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잘 나온 것 같아요. 시나리오 보다 연결도 잘됐고요.”
18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장동건은 3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 ‘브이아이피’에 대해 자신감을 드러냈다.
“기대보다도, 이제는 흥행을 좀 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과정이 좋지만 결과가 안 좋을 수도 있고, 과정이 안 좋은데 결과가 좋을 수도 있어요. 그게 우리 힘으로 되는 건 아니지만 둘이 다 좋은 게 제일 좋은 것 아닌가요. 지나고 나면 결과가 좋았던 것에, 관객의 사랑을 받은 작품들에 저도 애정이 많이 가는 것 같더라고요.”
‘친구’, ‘태극기 휘날리며’ 등 한국영화 전성기를 이끌었던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 배우 장동건이 영화 ‘브이아이피’를 통해 오랜 만에 컴백을 알린다.
오는 24일 개봉하는 ‘브이아이피’는 국정원과 CIA의 기획으로 북에서 온 VIP가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상황에서 이를 은폐하려는 자, 반드시 잡으려는 자, 복수하려는 자의 이야기를 다룬 범죄영화다.
“소재가 신선하면서 있을 법한 이야기여서 끌렸어요. 개인적으로 느와르를 좋아해요. 배우는 선택을 받는 직업인데, 그런 작품들이 많이 들어와요. 영화에 대한 호기심이 생길 때 ‘대부’를 봤는데, 그거에 대한 로망도 있어요.”
영화 내내 숨막히는 긴장감과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를 선사하는 ‘브이아이피’는 각국의 국가 기관을 대표하는 국정원 요원 박재혁(장동건), 경찰청 형사 채이도(김명민), 보안성 요원 리대범(박희순), CIA 요원 폴(피터 스토메어)이 VIP 김광일(이종석) 한 명을 두고 집요한 공방전을 벌인다. 장동건은 극중 VIP 김광일의 존재를 은폐하려는 국정원 요원 박재혁 역을 맡았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박재혁이 눈에 들어왔어요. 국정원 요원인데, 기존의 국정원 요원과는 다른 현실적인 부분이 있었어요. 출연 배우 중에 유일하게 변화하는 캐릭터인 것도 좋았고요.”
장동건은 더욱 깊어진 연기로 북에서 온 VIP 김광일의 존재를 은폐하려는 국정원 요원 박재혁의 냉철하고 이성적인 면모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장동건이 이 영화에 갖는 애착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박재혁은 현실적인 사람이에요. 정의감이 없지는 않으나, 회사의 업무에 충실하면서 능력이 있는,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한 현실적인 사람이죠. ‘가정은 있을까’ 등 많은 생각을 하다보니 이 사람이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가 와 닿더라고요. 다만 심리의 변화가 있는데, 어느 정도 표현을 해서 드러낼 것인가를 감독님과 상의를 했어요. 영화적으로 재미가 떨어지지 않을까 해서 최대한 표현을 절제했죠.”
미 CIA로부터 북한 고위층 VIP 김광일을 넘겨받은 국정원 요원 박재혁은 김광일이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자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 그러나 사건의 진상이 드러날수록 김광일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위험한 인물임을 알게 된다.
“수위는 여러 기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잔인한 장면에 놀랐어요.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는 과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브이아이피’에서는 김광일 캐릭터가 관객의 광분을 이끌어 내야해요. 그 장면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정도 까지 하느냐는 연출자의 몫이죠. ‘악마를 보았다’와 ‘신세계’의 중간 정도라고 생각해요.”
장동건은 보수적인 조직에서 살아남으려 고군분투하는 일상적인 회사원 같은 모습으로 관객들의 공감대를 자극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남배우 장동건의 평범해 보이려는 노력은 이번 연기 변신에 중요한 지점이었다. 장동건은 외모를 감추기 위해 철테 안경을 쓰고, 라인을 드러내지 않는 무채색의 수트를 착용했다.
“일상적인 회사원 생활 연기는 드라마를 통해 접해봐서 어렵지는 않았어요. 안경 설정은 시나리오에 처음 쓰여 있었고, 아주 예전 드라마에서 한 번 써 봤어요. 그 이후엔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는데 안경이 잘 안 어울려요. 50개 정도 써보고 자연스러운 안경을 고른 거예요.”
