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월 27일 오전 10시 50분께 청주시 가경동 택지조성 공사장 콘크리트관 속에서 방적 공장 직원 박모(당시 17세)양이 숨진 채 발견됐다.
지름 1m 콘크리트관 속에서 발견된 박양은 속옷으로 입이 틀어막히고 양손이 뒤로 묶인 상태에서 목 졸려 숨져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박양은 성폭행을 당한 뒤 목이 졸려 숨졌다는 소견이 나왔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이춘재(56)가 추가 범행으로 시인한 `청주 가경동 여공 살인 사건`은 이런 내용이다.
피해자 입에 재갈을 물리거나 옷가지로 매듭을 만들어 손발을 묶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시그니처`(범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성취하기 위해 저지르는 행위)에 해당한다.
사건 현장은 택지개발공사 현장으로 곳곳에 2.5m 깊이의 하수관로가 놓여 있었고, 평소 공사장 관계자 외 인적이 드믄 곳이었다.
귀가 중인 박양을 길에서 납치해 공사장 안으로 100여m 끌고 가 범행한 것으로 미뤄 이 일대 지형에 익숙한 사람의 소행으로 경찰은 추정했다.
포크레인 기사로 일했던 이춘재는 1991년 전후로 화성과 청주 공사 현장을 오가며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같은 곳에서 강도를 당한 피해자의 진술을 토대로 30대 초반에 키 170㎝가량의 남성을 범인으로 추정했다.
경기 화성 사건 당시 성폭행 피해를 가까스로 면한 여성의 진술 등을 토대로 만든 몽타주 범인의 모습은 20대 중반, 키 165∼170㎝의 호리호리한 체격이었다.
이춘재는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총 10차례의 `화성 사건` 외에도 추가로 5건의 살인과 30여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이 가운데 이춘재가 청주에서 벌인 살인 2건은 1991∼1992년 연달아 발생한 부녀자 피살사건으로 확인됐다.
그의 자백에 따르면 화성 사건 이후 1991년 1월부터 1994년 1월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하기까지 청주에서 3년간 여성 3명을 연쇄 살인한 셈이다.
이춘재가 자백한 또 다른 청주의 미제 사건은 1992년 청주에서 발생한 가정주부 이모(당시 28세)씨 피살사건이다.
1992년 6월 24일 오후 5시 30분께 청주 복대동 상가주택에서 주인 이씨는 하의가 벗겨지고 전화줄로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당시 2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사건 현장에서 나갔다는 목격자의 진술을 확보해 피해자와 남편 등 주변인을 중심으로 수사를 폈지만 끝내 사건을 해결하지 못했다.
청주서의 3건의 연쇄 살인은 모두 이춘재의 신혼집 인근인 청주 서부권(현재 흥덕구)에서 발생했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 화성에서도 자신의 거주지 인근에서 연쇄 범행한 것과 `판박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연쇄 살인범의 경우 자신의 거주지에서 약 3㎞ 이내에서 연이어 범행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며 "이춘재도 화성에서 청주로 이사하면서 거주지 주변에서 범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춘재는 1994년 1월 청주 자택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 돼 부산교도소에서 무기수로 복역 중이다.
그는 자백 과정에서 범인이 검거돼 모방 범죄 혹은 별개의 범죄로 여겨진 화성사건의 8차 사건까지 자신이 저질렀다고 주장해 경찰이 과거 수사기록 등을 토대로 신빙성을 검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