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이브메모리(divemomory) 김영환 대표
스쿠버다이버들에게 가장 무서운 건 배를 집어삼키는 높은 파도도 몸을 가누기 어려운 강한 조류도 아니다. 깊은 바닷속에서 활동하다 급하게 물 위로 올라올 때 발생하는 잠수병으로 불리는 '감압병'은 생명을 위협할 만큼 치명적이다. 국내에서도 천안함 사건, 세월호 참사 수색에 참여했던 몇몇 잠수부들이 극한의 수색 작업을 견디지 못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이러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장비가 바로 '다이브컴퓨터'다. 외국 제품들이 즐비한 시장에서 투자 한 푼 받지 않고 국내 첫 다이브컴퓨터를 제작한 김영환 대표를 만났다.
◇ 다이버가 된 ’근성의‘ 프로그래머
김영환 다이브메모리 대표가 처음부터 컴퓨터 제작을 계획했던 건 아니었다. 평범한 직장인이던 그에게 스쿠버다이빙은 그저 어릴 적부터 꿈꿔온 취미이자, 돈을 조금씩 모아 즐기던 일상의 탈출구였다.
15년 전 당시 20대 후반 젊은 영환 씨에겐 유명하다는 세계 곳곳의 다이빙 포인트를 찾아가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다이빙센터를 세우고 가까운 다이빙 포인트를 만들어가며 취미가 아닌 사업의 형태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무거운 공기통을 메고 물속에 들어가면 정말 무중력 상태거든요. 형형색색의 산호라든가 물고기를 보고 있으면 아무 생각이 안 나고 편안해져요"
바다의 매력에 빠져 살던 그는 급기야 10년여간 몸담아온 소프트웨어 개발회사를 그만뒀다. 대신 취미를 넘어 누군가를 가르치는 데서 재미를 찾았다. 태국에 머물며 세계 최대 스쿠버다이빙 교육회사 PADI(Professional Association of Diving Instructors) 인증 강사가 됐다. 전세계를 누비는 프로 다이버가 됐지만 그는 프로그래머의 근성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 '운명의 단짝'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전문가
스쿠버다이빙 강사로 변신한 김영환 씨가 완벽한 방수기능까지 갖춘 다이브컴퓨터 ‘다이브메모리'를 만들게 된 건 스쿠버다이버가 되려 찾아온 제자, 신우균 씨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운명의 단짝‘ 우균씨는 22년간 하드웨어 제작만 전담해온 그야말로 전문가. 프로그래머와 하드웨어 전문가의 결합은 그렇게 시작됐다.
영환씨는 처음에는 스쿠버다이빙을 끝낸 뒤 일일이 손으로 기록해야 하는 '일기' 로그북 작성 방식부터 바꿀 생각이었다. 한번 밀리면 쓰기 번거로워지는 일기처럼 그날의 잠수 상태를 담은 로그북도 나중에 한꺼번에 작성하기 어려운 작업이다. 그래서 '18년 경력 프로그래머'는 직접 잠수할 때마다 자동으로 기록해 관리하고, 전세계 다이버들과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상했다.
“단순히 하드웨어 제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융합 기술이기 때문에 플랫폼쪽에 집중하려고 하거든요. 소비자들이 내가 다이빙을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바로 플랫폼에서 검색해주고 그것에 맞는 상황을 조언해주는.. 비싼 돈 주고 즐기는 여행인데 정보를 많이 제공해주려 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손 쉬울 것 같던 작업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스쿠버다이버들이 쓰던 시계 형태의 기존 다이브컴퓨터들은 디지털 시대에 전혀 맞지 않았다. 햇빛이 들지 않는 깊은 수심에선 흑백에 백라이트도 없는 다이브컴퓨터 화면으론 잠수시간을 확인할 수 없었고, 잠수 기록을 PC로 옮기려해도 간단한 블루투스 기능조차 지원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도 가격은 100만 원을 넘는 고가의 브랜드, 레저를 즐기는 다이버들에겐 부담스러운 장비가 대부분이었다.
