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들이 즐겨 찾는 인기 채널로 등극한 페이스북 페이지가 있다. 흔한 겜방(게임방송)·먹방(먹는방송) 이야기가 아니다. 10대들로부터 외면받아온 정치와 경제, 시사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루는데도 팔로워 수가 13만 명을 넘었다. 5분을 훌쩍 넘기는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영상을 보다보면 순식간에 시간이 흘라가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정치·경제·사회라는 10대들에게 외면 받던 주제를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는 뉴미디어가 등장했다. 대학생 국범근 씨가 창업한 쥐픽쳐스 이야기다. 국범근 대표는 최근 ‘이슈먹방’을 통해 기성 매체들이 놓치고 있던 독자들인 청소년들에게 시사 이야기를 전달한다. 국범근(21) 쥐픽쳐스 대표를 만나 잘나가는 뉴미디어 스타트업의 콘텐츠 전략을 들었다.
(▲ 사진 = 국범근 쥐픽쳐스 대표)
◇ `공영방송 파업·북핵` 다루는데 10대들에게 인기
"10대를 위한 미디어는 친절해야 합니다. 그들이 뉴스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사건의 맥락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기 때문이에요. 학교에선 뉴스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지 않고 기성언론의 뉴스는 너무 불친절해요. 저희가 이런 영상을 만들고 있는 이유입니다."
쥐픽쳐스가 제작한 이슈먹방은 그동안 언론들이 알려주지 않았던 사건에 대한 배경지식을 설명하는데 방점을 둔다. 청소년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일어나고 있던 일들을 그들의 문법으로 설명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국제 사회의 강력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계속해서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다는 뉴스는 북한 정권의 체제유지와 묶어서 설명한다. 어려운 표현이나 단어는 배제하고 10대들이 자주 쓰는 말투와 표현을 선택했다. 감정 표현도 확실하다. 북한 정권이 자기들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핵무기로 무장하고 주민들을 억압한다는 대목에선 비속어까지 써가며 분노한다.
국 대표는 "기성 언론은 어른들의 시각에 맞춰 뉴스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파편적인 정보를 다룬다”며 "뉴스가 익숙하지 않은 청소년들은 그 배경과 맥락을 도와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며 자신이 영상을 만드는 이유에 대해 말했다.
국 대표는 어쩌다 다른 청소년들보다 사회문제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 그는 어린 시절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본 후 받은 충격이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영화 속에서 군인들이 총칼로 사람을 위협하는 모습이 어린 나이에 공포영화처럼 다가왔어요. 그런데 멀지 않은 과거에 저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알게 되니 놀랍더라고요."
그 때부터 그는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고 마치 드라마나 영화를 보듯 섭렵해 나갔다.
인기 콘텐츠로 올라선 ‘이슈먹방’은 국 대표의 이러한 경험을 녹인 콘텐츠다. 공영방송 파업, 위안부, 북한 핵 위협 등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지만 10대들에게 관심도가 떨어졌다고 여겨진 주제를 다룬다. 국 대표는 10대들이 시사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생각은 잘못된 편견이라며 성토했다.
"사실 저도 이런 문제를 정리한 영상을 만들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인가에 의문을 가졌어요. 그런데 이슈먹방 시리즈가 나가고 난 뒤에 조회 수가 100만뷰가 넘고, 친구들에게 공유를 하는 횟수가 폭발적으로 늘었어요.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연결고리만 만들어 주면 청소년들은 스스로 찾아 올 거에요."
(▲ 사진 = 국범근 쥐픽쳐스 대표)
◇ 재미로 시작한 영상, 이제는 사업으로
국범근 대표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두 가지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재밌는 영상을 찍어 널리 알리고 싶다는 콘텐츠 제작자로서의 모습. 다른 하나는 청소년의 알권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사회 운동가로서의 모습이다.
쥐픽쳐스는 국 대표가 고등학생 시절부터 만든 영상을 올리던 공간이다. 처음엔 재미로 시작했던 일이 이제는 하나의 사업으로 커졌다. 4년 전 국 대표는 학교 그리고 학생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의 영상을 찍어 SNS에 올렸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을 패러디를 통해 볼만한 영상으로 만들거나 학생들의 공감을 얻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했다.
영상을 만들수록 그는 재미보다 사회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콘텐츠를 주로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영상 만들어서 올리는 일이 재밌어서 시작한 일인데 이왕이면 의미있는 일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쥐픽쳐스의 가능성을 알아본 한 미디어 전문 엑셀러레이터는 지난 5월 이 곳을 투자사로 선정했다.
시사 전문 콘텐츠 제작자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콘텐츠 제휴에 대한 문의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영화 `남한산성` 팀과 손잡고 브랜디드 콘텐츠를 제작했다. 10대와 20대 사이에선 영화를 보기 전 봐야할 필수 영상으로 바이럴 되기도 했다.
사업을 시작한 만큼 탄탄한 수익 모델을 만들기 위한 시도도 계속하고 있다. 수익 모델 다각화의 일환으로 쥐픽쳐스는 레이블 채널 `젤리플`을 선보였다. 영상 속 패널들이 토론을 하는 컨셉의 영상 콘텐츠인 젤리플은 `청춘의 성(性)`을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예컨대 `처음 야동봤을 때 어땠어?`라는 질문에 남성과 여성의 솔직한 속마음 인터뷰를 담는 형식이다. 다만 청년들이 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캠페인을 오프라인에서 이어지게 할 수 있게끔 `젤리플 카드`라는 게임용 카드를 제작중이다.
"브랜디드 콘텐츠에 치중하는 미디어 스타트업이 자기들의 콘텐츠를 활용해 제품까지 만들어 판매했다는 사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자금을 모으고 있어요."
◇ 콘텐츠 성공 공식 따르지 않아…"중요한 건 완성도"
쥐픽쳐스의 이슈먹방은 일반적으로 알던 모바일 영상의 성공 공식과는 동떨어져있다. 영상의 길이는 길고, 쉬운 주제를 다루지도 않는다. 꾸준히 콘텐츠를 올리긴 하지만 주기적이진 않다. 대신 이야기에 인과관계가 명확하고, 기승전결 짜임새를 두고 만들어진다.
"저도 과거엔 모바일 영상이니까 길이는 짧고 자주 올려야 된다고 생각해 1분짜리 영상을 매일 올리던 시절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만들다보니 정말 필요한 내용을 놓치게 되더라고요."
국 대표는 영상의 형식에 집착하기 보단 내용의 완성도를 높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시청자들은 영상이 나한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기꺼이 소비를 하는 걸 확인했어요. 그 외 신경써야 할 부분은 영상을 보기에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만 꾸며주면 되는 것 같아요. 10대와 20대들에게 친절한 미디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제 할 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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