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충청도 소년은 오로지 마우스와 키보드, 그리고 자신의 머리만 믿은 채, 대전에서 서울로 상경한다. 그를 이끈 건 성공도 꿈도 아니었다. 게임을 좋아하는 호기심과 모험심, 새로운 것에 대한 목마름이 전부였다. 이미 대전에서는 쟁쟁한 전략으로, 대회마다 1등을 휩쓸고 다녔던 소년에게는 더욱 새롭고 진지한 목표가 필요해졌다.
결국, 서울 63빌딩에서 개최된 전국 규모의 게임대회에서도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팀을 승리로 이끌며, 500만 원이라는 상금을 거머쥔다. 그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상금을 팀원들과 N 분의 1로 나눴다. 화끈한 성격의 이 소년이 궁금하다고? `콩 댄스`, `폭풍 저그`, `2등`. 수많은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는 홍진호의 얘기다.
# 소년, 외유내강(外柔內剛) 어른이 되다
홍진호의 가장 큰 매력은 잡티 없이 하얀 피부와 소년 같은 미소다. "82년생, 개띠예요. 혈액형은 AB형이요." 나이를 묻자 수류탄이라도 투척하듯, 곧바로 시원한 대답이 날아온다. 그의 말투는, 가끔 `이 친구 성격 있네`라고 느낄 만큼 직설적인데, 가식 없고 솔직한 점에 도리어 안심이 된다. "좋아하는 일은 망설임 없이 행하는 편이에요. 그렇지만 싫은 일을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안 하는 편입니다." 부드러운 외모에, 살짝 애교 섞인 혀 짧은 발음으로 이 남자를 섣불리 판단했다가는 주관 뚜렷한 강단 있는 모습에 놀랄 수도 있다.
"첫 키스요? 고등학교 1학년 때였나" 이어서 그는 "학창시절에는, 넘어야 할 선은 넘지 않으면서도 잘 놀았어요"라고 덧붙였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어머니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으로 늘 바르게 자라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그. 이제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는 모습을 보면서 슬슬 자신의 가정을 꾸릴 생각을 하는, 그는 정말로 어른이다.
# 홍진호의 취향 구석구석
여가에는 평소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묻자 그는 "경포대로 떠나요. 바다를 정말 좋아하는데, 막상 바다 하면 동해, 동해 하면 경포대 밖에 안 떠오르더라고요."라며 시원하게 웃어 보였다. 단순하고 화끈한 그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스트레스 쌓일 때 그는 매운 닭발을 먹는다. "먹는 순간 숨이 멈출 것만 같은 매운 닭발을 좋아해요. 맛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너무 매워서, 진짜 미칠 것 같은 감정을 느끼고 나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거든요"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만큼, 그의 표현은 구체적이다. 추천하는 맛집 또는 자주 가는 단골 가게가 있냐는 질문에 "압구정에 개그맨 이진호 씨가 운영하는 `포차살롱`이 있는데, 거기 자주 가죠"라고 곧바로 대답했다. 혹시 가게 지분이라도 있냐는 농담에 그는 멋쩍게 웃으며 "없어요. 그냥, 진호가 잘됐으면 좋겠어요. 이름도 똑같고......"라며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찰나의 아재 개그를 발휘하기까지 한다.
다소 예민한 부분일 수도 있는, 정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좋아하는 정치인이 따로 있냐는 질문에 "특별히 없어요. 그렇지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정말 좋아합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랑 진짜 외모가 똑같으셨어요"라고 대답했다.
# 직업으로 맞닥뜨린 `게임`은 생존이었다
"방송을 할 때는 출연진과 프로그램 성격에 맞춰 즐거운 마음으로 어우러지면 되지만, 게임은 달라요. 내용이 아무리 좋았어도 모든 결과는 순위에 따라 매겨지죠." 만년 2등 설에 관해서 그는 진중한 눈으로 말했다. "언제부터인가 2등이라는 타이틀이 트라우마처럼 작용했어요. 머리털이 빠질 만큼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죠. 어떤 매체에서는 시합 전에, `2등 한 소감이 어떠냐`는 짓궂은 인터뷰를 건네기도 했어요. 2등도 많이 했지만, 1등도 많이 해봤기 때문에 이제 별로 신경 쓰지는 않지만요" 그에게 더는 등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홍진호는 전직 프로게이머로서 꼭 해야 할 말들을 해나갔다. "프로게이머들은 그 시합에 사활을 걸기도 하고, 생계와 연관이 되어 있어요. 이들에게 게임은 두뇌와 전략으로 겨루는 올림픽과 같은 거죠. 물론 `게임중독`은 사회적 문제이지만, 프로게이머를 바라보는 일부 잘못된 시선은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어요" 그가 매번 방송에서 비추던 유쾌한 얼굴을 벗어나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 순간이다.
# 게임과 방송, 그 접점에 서다
홍진호의 말처럼, 이제 `게임`이라는 영역은 하나의 국내에서도 큰 산업 분야로 자리 잡았다.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나 경쟁 구도의 게임보다는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장르와 같은 스토리가 있는 게임을 선호하는 그는 방송계에서도 자신의 추리력과 캐릭터를 한껏 살린 예능감을 발휘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탐정`, 또는 `썸남`의 아이콘으로 등극했으니까. 그는 지금껏 출연한 수많은 방송 중, "김희철과 이진호와 호흡이 정말 잘 맞고, `건강한 게임문화를 찾는다`는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부터가 내 전문분야 지식을 살리는 데 안성맞춤이다"라며 현재 출연 중인 <게임쇼 유희낙락>(SBS)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강조했다. 그는 최근 출시된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에 이제 프로게이머로서 참가할 의사는 없지만 여전히 게임을 즐기고 있으며, 언제든지 새로운 일에 도전할 각오로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선선해지는 날씨처럼 기분 좋은 웃음을 짓고 있는 그의 얼굴에서 언뜻 1등 너머 승리자의 모습이 스쳤다.
진행 PK헤만(가수&래퍼) | 기획· 편집 권영림 (사진=콩두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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