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역사적인 만남이 임박했다.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 집중된 세계의 시선 속에 북한과 미국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은 치열하게 수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난 주말 캐나다 퀘벡에서 열렸던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에서는 미국은 동맹국과 북한 문제에 대한 입장을 조율했다. 곧이어 중국 청도에서 열렸던 상하이 협력기구(SOC)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러시아와 북한에 대한 기득권을 재확인했다.
변수는 많고 의제도 워낙 큰 것이어서 단 한 차례 회담을 통해 조율되기는 어렵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추후 협상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관계(경제협력과 통일)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남북이 분단된 지는 1945년 일제 해방을 기점으로 한다면 70년이 넘었다. 독일보다 무려 25년이 길다. 체제부터 통일에 들어간다면 후유증이 클 수밖에 없다. 체제를 유지한 상황에서 예술, 체육, 문화 행사 등을 통해 남북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 사전 정지작업부터 필요하다는 의미다.
사전 정지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경제협력 단계에 들어간다. 도로, 철도, 통신시설 뿐만 아니라 동서독 통합과정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항만 등에 걸쳐 사회간접자본(SOC)을 확충하는 작업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시설을 재정비해 사용될 수 있으나 남한 기준에 맞춰 신설하는 쪽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높다.
SOC가 확충되면 그 기반 위에 생산요소와 북한에 필요한 생활필수품을 중심으로 물자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초기에는 후자가 더 중요하다. 북한은 가시적인 성과를 확인할 수 있고 남한은 부담이 클 수밖에 없어 이 단계의 성공 여부가 이후 남북 관계 진전과 속도를 결정할 수 있는 변수다,
경제적 측면에서 최종 단계는 화폐를 통일시키는 작업이다. 핵심은 남북 화폐 간 교환비율을 설정하는 문제다. 독일의 예처럼 화폐교환비율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북한 주민과 남한 국민의 명암이 크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동서독 통합 때에는 동독 화폐는 현실 가치보다 높은 수준으로 교환토록 합의해 동독 국민이 크게 혜택을 봤다.
경제협력 성과가 가시화되면 다음 단계는 통일 작업이다. 한반도 전역에 적용될 수 있는 헌법 제정과 국민 동의를 거쳐 정치적으로 통합이 돼야 한다. 남북 협력과 통일의 마지막 과정은 사회통합이다. 70년이 넘는 분단기간을 감안하면 모두 쉽지 않는 과제다. 프로보노 퍼블릭코(공공선) 정신과 국민의 희생이 따라야 해결될 수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끝남에 따라 금융시장은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도 커다란 관심사다. 첫 북미 정상회담인 만큼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다. 단순한 ‘합의’보다 ‘이행’이 중요하고 추가 협상을 통해 민간사안에 대한 입장차를 얼마만큼 좁혀 나갈 수 있느냐에 따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금융시장 모습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 정상회담의 경우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1차 회담이 있었던 2000년대 초에는 IT 버블 붕괴와 같은 변수가 있었긴 했지만 초기에 나타났던 심리적 효과는 지속되지 못했다. 2차 회담이 열렸던 2007년과 3차 회담에 열렸던 올해 4월 이후 금융시장은 큰 변화가 없었다.
북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3대 평가사가 특정국의 신용등급을 평가할 때 새로운 기준을 적용해 왔다. 금융위기 이전보다 지정학적 위험 비중을 낮추는 대신 거시경제 위험, 산업 위험, 재무 위험 비중을 높였다. 지정학적 위험이 경제기초여건(fundamentals)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 국가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하지 않는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산출하는 세계 지정학적 위험지수(GPR·Geopolitical Risk Index)도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된 이후 큰 변화가 없다. GPR 지수는 1900년부터 현재까지 세계 주요 언론에 △전쟁 △테러 △정치적 갈등 등이 언급된 비중을 종합해 2000∼2009년을 기준으로 세계 지정학적 위험이 심화 혹은 완화됐는지를 알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지표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자체만으로 금융시장에 기조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오히려 협상 기대로부터 비롯된 ‘급등(skyrocketing)’과 합의 실패, 부진한 이행에 따른 ‘순간 폭락(flash crash’으로 주가(특히 남북관련 주식)와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우리 입장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는 종전 선언, 평화협정 체결, 북미 수교 등으로 더 드라마틱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차이나 패싱’ 문제로 미국과 중국이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다.
투키디데스 함정은 신흥 강대국이 급부상하면서 기존 강대국이 느끼는 두려움으로 전쟁이 불가피해지는 상황을 말한다. 기원전 5세기 스파르타가 아테네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27년 간 치렀던 펠로폰네스 전쟁을 다룬 투키디데스의 이름에서 비롯된 용어다. 2015년 9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국가 주석이 언급한 이후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은 이미 이 함정에 빠져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시각도 많다. 출범 첫 해 트럼프 정부가 추구했던 달러 약세에 맞서 시진핑 정부는 위안화 약세로 맞대응하는 과정에서 ‘환율 전쟁’ 위기에 몰렸다. 올해 들어서는 ‘관세 전쟁’이란 용어가 나올 만큼 한 단계 높아지다가 최근에는 미래기술산업 주도권을 놓고 ‘첨단기술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반도는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져 운명이 크게 엇갈린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19세기 이후 일본이 급부상함에 따라 당시 강대국이었던 중국(청일 전쟁), 러시아(러일 전쟁), 미국(태평양 전쟁)과 전쟁을 잇달아 치르는 과정에서 ‘일본 식민지 시대’와 ‘남북 분단’이라는 한반도의 비극이 태어났다.
국제관계는 냉혹하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 변화에 미국, 중국, 북한이 전략적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치열한 ‘수(數)’ 싸움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중재자’ 역할의 시험대에 서게 된다. 기대섞인 전망들 처럼 북한의 개방 이후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할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의외로 큰 시련이 닥칠 수 있다.
한상춘/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