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지난 15일을 끝으로 국내 상장사 대부분의 분기 보고서 제출이 마감이 된 가운데 기재 오류를 이유로 분기보고서를 수정하는 기업들이 있다고 하는데요. 자세한 내용 증권부 신재근 기자와 함께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신 기자, 어떤 내용이 주로 수정됐나요?
<기자>
먼저 현재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기업은 코스피, 코스닥 모두 합쳐 2,123개사인데요.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 중 전체 57개 기업이 분기보고서를 정정했습니다.
이 중 재무제표 내용을 크고 작게 수정한 기업은 모두 30개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투자판단의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는 재무제표의 수치가 변경된 점은 투자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상황입니다.
<앵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요?
<기자>
금융감독원의 공시 사이트를 보면 코스닥 상장사인 JW신약은 분기 보고서 제출 마감일인 15일 오후 5시34분 별도재무제표에 관한 사항에서 영업이익을 642억원으로 최초 기재했습니다. 그러다가 다음날 오전 8시46분 영업이익을 6,400만원으로 정정했습니다.
이에 대해 제가 회사 측에 문의를 해 보니 "단순히 재무제표를 옮겨적는 과정에서 발생한 실수"라고 해명했습니다.
무선인터넷서비스업을 하는 필링크는 15일 오후 5시15분 최초 분기보고서 공시를 하고 24시간 뒤인 오후 5시23분 정정 공시를 내고 매출과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모두가 원래 공시와 비교해 줄었다고 공시했는데요. 특히 별도 재무제표 항목에서 당기순이익이 2조원에서 22억원으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같은 코스닥 상장사인 서울전자통신도 5월15일 오후 최초 분기보고서 제출을 하고 다음날 장중에 기재오류를 이유로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을 수정했는데 이 중 영업실적이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섰다며 원래 공시 내용을 뒤집었습니다.
계양전기는 분기보고서상 영업이익을 처음엔 732억원으로 공시했다가 다음날 21억원으로 낮춰잡았습니다. 법인세비용차감전순이익도 158억원에서 15억원으로 대폭 줄었습니다.
삼성제약은 어제 분기보고서 제출 5일만에 정정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영업손실폭은 확대되고 당기순이익은 감소했습니다.
모두 실적이 처음 발표보다 늘지는 않고 줄어든 경우였는데요, 이들 기업들은 모두 "공시 담당자의 단순 착오였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앵커>
만일 이들 기업의 분기보고서를 보고 투자를 결심한 사람들 입장에선 황당할 수 있겠는데요. 공시담당자의 단순 착오라는 것은 백만원 단위를 삭제한다던가, 이전 보고서의 수치를 복사하는 과정에서 같은 숫자가 그대로 옮겨온다거나 그런 경우여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습니까? 그러니까 단순 기재오류로 보기 석연치 않은 경우도 있었습니까?
<기자>
네. JW생명과학은 15일 최초 분기보고서를 제출했다가 이틀 뒤에 기재정정을 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 회사는 앞서 말한 회사들처럼 올해 1분기와 관련된 수치를 수정한 게 아니라 지난해 1분기 재무제표를 수정했는데요. 이 기업은 현금흐름표에 관한 사항을 대폭 고쳤습니다. 회사 측은 여기에 대해 "지난해 1분기 현금흐름표에 실수로 작년 사업보고서의 현금흐름표상 지표를 그대로 넣으면서 빚어진 결과"라며 "단순한 기재사항 오류"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회사의 해명대로 작년 1분기 현금흐름표에 지난해 사업보고서상 내용이 들어갔는지 확인해 봤습니다. 원래 사업보고서에는 영업활동 현금흐름과 영업외서 창출된 현금흐름이 339억원과 416억원으로 되어있었는데, 1분기 보고서에서 급히 수정된 내용에 따르면 JW생명과학의 지난해말 영업활동현금흐름은 사업보고서 대비 30% 가까이 차이가 나는 236억원, 영업외서 창출된 현금흐름도 그만큼 줄어든 314억원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문제는 분기보고서에는 이런 식의 실수 혹은 의혹이 발생하더라도 거래소나 금융당국의 조치가 바로 이뤄지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앵커>
이런 행태에 대해 금융 당국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기자>
일단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의 반응은 "분기보고서는 반기보고서나 사업보고서에 비해 중요도가 낮기 때문에 별다른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실제 분기보고서는 외부감사 의무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금감원 측 관계자는 "분기보고서는 보통 분식회계 같은 고의성 여부를 주로 확인한다"고 답했습니다.
종합하면 분기보고서는 반기나 사업보고서에 비해 당국의 제재가 약하기 때문에 상장사 입장에서 부담없이 재무제표의 수치를 변경하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기업들이 재무제표를 수정하면서 투자자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실제로 제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대부분의 기업들이 재무제표를 수정하면서 기재 오류를 이유로 내세웠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이 말만 듣고는 궁금증이 해소되긴 어려워 보입니다. 그리고 재무제표의 어느 부분이 수정됐는지 확실히 표기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예를 들면 수정된 부분을 강조하는 방식처럼 말이죠.
따라서 전문가들은 제도권으로 해결하기 보다 시장 자체의 정화 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전문가 의견 들어보시겠습니다.
<인터뷰>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기업들에게 있어서 포괄적인 공시 의무를 부과하면서 만약 이런 것들이 시장 질서를 해칠 때 집단소송이라던지 혹은 주주들의 건의를 통해 시장의 압력이 기업들로 하여금 공시와 관련된 부분들을 조금 더 무겁게 인식할 수 있는 그런 방향성으로 가져가는 게 합리적인 선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앵커>
네, 기업이 매 분기 발표하는 실적은 투자자들의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됩니다. 별다른 제재가 없다는 이유로 손쉽게 실적을 뒤집는 기업들도, 실수인지 고의인지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는 시스템도 미비한 점은 분명히 개선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증권부의 신재근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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