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하는 건 투자죠. 도박은 전혀 아니고요. 그렇게 나쁜 거면 나라에서 주식하는 사람 다 잡아가야죠."(주식투자로 1억원을 잃은 30대 A씨)
"난 투자하는 건데 이게 왜 요행이죠? 그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는 모르지만 저는 도박하고 있다는 생각은 없어요. 술, 담배, 도박 다 나쁘다고 하지만 주식은 안 그렇잖아요."(주식투자로 12억원을 잃은 50대 B씨)
코로나19에 따른 초저금리 환경과 `동학개미`, `영끌` 등 영향으로 주식투자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주식중독 등 부작용도 확산해 대책이 필요하다는 학계 지적이 나왔다.
안영규 신경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최근 한국중독범죄학회보 실린 `주식중독의 원인 및 대응방안` 논문에서 수억원을 잃고 수년간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고 있음에도 정상 생활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는 4명의 주식중독자를 심층 인터뷰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 대상자들은 주식투자로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버는 경험을 거치면서 노동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드러냈다.
주식으로 2억원을 잃은 C(45)씨는 "애들 학원비 번다고 아르바이트도 했었는데 주식으로 돈 벌던 것이 생각나서 이제 다른 일은 못 한다"며 "식당에서 일당 10만원, 이까짓 것 클릭 한 번으로 버는데 땀 흘려 일할 생각이 들겠나. 노동 의욕은 완전 상실이다"라고 털어놨다.
이들은 물질적 풍요를 최우선 가치로 보면서도 투자에 실패한 자신의 처지에 괴리감을 느끼거나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A씨는 "요즈음은 돈이 인격 아닌가"라며 "직장 다녀서 집 살 수가 있나. 어차피 우리 같은 사람한테는 주식밖에 없다"고 말했다.
B씨는 "전에 증권회사 직원이었는데 공금 7억원에 손댔다가 형사처벌 받은 전력이 있다"며 "큰돈을 걸지 않으면 주식하는 것 같지도 않고, 남의 돈 만지면 또 그것으로 주식할 것 같아서 걱정이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들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주식에 중독됐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주식투자로 5억원을 잃은 전문직 종사자 D(49)씨는 "지인들은 어제도 3천을 벌었네, 5천을 벌었네 하니까 밤에 잠이 안 온다"며 "주식 그만하라고 상담받을 때마다 얘기를 듣지만 내가 종목을 잘못 고른 거로 생각하지, 중독치료 대상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C씨는 "이 문제(주식)로 남편과 수도 없이 싸웠다. 지금은 이혼했지만, 남편 없이는 살아도 주식 못하면 눈앞에 어른거려서 살 수가 없다"면서 "그냥 착실하게 모았으면 2억원은 통장에 있었을 텐데, 그래도 투자하다가 날린 거고 나는 중독자는 아니다. 알코올중독이나 이런 것하고는 다르다"고 단언했다.
실제 일선 상담센터에서도 주식중독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의뢰인이 늘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 따르면 주식 문제로 센터를 찾는 의뢰인은 매년 100여명 대에서 완만한 상승세를 보였으나, 2019년 219명에서 2020년 402명으로 두 배 가까이 폭증했다.
박진희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상담사는 "내담자들 상당수는 주식은 불법이 아니고, 본인은 어느 정도 정보를 분석해서 투자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며 "단순 투자라고 생각해 치료 시기가 늦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도박이나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대상자는 중독의 의미를 비교적 잘 알고 있지만, 주식에서는 중독에 대한 이해가 매우 낮다"며 "상담자나 의료진이 주식 교육을 받고 주식중독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면 심리적 공감대를 형성해 치료 효과도 높아질 것"이라고 제안했다.
아울러 "주식이 `국가가 인정한 도박`인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며 "유독 주식의 사행성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고 국가 또한 이에 대한 경고를 게을리한다. 사회적 논의를 거쳐 일정 수준 이상의 중독성 투자를 사행행위에 포함하는 것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