‘브이아이피’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모두 뭉쳤다. 장동건을 비롯해 김명민, 박희순, 이종석은 지금까지 그들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강렬한 연기로 관객을 압도할 예정이다.
“김명민은 처음 봤어요. 의외였어요. 어색한 분위기를 못 버텨하더라고요. 덕분에 현장 분위기가 좋았어요. 김명민이 현장에 있을 때랑 없을 때랑 분위기가 너무 달랐어요. 이종석은 김광일 역을 한다고 했을 때 놀랐어요. ‘이 친구가 변화에 대한 갈증이 있는 상태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자기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임하더라고요. 그래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장동건과 호흡을 맞춘 세계적 배우 피터 스토메어는 “날 보기만 해도 전율이 느껴졌다”며 함께한 그의 인상적인 연기에 대해 전했다.
“피터 스토메어가 출연한 작품을 보면 무서운 역을 많이 해서 걱정을 했어요. 첫 만남 이후 마음을 놨어요. 편하게 촬영했어요.”
‘부당거래’, ‘악마를 보았다’의 각본, ‘신세계’, ‘대호’의 연출까지 박정훈 감독은 숨 쉴 틈 없이 뻗어나가는 스토리에 강한 개성과 욕망을 지닌 캐릭터들의 관계를 그리며 대한민국 최고의 스토리텔러로 손 꼽혀왔다. ‘브이아이피’에서는 인물의 대사 하나, 하나를 놓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바로 캐릭터를 뛰어 넘어 국가를 대변하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감독님이 재미있으세요. 자기만의 설계가 분명하시더라고요. 촬영을 하다보면 다른 것도 시도를 해보는데, 이런저런 의견에도 자기만의 생각대로 가시더라고요. 연기하기에 수월했어요. 아쉬운 점은 없어요. 깔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01년 ‘친구’를 통해 존재감을 알린 후 2002년 ‘2009 로스트 메모리즈‘, ‘해안선’,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 2005년 ‘태풍’, 2006년 ‘무극’, 2009년 ‘굿모닝 프레지던트’, 2011년 ‘마이웨이’, 2012년 ‘위험한 관계’, 2014년 ‘우는 남자’까지 장동건의 필모그라피는 한 배우의 족적이자 대한민국 영화사이기도 하다.
“‘친구’라는 작품이 저에게는 터닝 포인트였어요. 그 작품을 통해서 저를 배우로 인정을 해주지 않았나 싶어요. 환경 등 여러 가지가 달라졌죠. 40대가 되면서 여유로워진 것 같아요. 책임감이 없다기보다는, 부담감을 버리게 되는 것 같고, 조금 더 단단해진 느낌도 있고요.”
‘우는 남자’ 이후 3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그는 새로운 관객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까.
“‘브이아이피’는 연기 슬럼프를 극복한 직후 찍은 영화예요. 그래서 굉장히 즐겁게 찍었어요.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청취자들이 내 초기 작품인 ‘마지막 승부’부터 ‘신사의 품격’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배우 장동건이 다양한 연령층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고 살았구나’라는 생각에 감회가 새로웠어요. ‘브이아이피’ 역시 그 역할을 다하는 작품이었으면 해요.”
2010년 5월 동갑내기 배우 고소영과 결혼해 두 자녀를 둔 장동건은 아빠가 된 이후 삶의 태도에 많은 변화가 생겼단다.
“아이들이 일요일에 유치원에 안가고 집에만 있으니까, 아이들은 두고 야구를 하러가기에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이제 아이들이 엄마, 아빠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알아가요. 아이들이 볼 수 있는 작품도 하고 싶어요.
대중으로부터 가장 사랑 받는 배우 중 한 명인 그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작품을 신중하게 선택하는 성격이었는데, 지나고 나니까 기간에 비해 작품 수가 적은 것이 아쉽더라고요. 그리고 신중하게 선택한 작품이 잘되는 것도 아니고요. 즐기면서 오래하고 싶어요. 연기가 재미없어 보니까 그 순간이 위험한 순간이더라고요. 즐겁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오래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