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 대상으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해온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6일 더불어민주당과 정부의 선별지원 방침을 결국 받아들였다.
그러나 "백성은 가난보다도 불공정에 분노하니 정치에선 가난보다 불공정을 더 걱정하라"는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2차 재난지원금 선별 지원이 가져올 부정적인 결과를 우려했다.
이 지사는 이날 정부 여당이 `피해 계층과 저소득층에 대한 재난지원금 선별 지원` 방침을 밝힌 데 대해 페이스북 글을 통해 "정부의 일원이자 당의 당원으로서 정부 여당의 최종 결정에 성실히 따를 것"이라며 "이는 변함없는 저의 충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국민 불안과 갈등, 연대성 훼손 등 1차와 달라진 2차 선별지급의 결과는 정책 결정자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위험할 수 있다"며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공화국에서 모두가 어렵고 불안한 위기에 대리인에 의해 강제당한 차별이 가져올 후폭풍이 너무 두렵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분열에 따른 갈등과 혼란, 배제에 의한 소외감,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나아가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이 불길처럼 퍼져가는 것이 제 눈에 뚜렷이 보인다"며 "적폐 세력과 악성 보수언론이 장막 뒤에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권토중래를 노리는 것도 느껴진다"고 했다.
이 지사의 한 측근은 "자신에게 결정권이 없는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선별지원을 수용할 수밖에 없지만, 이 방침을 마음속으로는 동의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을 놓고 치열하게 논쟁하되 당정이 결정하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그간의 원칙에 따라 당정의 결정을 수용은 하겠지만, 자신의 원칙은 변하지 않았음을 표현한 것이라는 얘기다.
이 지사는 그동안 "정책 논의 단계에서야 치열하게 논쟁하더라도 당정이 최종적으로 결정하면 당원의 한 사람이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흔쾌히 따르고, 한목소리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지사는 이날 글에서 "젊은 남편이 너무 살기 힘들어 아내와 함께 결혼반지를 팔고 돌아와, 반대쪽으로 몸을 돌리고 밤새 하염없이 우는 아내의 어깨를 싸안고 같이 울었다는 글을 봤다"며 "그러나 이 젊은 부부와 같이 갑자기 사정이 나빠진 사람은 이번 지원의 대상이 못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지사가 언급한 이들 부부 이야기는 지난달 23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부천에서 와이프 패물 팔고 왔네요`라는 글이다.
글 작성자는 "상황이 곤궁하고 생활이 어려워 패물을 판다는 건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얘기인 줄 알았는데, 막상 와이프랑 손잡고 가서 그걸 팔라니까 정말 눈물 나더라"며 "와이프는 오늘 하루종일 울다가 잠들고 저녁 먹으면서 겨우 달래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집에 불 다 끄고 우두커니 앉아있는데 정말 세상 참 안 좋은 일이 한꺼번에 밀어닥치니 그동안 쌓았던 업보를 받나 싶다"며 "그래도 저와 함께 살아보려고 패물을 모아서 바리바리 싸들고 간 제 와이프에게 참 미안하고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이 지사는 "젊은 부부에게 지금은 하나 마나 한 얘기겠지만 `그래도 내일은 해가 다시 뜬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이번 2차 재난지원금에는 자신의 보편지원을 실현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불가피하게 다가올 것으로 보이는 3ㆍ4차 지원 때는 전 국민 대상 지급을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이 지사의 측근은 부연했다.
이 지사는 다만, 자신의 이런 입장이 정부 여당과의 각 세우기로 일부에서 해석한 데 대해서는 "보수언론과 세작들은 더는 저의 견해를 `얄팍한 갈라치기`에 악용하지 말라"고 경계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눈에 보이는 쉬운 길을 말하지만, 저는 무겁고 아픈 현실을 외면하며 낙관적인 미래만을 말할 순 없다"며 "이 또한 정부 여당에 대한 저의 충정이자, 관료로서 의무"라고 했다.
이 지사는 그동안 1인당 30만원씩 전 국민을 상대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그는 정부가 선별 지원으로 가닥을 잡은 4일에도 `1인당 10만원씩 지급하고 나머지는 선별 핀셋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절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편 정세균 국무총리,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 및 김태년 원내대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등 당정청 고위인사들은 이날 총리공관에서 고위당정협의회 회의를 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에 있어 피해가 큰 계층이나 저소득층을 우선 지원하는 `선별지원` 기조를 공식화했다.
청와대는 6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방식을 두고 `문재인 정부`를 거명하며 강한 비판을 가한 것과 관련해 별도의 입장을 내지 않은 채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 지사 글의 핵심은 결국 당정청의 결론을 수용한다는 것"이라며 "이 지사가 아쉬움을 드러내며 사용한 표현의 적절성 문제를 청와대가 언급하는 것은 옳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이런 신중한 모습에는 청와대가 섣불리 말을 보탤 경우 대립각이 뚜렷해지면서 여권내 분열이 심화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표현이 강하기 때문인지 논란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며 "이 지사의 정치적 판단이 담긴 메시지가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고 했다.
현 정부와 각을 세우는 차별화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겠다는 이 지사의 생각이 담긴 것 아니냐는 지적이자, 이번 글에 대한 불편한 심정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언급으로도 볼 수 있다.
다른 관계자도 "청와대도 처음엔 2차 재난지원금 지급에 신중한 입장이었으나 당정청이 수차례 논의해 방침을 정한 만큼 이에 따르기로 한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이 시점에서 왜 이 지사의 SNS 비판이 나왔는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