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이제부터는 대학을 나온다구해서 구미에 맞는 취직자리가 기다린다거나, 출세의 길이 열린다군 단정 못 할 겁니다. 몇 해 안가서 말단말직의 공무원이나 심지어는 급사까지라두 대학 졸업생이 될 겝니다.”
1957년 임옥인 작가의 중편소설 ‘여대졸업생‘에서 대학교 졸업을 앞둔 현애가 “졸업 후 어디 취직이라도 하냐”는 호식의 물음에 대답하는 장면이다. 구체적인 상황은 지금과 여러 모로 다르겠지만 이미 60년 전에도 학력 인플레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2017년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6~2026 중장기인력수급 전망’에 따르면 2026년까지 대졸 이상 인력의 초과 공급이 75만 명에 달하며 고졸 인력에 대한 초과 수요는 113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고교 졸업 직후 대학 진학으로 성장 경로가 일원화되면서 중소기업에서는 인력이 부족하고 대졸자들은 일자리가 부족한 악순환이 사회적인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 반대 여론 마주한 고졸 공무원 확대 방안
올 1월 교육부가 ‘2019년 교육부 업무보고’를 통해 고졸 취업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2022년까지 지역산업과의 연계를 강화하는 ‘지역산업형 직업계고’를 50개교로 확대하고 취업지원관 채용을 단계적으로 늘려 모든 직업계고에 1인 이상 배치하는 등 마이스터고 및 특성화고 학생들의 취업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포함됐다.
이번 고졸 취업 활성화 방안에서 가장 크게 이슈가 됐던 사안은 공공 부문 고졸 채용을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국가직 지역인재 9급은 2018년 7.1%에서 2022년 20%까지 확대하고 지방직 기술계고 채용은 2018년 20%에서 2022년 30%까지 늘려나간다는 세부 목표가 공공 부문 고졸 채용 확대 방안에 포함됐다. 공공기관 또한 고졸 채용 목표 비율을 자체적으로 설정하고 정부는 목표 이행을 기관에 권고하게 된다.
고졸 공무원 확대 방안이 발표된 이후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하 공시생) 커뮤니티 게시판과 온라인 뉴스 기사 댓글에는 공무원 고졸 채용 확대에 반발하는 의견이 쏟아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고졸 공무원 채용 제도를 폐지해달라는 청원이 여러 건 등장하고 수만 명이 넘는 인원이 서명에 동참했다. 대졸자의 취업난도 심각한 상황에서 고졸자만 응시할 수 있는 전형을 확대한다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주장이다. “대학을 졸업해야한다는 사회적 풍토에 휩쓸려 대학을 졸업하니 오히려 기회가 박탈됐다”며 억울함을 토로하는 공시생들의 하소연도 이어졌다.
반발이 이어지자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대졸자 역차별 우려는 오해’라고 해명했다. 지방직 공무원은 일반 9급 공무원 공채와 직렬이 구분돼 있고 국가직 지역인재 9급채용도 9급 공개경쟁임용과는 별도로 진행되므로 9급 공무원 공채 인원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지 않는다는 설명이 더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발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공무원 노조마저 ‘고졸 공무원 채용 확대에 반대한다’며 성명을 냈다. 예산이 한정돼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결국 다른 이들의 기회비용을 박탈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고졸전형 채용 이후에 결국 후 진학으로 대학 졸업장을 취득하는 현실적인 상황을 예시로 들며 고졸 채용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했다.
● ‘공무원’은 대졸자의 패자부활전?
한 공시생은 온라인상에서 “취업에 실패한 대졸자의 패자부활전 기회를 함부로 빼앗아서는 안 된다”라고 자극적이고 자조적인 표현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현실적인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느끼는 대졸 공시생의 입장은 충분히 납득되지만 취업을 하지 못한 상황을 ‘패배’로 간주하는 표현은 이해하기 어렵다. 공무원에 합격한 이들에게 자칫 상처를 줄 수 있는 발언이다. 더욱이 고졸 공무원 채용 확대는 결코 대졸자의 취업 자리를 빼앗아 고졸 취업자를 늘리는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식의 문제해결이 아니다. 국가직 9급 지역인재 채용 시험의 응시 자격은 특성화고와 전문대학 등 ‘공고된 직렬과 관련된 학과 과정을 이수한 졸업 예정자’ 또는 ‘졸업 후 1년 이내인 응시자’로 ‘학과 성적이 우수해야 한다’는 조건도 붙는다. 지방직 9급 기술계고 모집의 경우에는 학교 소재지가 해당 지역에 위치해야 하며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상태여야 가능하다.
이렇듯 까다로운 지원 자격을 갖추고 고졸 공무원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늦어도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진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진학해야 한다. 고졸 공무원 채용 확대는 일찍이 공무원을 희망하는 이들에게 대학이 아니더라도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등 다양한 삶의 경로가 있음을 인식시키는 방법이다.
● 다양한 성장 경로에 대한 편견 깨트려야
대학교 이상 고등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전공과 무관하게 공무원을 목표로 시험공부에 매진하는 상황은 2019년 현재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취업이 절실한 개인에게 현실적인 문제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더 일찍 꿈을 향해 다가갈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적성과 소질을 무시한 채 무작정 대학에 진학하는 풍토는 이미 사회적으로 개선돼야할 구조적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고졸 공무원 채용 확대는 우리나라의 고착화된 성장 경로인 대학을 거치지 않더라도 노력하면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기 위한 정책이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공공 부문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에서도 양질의 일자리가 다수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병행돼야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고졸 취업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은 시급한 과제다. 취재 중 만난 한 특성화고 재학생은 “승진이나 직장 생활에서 불이익이나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을 것 같아 대기업에는 가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성적도 우수하고 전공 관련한 대외활동 경험도 많아 학교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학생이기에 그의 말이 더욱 씁쓸했다.
이번 고졸 공무원 채용 확대 방안에 대한 공시생들의 반응 중 “나도 대학 가서 열심히 공부하지 말고 특성화고 가서 놀다가 공무원할 걸”이라는 식의 편견 어린 발언도 다수 존재했다. 속상한 마음을 고려하더라도 꿈과 적성을 찾아 노력하는 수많은 직업계고 학생들에게 상처를 주기에 결코 용납돼서는 안 될 발언이다.
고졸 취업에 대한 장려는 단순히 대학 졸업자가 너무 많기 때문에 줄여야한다는 산술적인 계산 때문이 아니다. 누구나 각기 다른 재능과 꿈만큼 다양한 방법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줘야 한다. ‘대학은 나와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을 공부하며 시간과 비용을 소모하는 일은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비극이다. 고졸 취업 활성화를 위해 학교에서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배출하도록 교육과정 및 현장실습제도를 개선하는 일도 중요하다. 각종 지원을 통해 다양한 일자리를 발굴하는 제도도 필요하다. 하지만 가장 선행돼야할 건 우리 모두가 편견을 내려놓는 일이다.
박인혁 하이틴 잡앤조이 1618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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