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은 8일(현지시간) 민주당 주도로 하원에서 진행 중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에 협력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의혹`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벼르고 있는 가운데 백악관이 의회 조사 비협조를 공식 선언한 것이어서 민주당이 강력 반발하는 등 정치적 공방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 때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비리 의혹 조사를 압박했다는 논란에 휩싸였고, 민주당은 지난달 24일 탄핵조사에 착수했다.
팻 시펄론 백악관 법률고문은 이날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에게 보낸 서한에서 하원의 탄핵 조사가 "근거가 없고 위헌적"이라고 주장하며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시펄론 고문은 8쪽짜리 서한에서 "전례없는 행동은 대통령을 선택의 여지가 없도록 남겨뒀다"며 "미국민과 헌법, 행정조직 그리고 미래의 모든 대통령에 대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과 행정부는 현재 상황에서 당파적이고 위헌적인 조사에 참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가장 기본적인 절차적 보호가 결여돼 있다"고 언급해 하원이 탄핵조사 착수 여부에 대한 찬반 표결 없이 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문제라는 점을 지적했다.
백악관의 이번 결정은 국무부가 이날 핵심 증인 중 한 명인 고든 선들랜드 유럽연합(EU) 주재 미국 대사에게 의회 증언을 거부하도록 지시한 뒤 나온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의 탄핵조사에 대해 "마녀사냥 쓰레기"라고 강력 비난하며 우크라니아 대통령과의 통화는 지극히 정상적이었고 어떤 대가를 약속한 것도 없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 1일 의회에 보낸 서한에서 국무부 관료들을 출석시키라는 요구에 대해 "이는 전문가들에 대한 협박이라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막을 것"이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탄핵조사가 진행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마이크 펜스 부통령,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윌리엄 바 법무장관 등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이 줄줄이 조사 대상에 오르내리고 있다.
AP통신은 백악관이 탄핵 위협에 대해 `시간 끌기, 알기 어렵게 만들기, 공격하기, 반복하기`라는 새롭고 분명한 전략에 착수했다고 평가했다.
백악관의 이번 결정은 민주당의 강한 반발을 불러올 전망이다.
민주당은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대해 권한 남용이자 조사 방해라며 새로운 탄핵 사유에 포함될 수 있다고 비난했다.
펠로시 하원 의장은 하원 표결을 거치지 않은 데 대해 "헌법이나 하원의 규칙, 전례에는 탄핵조사를 진행하기 전에 하원 전체가 투표해야 한다는 필요조건은 없다"고 절차상 하자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백악관이 탄핵조사 비협조 방침을 밝힘에 따라 당분간 조사는 실질적 진전 없이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간 정치적 공방만 가열시킬 공산이 커 보인다.
민주당은 탄핵 조사 착수 이후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등 의혹과 연루된 기관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당사자들에게는 의회 증언대에 출석하라는 소환장을 줄줄이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