승의 위험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상황은 1970년대보다 더 심각해질 수도 있습니다. 현 에너지 위기는 석유뿐만 아니라 천연가스, LNG, 석탄에도 해당하며 세계의 두 핵 강대국이문제를 풀어가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기자> 그렇다면 주식 시장과 투자자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또한 작년과 올해 초 S&P500 중 에너지주가 가장 뛰어난 수익률을 보이지 않았습니까?
<대니얼 예긴 S&P글로벌 부회장>
일반적으로 특정 주식에 관한 언급은 하지 않습니다만 확실히 석유는 유행이 지난 분야였으며 주식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었습니다. 두 번의 가격 폭락이 있었고 실적도 하락했었죠. 하지만 최근 투자자들은 석유와 가스뿐만 아니라 다른 원자재에도 다시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원자재 가격 상승의 시대가 오리라는 생각 때문이죠.
<기자>
`뉴맵` 저서를 통해 러시아가 에너지 초강대국 입지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설명하셨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이어질수록 그 위상을 잃어가는 듯 한데요.
<대니얼 예긴 S&P글로벌 부회장>
러시아는 앞으로도 석유 가스의 주요 공급국이 되겠지만 가장 중요한 구매자였던 유럽 국가들을 잃었습니다. 러시아는 공급자로서의 신뢰를 잃게 됐죠. 러시아의 영향은 여전히 크지만 예전과는 달라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인도, 중국과 같은 국가들은 계속 러시아 에너지를 수입하겠지만 유럽은 러시아 석유 가스를 수입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습 니다. 따라서 에너지 초강대국이었던 러시아의 입지에도 타격이 생겼습니다. 과거 유럽 대륙에 미쳤던 영향력을 잃고 말았죠.
푸틴은 몇 가지 중대한 오판을 했습니다. 러시아 군대가 훨씬 나은 성과를 내리라 생각했고 우크라이나인들도 저항 대신 환영할 것으로 기대했죠. 러시아 에너지에 의존 중이었던 유럽은 옆으로 물러나 수수방관하리라 생각했고 미국도 분열된 상황으로 개입 의지가 없으리라 예상했죠. 유가 상승의 가능성은 지금도 존재하지만, 이로 인해 단결력이 약화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을 봤을 때 푸틴은 상당히 고립돼 있으며 그와 대화할 수 있는 사람도 소수인 듯합니다. 그가 틀렸다고 지적하려는 사람도 없고요.
이제 중요한 것은 푸틴이 태세를 완화하고 우크라이나 동부에 집중할 것인지 여부입니다. 그 일대를 점령해 러시아의 영토로 삼는 거죠. 노보로시야, 즉 새로운 러시아를 세우기 위해서요. 반대로 전쟁을 심화시켜 전략적 핵무기를 사용할지 모른다는 일각의 우려도 있습니다. 매주 상황이 달라지고 있으며 2차 세계대전의 러시아 승전일인 5월 9일 이전까지 일종의 승리를 선언하려고 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이 시기에 맞춰 뭔가를 보여주려고 할 것입니다. 푸틴은 러시아군이 이렇게까지 고전할 줄은 예상 못 했던 것 같습니다.
<기자> 부회장님께서는 이번 사태를 미국에게는 `거대한 전환`이라고 말씀하셨죠. 녹색 정책을 강조해왔던 바이든 정부가 LNG 최대 수출국이 되면 입장이 달라졌습니다.
<대니얼 예긴 S&P글로벌 부회장>
3월 초 휴스턴에서 열린 CERA 컨퍼런스에 에너지부 장관도 참석했는데, 이 자리에서 에너지 업계에 생산량을 늘릴 것을 촉구했죠. 5개월 전만 해도 상황은 크게 달랐습니다. 녹색 에너지 전환에 대한 야망은 여전하지만 동시에 에너지 공급의 현실을 깨달은 듯합니다. 전 세계와 미국의 에너지 80%는 탄화수소에서 생산되기 때문이죠.
미국은 에너지 자립을 이뤘기 때문에 사실 에너지 안보에 대해 잊고 지냈거든요. 이번 사태를 통해 세계가 잊고 지냈던 에너지 안보가 다시금 강조되리라 생각합니다.
<기자> 이번 사태가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앞당길까요? 아니면 늦추게 될까요?
<대니얼 예긴 S&P글로벌 부회장>
에너지 전환은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이를 위한 기술도 부족하고요. 질문에 답변하자면 `둘다`인데요. 전환 속도는 빨라질 수도 있고 느려질 수도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전환을 빠르게 이루기 위해 더 큰 노력을 쏟는 동시에 에너지 공급에 대해 걱정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인식도 높아진 것이죠. 독일 역시 풍력 발전량을 늘리는 동시에 3개의 LNG 터미널을 건설할 것이라 발표했고, 미국에서도 이 같은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저비용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재료와 광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원에 있어 중국은 매우 강력한 위치를 점하고 있죠. 따라서 재생에너지를 둘러싼 새로운 지정학 관계가 생겨날 수 있습니다. 풍력 터빈이나 전기차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채굴량과 가공 과정을 고려했을 때 말이죠. 결국 에너지의 정치는 끊임없이 계속되리라 봅니다.
<기자> 한국에게는 의미하는 바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대니얼 예긴 S&P글로벌 부회장>
한국은 자체 자원이 거의 없으므로 세계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습니다. 그렇기에 에너지 패권 변화에 다른 국가들보다 큰 관심을 가져왔을 겁니다.
먼저, 원자력을 멀리하려던 유럽 국가들이 원자력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프랑스는 6개의 원자력 발전소를 지을 예정이며 8개를 더 추가할지도 모릅니다. 한국의 새 대통령 역시 원자력과 관련해 어떤 정책을 펼칠지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에너지 독립을 이룩할 방법의 하나니까요.
그리고 풍력, 태양광 에너지 모두 증가하겠지만 현재는 수소에너지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수소 경제를 이끌어가기 위해 기업들이 협력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은 주요 산업 강국이므로 엔지니어링 능력에 그 기반을 두고 무엇보다도 수소에너지 분야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것이 미래를 위해 집중할 만한 핵심 사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한 한국은 배터리 기술의 선두주자로서 중국 배터리 의존도를 낮추려는 수요가 있으므로 한국의 배터리 역량 역시 매우 중요해질 것입니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합작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는 중이고요. 한국에는 석유와 가스가 없는 대신 재능과 엔지니어링 능력이 있습니다. 한국을 오늘날의 위치에 있게 만든 동력이며 미래에도 계속 나아갈 수 있게 만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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