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이 통상 분야에서 이뤄진 `한일전`에서 모두 승리하는 쾌거를 이뤘다.
올해 들어서만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수산물 분쟁과 공기압 밸브 분쟁을 연달아 이겼다.
승리의 배경에는 통상 관료들의 치밀한 법적 근거 준비와 꼼꼼한 변론이 뒷받침됐다.
산업통상자원부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은 1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일본 수출제한조치 WTO 제소 발표문`을 읽은 후 원고에도 없는 공기압 밸브 `승소`에 대한 `환영` 의사를 밝혔다.
정하늘 과장
한일 수산물 분쟁에서 짜릿한 역전승을 만들어낸 주역 중 하나인 정하늘(39) 산업부 통상분쟁대응과장이 이번 공기압 밸브 분쟁에도 주무부서 과장으로 참여했다.
정 과장은 추석 연휴를 앞둔 이날도 휴식 없이 WTO 본부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 현장에 머물고 있었다.
일본과의 또 다른 WTO 소송 건인 스테인리스스틸 문제로 변론 준비에 여념이 없던 정 과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이번 승소를 두고 "우리 중소기업을 일본의 대기업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귀중한 승리"라고 평가했다.
정 과장은 "수산물 분쟁처럼 정치적, 경제적으로 파급이 큰 사안은 아니다"면서 "하지만 국내 공기압 밸브 산업은 중소기업이 대부분이고 일본은 글로벌 대기업 위주라 이번 결정은 국내 중소기업 산업을 보호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통상전문 변호사 출신인 정 과장은 지난해 4월 WTO 소송 등에 전문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산업부에 특채됐다.
앞서 한일 공기압 밸브 분쟁 1심에서도 정 과장은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로 참여했었다.
그는 "일본은 자국이 이겼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너무 과한 억지"라면서 "중요 쟁점 10개 중 3개 빼고 이긴 건 1심과 똑같고, 인과관계는 1심을 뒤집고 우리가 이긴 만큼 굳이 따지면 1심보다 훨씬 유리하게 된 셈"이라고 덧붙였다.
박근형 사무관
이번 공기압 밸브 소송에서 정 과장과 호흡을 맞춘 박근형(39) 사무관도 통상만 11년째 다룬 통상직 전문공무원이다.
박 사무관은 삼성경제연구소 출신으로 2008년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때 역시 특채돼 통상교섭본부 지역통상국 등에서 일하면서 잔뼈가 굵었다.
박 사무관은 "지난 4월 제네바에서 열린 상소심 구두심리부터 공기압 밸브 소송에 관여했다"면서 "1차 패널판정에서 주요쟁점에서 승리를 거뒀기 때문에 이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지만 결과적으로 잘 지켜내 기쁘다"고 말했다.
박 사무관은 "FTA 등 통상업무나 WTO 소송은 정부가 당사자이기 때문에 공무원으로서 고유의 역할을 갖고 일하는 게 보람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산 공기압 밸브의 경우 산업규모가 크지 않아 국내에 많이 들어올 때도 연간 500억원 규모밖에 안되고 지금은 반덤핑 관세 부과로 이보다 훨씬 줄었지만 최근 일본 수출규제 등 한일관계에서 중요한 이슈가 됐다.
지금까지 WTO 분쟁에서 한일전이 벌어진 것은 모두 6차례이며 이 가운데 이번 공기압 밸브를 포함해 4전 4승의 성과를 냈다. 나머지 스테인리스스틸, 조선업 등 2건은 패널이 구성됐거나 구성을 앞두고 있다.
이번 수출규제 WTO 제소까지 합치면 모두 7건이 된다.
당장 WTO에 걸려 있는 분쟁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한숨 돌렸지만, 이들의 업무가 끝난 것은 아니다.
산업부는 일본이 한국을 겨냥해 단행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건 수출규제 조치를 WTO에 제소하기로 한 상태다.
양국 무역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킨 사태인 만큼 WTO에서의 공방도 매우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