빛을 발한 건 파트너가 된 우균씨의 역할. MP3플레이어와 내비게이션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시계 형태의 정밀한 다이브컴퓨터 틀을 떠오고, 심해에서 작동 가능한 회로까지 함께 제작했다. 테스트를 위해 직접 양팔에 차고 다이빙하고, 동호인들을 찾아가 수 없이 피드백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제작 결함으로 버린 샘플만 수백 개. 결국엔 두 사람은 모아 놓은 목돈도 모자라 빚을 내 개발비를 충당한 끝에 4년 만에 잠수 기록을 온라인 플랫폼에 전송할 수 있고, 바닷속에서 선명한 글자를 보여주는 새로운 형태의 다이브컴퓨터를 완성했다.
◇ 스쿠버다이버들이 주주인 회사
다이브컴퓨터에는 다이버들이 수심에 따라 활동 가능한 시간, 깊은 수심에서 체내 녹아있던 질소가 충분히 빠져나가도록 물 속에서 대기해야 하는 시간, 수온 등 중요한 정보가 담겨있다. 미 해군을 비롯해 스펜서, 뷰르만, RGBM 등 5가지 알고리즘에 따라 잠수 가능 시간이 조금씩 다르다. 다이브메모리는 핀란드 순토(SUUNTO) 등이 사용하는 RGBM 알고리즘을 직접 사들여 레저용에 적합한 기능을 구현했다.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하게 됐지만 벤처캐피탈을 비롯한 투자자들은 망설였다. 우선 스쿠버다이빙과 같은 레저 장비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회사는 세계에서도 손가락에 꼽힐 정도다. 한국에서는 더구나 낯선 시장이던 다이브컴퓨터, 게다가 개발 초기에 적자가 쌓여있는 재무제표를 보고 선뜻 투자에 뛰어든 회사들은 없었다. 김영환 대표와 신우균 기술이사는 개발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고, 후회되는 부분을 설립 첫해 투자 유치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 점이라고 회상한다.
“처음에는 거의 1년 이상을 사업계획서만 쓰는 데 시간을 보냈던 거 같아요. 결과적으로 투자를 한 번도 받지 못했는데.. 지금와서 후회되는 거는 그때 투자에다 100% 힘을 쏟는 게 아니라 50%, 30%만 할애하고 나머지를 본업에 썼다면 지금보다 더 나아가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그런 두 사람이 희망을 찾게 된 건 2016년 진행한 창업진흥원의 크라우드펀딩 ’모아모아‘. 3천만 원의 투자자금 모집에 성공했고, 규모를 늘려 이듬해 1억 4천만 원, 올해 7천만 원의 펀딩을 받아 사업에도 탄력을 받았다. 투자에 참여해준 전문 투자자도 있지만 스쿠버다이버 동호인들도 후원에 참여했다. 김 대표는 이제 초보 다이버이자 주주가 된 이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보답을 준비하고 있다.
◇ ’노는 회사‘ 다이브메모리
두 사람의 궁극적인 목표는 스쿠버다이버와 소통하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다. 소셜미디어를 넘어 다이브컴퓨터를 사용하는 다이버들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의견을 반영해 더 나은 장비를 선보이겠다는 계획이다. 이미 서포터즈 선발과 같은 다이브컴퓨터 사용자들간의 네트워킹 데이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이들의 주주총회도 평범하지 않다. 올해 주주총회는 지난 2월 서울국제레저산업전시회 기간을 이용해 단돈 5만 원에 회의장을 빌려 열었다. 레저 산업에 관심있는 투자자들의 성향을 맞추고, 제대로 된 회사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여전히 연구 개발 과정에 투자한 손실이 남아있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내년에는 든든한 후원군인 ‘다이브메모리 서포터즈’와 크라우드펀딩 주주들을 초대해 제주도 바닷 속에서 주주총회를 개최하길 꿈을 꾼다.
“노는 회사 다이브메모리는 우스갯소리를 신우균 이사랑 얘기하는데, 결국엔 우리가 제품을 만들어 서비스하는 게 곧 사람들이 즐기고 노는데 할애하는 그런 제품을 만드는 거잖아요. 우리가 놀 수 없으면 좋은 제품이 나올 수 없다는 그런게 깔려있어요. 우리만 놀면 안 되니까 소비자, 주주와 같이 소통하고 여행다니고 성장하는 걸 만들려는 철학으로 운영하려고 해요, 그렇게 하고 있고”
《'THE메이커스'는 기술을 활용해 스스로 만들어내는 창작자, 장인 등 메이커들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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