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민주화 요구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됐던 한 명문대 여대생이 구치소에서 경찰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공개적으로 고발해 큰 파문이 일고 있다.
1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명보, 빈과일보 등에 따르면 전날 저녁 홍콩의 명문대학인 중문대 캠퍼스에서 재학생과 졸업생 1천4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대학 당국과의 간담회가 열렸다.
영국의 글로벌 대학 평가 기관 THE(Times Higher Education)의 2019년 아시아태평양지역 대학 평가에 따르면 홍콩 중문대는 9위를 차지해 서울대(13위)보다 순위가 높았다.
간담회에서 학생들은 지난 주말 경찰이 교내까지 들어와 학생들을 검거하려고 한 것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로키 퇀(段崇智) 학장에게 경찰의 강경 진압과 폭력성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할 것을 촉구했다.
지난 6월 초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안) 반대 시위가 시작된 후 경찰에 체포된 중문대 학생은 32명이다. 이 가운데 5명은 지난 5일 시위대의 마스크 착용을 금지한 복면금지법이 시행된 후 체포됐다.
특히 이 간담회에서는 소니아 응이라고 자신의 신원을 밝힌 여학생이 경찰에 체포된 후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해 큰 파문을 불렀다.
그는 지난 8월 31일 프린스에드워드 역 시위 진압 과정에서 체포됐으며, 이후 산욱링(新屋嶺) 구치소에 수감됐다.
지난 8월 31일 경찰은 프린스에드워드 역에서 시위대 63명을 한꺼번에 체포했는데, 당시 경찰은 지하철 객차 안까지 들어가 시위대에 곤봉을 마구 휘두르고 최루액을 발사했으며 이 과정에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소니아 응은 퇀 학장에게 "당신은 산욱링 구치소에서 몸수색하는 방이 칠흑처럼 어둡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며 "경찰이 우리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욕설을 퍼붓고, 능욕했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우리는 경찰이 저쪽으로 가라고 하면 저쪽으로 가고, 어두운 방에 들어가라고 하면 들어가고, 옷을 벗으라고 하면 옷을 벗어야만 했다"며 "어떤 학생은 경찰에게 구타를 당해 지금까지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의 접경 지역에 있는 산욱링 구치소에서는 경찰이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된 사람들을 구타하고 가혹 행위를 한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성폭행하거나 살해한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이에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지난달 27일 시민과의 대화에서 이 구치소를 앞으로 더는 경찰이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소문의 사실 여부도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소니아 응은 "성폭력과 학대를 당한 사람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 여러 명이며, 가해 경찰도 여러 명에 이른다"며 "경찰에 체포된 후 우리는 도마 위의 고기와 같은 신세여서 구타와 성폭력을 당해도 반항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용기를 내어 마스크를 벗는다면 당신도 우리를 지지하고 중문대생을 포함한 시민들에 대한 경찰의 폭력을 비난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소니아 응은 이 발언 후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고 자신의 얼굴을 드러냈다.
그의 공개 고발 후 홍콩 경찰은 산욱링 구치소과 관련된 성폭력 고발은 접수되지 않았지만, 사건에 대한 조사에 착수해 (피해 여성과) 적극적으로 접촉해 사실 관계를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소니아 응은 이날 한 방송 인터뷰에서 "내가 당한 성폭력은 산욱링 구치소가 아닌, 콰이충(葵涌) 경찰서에서 당했던 것"이라며 "하지만 산욱링 구치소에서도 한 명의 남학생이 여러 경찰에게 성폭력을 당하는 등 피해 사례들이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콰이충 경찰서에서 조끼에 찬 신분증을 뒤집어 놓은 한 남자 경찰이 내 가슴을 세게 쳤지만, 나는 반항도 할 수 없었다"며 "여성 경찰은 내가 화장실에 있는 동안 나를 계속 지켜봤고, 몇 걸음 떨어진 곳에는 남자 경찰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경찰이 나와 접촉하겠다고 밝힌 후 다시 체포돼 산욱링 구치소로 가게 될까봐 두려움에 떨었다"며 "나의 증언이 경찰에 대한 모함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이 사실을 밝히게 된 것은 나보다 더 심한 일을 겪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변호사와 논의해 가해 경찰 등에 대한 소송 제기 등에 착수하겠다고 했다.
한편 빈과일보는 시위에 활발하게 참여했던 한 여성의 죽음에 의문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빈과일보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홍콩 바닷가에서는 옷이 모두 벗겨진 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는데, 이 여성은 송환법 반대 시위 등에 활발하게 참여했다가 지난달 19일 실종된 15세 여학생 천옌린(陳彦霖)인 것으로 밝혀졌다.
빈과일보는 천예린이 수영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고 다이빙 팀에 참여할 정도로 수영 실력이 뛰어났던 점을 고려하면 그가 익사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고,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후 시신이 바다에 버려졌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최근 홍콩에서는 "경찰이 여성 시위자를 성폭행한 후 살해했다", "시위대를 폭행해 살해한 후 시신을 바다에 버렸다" 등의 소문이 잇따르고 있다.
홍콩 야당 의원 투진선(塗謹申)은 천옌린이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체포됐을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경찰이 그의 실종 사건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해 진상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정관오 지역 바닷가에서 이 여성의 시신이 발견된 것은 맞지만, 이 여성이 경찰에 체포됐던 기록은 없으며 시신에서 타박상이나 성폭행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다만 검시관의 부검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사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15세 여학생의 사망과 경찰 성폭력 고발 소식 등이 전해지면서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freeHongKong`(홍콩에 자유를) 해시태그 달기 운동도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이들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서 `freeHongKong` 해시태그 달기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한 한국 누리꾼은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에서 "1960년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 16세의 김주열 열사가 시신으로 떠오른 날은 4·19로 이어져 민주주의로의 길을 열어젖혔다"며 "오늘 홍콩 앞바다에는 시위에 참여했던 15세 여학생이 시신으로 떠올랐다"고 전했다.
그는 "홍콩 시민들의 자유를, 그보다 앞서 안전과 인권이 보장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