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채용비리에 칼을 뽑아든 당국이 14개 국내 은행의 채용추천제도를 집중 점검하는 배경에는 은행권에서 채용추천이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 은행들은 공식적으로는 추천제도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은행[000030]의 특혜채용 의혹 제기와 함께 공개된 채용추천명단과 자체감찰 중간보고서를 보면, 채용추천 명단의 작성과 추적·관리가 공공연하게 이뤄진 흔적이 여러곳에서 보인다는 게 금융당국의 시각이다.
또 이런 점을 볼 때 다른 은행에서도 관행적으로 또는 암암리에 이와 유사한 과정이 이뤄지고 있을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해외은행의 경우 채용추천 제도와 이에 대한 내부통제 제도가 공식적으로 운용되고 있다면서도 미국 JP모건체이스 등 월가 대형 투자은행들의 중국 태자당 특혜채용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제도가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연방수사국(FBI),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은 지난 2013년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가 기업공개(IPO), 주간사 선정 등 중국사업의 계약 성사를 위해 중국 태자당((太子黨·혁명 원로·고위공직자 자제그룹)을 특별채용했다는 의혹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대상에는 JP모건체이스 외에도 씨티그룹, 크레디트스위스, 도이체방크,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다른 은행들도 포함됐다.
당시 JP모건 차이나 사장을 지낸 리샤오자(李小加) 홍콩 증권거래소 회장은 본사에 중국 고위층 자녀의 채용을 건의하는 이메일을 보냈고 이에 따라 류밍캉(劉明康) 전 은행감독관리위원회 주석의 아들과 탕솽닝(唐雙寧) 광다그룹 회장의 아들 등이 특채 명단에 포함됐다.
JP모건은 이후 광다은행이 상장을 추진할 때 주간사로 선정돼 수억 달러로 추정되는 수수료 수익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투자은행 업계에서는 2000년대 이후 중국 사업을 위해 중국의 당·정·군·재계의 요직에 있는 고위층의 자녀를 고용하는 것이 거의 통상적인 일이 돼 왔고 이는 큰 수익을 올려줬다는 후문이다.
SEC와 FBI·연준 등 미국 당국은 이후 3년여간의 조사를 거쳐 지난해 11월 JP모건이 합의금 2억6천400만달러(약 3천억원) 내는 조건으로 이 사건을 일단락했다.
미국 당국은 특혜채용 의혹에 대해 해외부패방지법(Foreign Corrupt Practices Act)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FCPA는 미국 기업이 외국 정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 사건의 합의금은 FCPA 위반 사건 중 7번째로 큰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당국의 조사결과 JP모건은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아시아태평양 지사에서 통상적인 채용절차를 우회하는 고객추천채용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고객과 잠재고객, 외국 정부당국자의 추천으로 200여 명에 달하는 인턴과 정규직원을 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100명은 중국공산당 관료와 20여 개 거대 중국 국유기업으로 추천받은 후보자들이었다.
이에 따른 혜택으로 JP모건이 벌어들인 수익은 1억 달러(1천115억원)를 넘어서는 것으로 드러났다.
앤드류 세레스니 SEC집행국장은 당시 성명에서 "JP모건은 정부당국자 등 채용추천자들의 자녀를 부적격자임에도 고용해 시스템적 뇌물수수를 저질렀다"면서 "부적절한 채용프로그램이 법 위반인지 알았지만, 사업적 수익과 새 계약이 너무 유혹적이어서 이를 지속해서 운영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외국은행의 경우 추천채용제도를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며 "다만, 제3의 내부통제기관이나 준법감시인의 판단을 거쳐 공정하게 운영하는 시스템을 갖추라는 게 미국 등 외국 당국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정서로는 추천제 자체가 청탁으로 비치는 측면이 강하다"면서 "민간금융회사의 경영자유를 존중하면서 공정성을 갖출만한 접점이 어디 있는지가 고민거리"라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달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감독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특혜채용 의혹이 제기된 우리은행은 자체감찰을 마치고 내·외부 청탁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제거해 공정성을 확보하겠다는 중간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우리은행 중간보고서의 신입행원 채용절차 쇄신안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내년부터 채용 전 과정을 외부업체가 주관하게 하고, 채용비리자 발견시 해임 면직 및 법적 조치를 하는 한편, 비리대상자가 이미 채용된 경우 채용을 취소하고, 내부고발제도를 강화하기로 했다.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