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겸 방송인 허지웅이 마광수 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애도했다.
허지웅은 6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절실할 때는 존재하지 않다가 영 엉뚱할 때만 홀연히 나타나 내가 너보다 윤리적으로 탁월하다는 우월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에 질려 세련된 문장과 위악을 양손에 들고 치열하게 싸웠으나, 결국 위악으로 사로잡을 수 있는 마음의 숫자에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패배해 유배당하고 조롱당했던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 삶의 악취에 천천히 질식해 쓰러지다. 마광수 1951~2017"라는 글을 올리며 세상을 떠난 마광수 전 교수를 추모했다.
마광수 전 교수는 전날 오후 1시 35분께 아파트 자택 베란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고인의 방 책상에는 A4 용지 한 장에 자신의 유산을 가족에게 남긴다는 내용의 자필 유언장이 놓여 있었다. 그는 재작년 모친을 여읜 뒤로는 서울 용산의 자택에서 혼자 살았다.
마광수 전 교수는 1951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과와 대학원을 나왔다. 성에 대한 가감없는 묘사가 담긴 소설로 널리 알려졌지만 문학 인생의 출발은 시였다. 윤동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77년 현대문학에 `배꼽에` 등 6편의 시가 추천되며 등단했다. 28세에 대학 교수로 임용되면서 천재로도 불렸다.
1991년 소설 `즐거운 사라`를 펴내고 이듬해 10월 음란물 제작·반포 혐의로 구속되면서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 고인이 구속되자 문학계뿐 아니라 미술·영화 등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구명운동을 벌였으나, 3년간 재판 끝에 1995년 6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마광수 전 교수는 이후 대법원 확정판결로 해직됐다가 1998년 특별사면을 받았다. 복권 이후 다시 연세대 강단에 섰다. 그러나 개인 홈페이지에 `즐거운 사라`를 비롯한 음란물을 올린 혐의로 약식기소되고 제자의 시를 자신의 시집에 실었다가 사과하는 등 크고 작은 사건에 계속 휘말렸다. 지난해 8월 정년퇴임한 그는 해직 경력 탓에 명예교수 직함도 얻지 못했고 필화 사건의 상처와 동료 교수들의 따돌림에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