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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프라방 가는 길 - 해발 1,800미터 고지를 넘어서 [K-VINA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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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프라방 가는 길 - 해발 1,800미터 고지를 넘어서 [K-VINA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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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 20도, 이 좋은 정월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이 좋은 계절에
    가만히 있자니 몸이 근질근질하다
    코로나로 꼼짝 못하는 세월이 되었지만
    걷기에 참 좋은 날씨인데
    이 기회를 놓치면 정말 후회가 될 것 같아
    혼자서라도 오랜만에 길을 떠나기로 했다
    어디로 갈까 궁리하다가 루앙프라방이 번뜩
    도시전체가 아담하니 고전적이며
    유네스코가 지정(1995년)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옛 왕궁과 사원 등 볼거리가 넘쳐나고
    메콩강과 칸강이 아우르고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14세기 옛 라오스 란상 왕국의 중심지
    무엇보다도 해발 700미터 위에 걷는
    고도의 서늘함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지난해(2021년) 12월부터 운행을 시작한
    고속열차(라오차이나 기차)를 타면 쉽게 갈 수 있다
    2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속도와
    라오스 첫 열차여행이라는 생소함에 고민이 되었다
    또한 비행기를 이용하는 경우 40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빠름 대신 낯선 느림을 선택했다
    비엔티안에서 방비엥까지는 고속도로(1시간 30분)
    방비엥부터 루앙프라방까지 4시간의 산악길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모두들 위험하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그러나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길
    그리고 오늘 누군가는 넘어가고 있을 길
    그래서 이 길을 가기로 했다




    가끔 오지체험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바퀴가 빠지고 허기에 지친
    두려움에 덜덜 떠는 어둠의 오한
    이런 장면의 주인공이 될 줄을 몰랐다
    방비엥부터 바위산들이 실록처럼 들어섰다
    기암괴석의 아름다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북쪽으로 갈수록 점점 높아지는 산하
    산이 높아질수록 더 낮아지는 구름
    카이(Kai)시를 지나자 바람결이 거칠어졌다
    나뭇가지도 바싹 마른 1월 건기에....
    갑자기 빗방울이 후두둑 후두둑
    사방이 캄캄해졌다
    검은 구름이 백미러를 확 핥고 지나간다
    오르고 올라도 또 올라야하고
    돌고 돌아도 또 돌아야하는 길
    움푹 큰 웅덩이가 나타나 급정지를 하고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리자
    산덩이만한 돌덩이가 앞을 가로막고 있다
    정신없이 한참을 오름길을 타다보니
    앞이 텅 빈 듯 환해졌다
    구름을 뚫고 까오락 산 정상에 올라선 것이다
    해발 1800미터 구름 위를 뚫고서




    그래 어쩌면 우리네 삶도 이런 것이지 모르지
    한치 앞도 모르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보이지 않는 길
    운전석을 바싹 세우고 허리도 바짝 기울여
    보이지 않는 길을 보려고 눈에 불도 켰으나
    그래도 보이지 않는다
    1단 기어를 넣고도 연신 브레이크를 밟는다
    내려가는 길이 더 어렵다
    고개를 숙여도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
    곧추선 목덜미가 아프다
    바로 앞 3미터는 상상의 세상일 뿐이다
    포장도로라기보다는 험한 산판길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예고 없는 운명 같은
    꼬꾸라지기 쉬운 내리막길
    한 시간 쯤 구름 속을 헤매였을까
    구름에 빗긴 산이 겨우 눈에 잡힌다




    구름 속을 나오자
    고장 난 대형트레일러가 줄지어 서있다
    한쪽 차선이 막혀 길이 뚫릴 때까지
    반대차선은 꼼짝 없이 기다려야한다
    전화기도 터지지 않아 박힌 화물트럭들은
    한 삼일은 넋 놓고 기다려야할 판이다
    길 중앙에서 어슬렁어슬렁
    누가오든 말든 꼼짝 않고서 갈테면 가라고
    두 눈만 동그랗게 휘둥그레한 소떼들
    저 소떼들과 이야기하며
    영상 10도의 열대의 추위를 녹여야할 판이다
    저 소들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구름의 비밀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루앙프라방 도심에 우뚝 솟은
    푸시(산)에 올라서니
    커다란 황금사원들 위로 파란 하늘이 열렸다
    해가 뜨기 전에
    해가 지기 전에 늘 기도하는 사람들
    구름은 산 아래에서 산꼭대기를 향해 있다
    내일이면 저 산 길을 다시 넘어가야하겠지
    여기 산 아래 살고 있는 아담한 동네사람들과
    날마다 은하수를 그리며 떨어지는
    꽝시폭포의 에머랄드 물빛소리는
    절대 가본 적이 없다는 저 구름 너머를
    나는 또 혼자 가야한다
    어쩌면 그 것이 산을 넘어온 자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루앙프라방 거리가 어둠에 스며들자
    낮의 아늑함이 한층 고즈넉해진다
    여행자의 발걸음은 멈추었지만
    야시장 여기저기 모여서
    하루 지나온 이야기를 하느라
    맥주잔도 목이 마를 지경이다
    이 길을 왜 왔느냐고
    돌아갈 길을 굳이 왜 왔냐고 묻는다면
    이유 없이 그냥 사는 날이 더 많지 않느냐며
    루앙프라방 어린 소녀들은 피식 웃고 말 것이다



    칼럼: 황의천 (라오스증권거래소 C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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