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사망의 압도적 다수는 암세포의 전이에서 비롯되며 유방암도 예외는 아니다.
과학적으로 암의 전이는 여러 단계로 나뉜다. 유방암의 경우 암세포의 건강한 유방 조직 침습, 일부 암세포의 원발성 종양 이탈, 혈관 진입 및 생존, 폐 등 다른 기관에 새로운 종양 형성 등의 과정을 거친다.
유방암 세포가 이렇게 다른 기관으로 전이하는 데 E-캐드헤린(E-cadherin)이라는 세포 접착 단백질이 결정적 작용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마디로 이 단백질이 없으면 유방암 세포의 전이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E-캐드헤린이, 원발성 종양에서 떨어져 나온 암세포들을 서로 달라붙게 한다는 건 어느 정도 알려졌다. 하지만 전이 단계별로 E-캐드헤린이 구체적으로 어떤 작용을 하는지 밝혀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미국 존스 홉킨스대 의대의 앤드루 이월드 세포생물학 교수팀은 최근 이런 내용의 보고서를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 온라인판에 게재했다. 이월드 교수는 이 대학 부설 킴멜 암센터가 운영하는 암 침습·전이 프로그램의 공동 디렉터를 겸직하고 있다.
10일(현지시간) 온라인에 공개된 보고서 개요( 링크 )에 따르면 E-캐드헤린은 전이 과정에서 암세포 내의 분자적 스트레스를 제한해, 암세포가 새로운 종양을 형성할 때까지 살아남게 한다.
`칼슘 의존성 연결`이란 뜻을 가진 캐드헤린은 조직 내에서 세포들의 밀착연접을 형성하는 막(膜) 관통성 단백질이다. 여기서 `E`는 상피(Epithelium)의 머리글자다.
이월드 교수는 "과거에 연구자들은 암세포가 전이하려면 반드시 E-캐드헤린이 없어져야 한다고 믿었다"라면서 "그런데 대부분의 유방암 종양엔 E-캐드헤린이 계속 발현해 기존의 통념과 상충했다"라고 말했다.
물론 유방암의 한 형태인 `침습성 소엽 암종(invasive lobular carcinoma)`에선 E-캐드헤린을 제거하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암세포 전이의 충심 축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전체 유방암 진단의 80% 이상을 점유하는 `침습성 관 암종(invasive ductal carcinoma)`에선 E-캐드헤린 단백질이 일정 수준을 유지하거나 과도하게 발현한다.
이월드 교수팀은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지 규명하기 위해 침습성 관 암종의 세 가지 하위 유형, 즉 내강(luminal)·기저(nasal)·3중 음성(triple negative) 유방암을 가진 생쥐 모델에 실험했다. 이들 세 유형은 유전자 발현 패턴과 평균적인 환자 결과(patient outcome)가 서로 달랐다.
그 결과, 세 유형 모두 E-캐드헤린 유전자가 억제되면 건강한 조직에 들어가는 암세포의 침습력이 극적으로 증강됐다. 예컨대 E-캐드헤린이 발현된 생쥐의 종양에선 경계선의 6%만 침습됐지만, E-캐드헤린이 없는 종양에선 82%가 침습됐다.
또한 E-캐드헤린이 없으면 전 전이 단계가 잘 진행되지 않았다. 실제로 E-캐드헤린이 없는 암세포는 이동 과정에서 방향을 잃어, 각 전이 단계를 거칠 때마다 많은 수가 사멸했고, 새로운 기관까지 어렵게 이동한 소수도 결국 새 종양을 형성하지는 못했다.
결론은, 유방암 세포가 다른 기관으로 이동해 새로운 종양을 형성하려면 `세포 접착제(E-캐드헤린)`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행히 이번 연구에선, 암세포의 전이가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실험 과정에서 원발성 종양을 떠난 암세포의 99%는 새 종양을 형성하지 못하고 도중에 사멸했다고 연구팀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