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오늘(21일) 일자리위원회 첫 전체회의를 주재했다. 이날 회의는 18년 만에 대통령 주재 회의에 노사단체가 한자리에 모인 거다. `일자리 대통령`을 자처한 문 대통령이 취임 이후 경영계를 처음 만난 자리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저는 친노동이기도 하지만 친경영, 친기업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 서로 상충되는 표현이지만,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은 공약을 보고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던 경영계는 한숨 돌렸을 만한 발언이다. 하지만, 경영계의 기쁨은 잠시 뿐이었고, 큰 짐을 하나씩 짊어지고 발길을 돌렸다. 정답지를 보고도 문제를 풀 수 없는 수험생처럼 말이다. 더 큰 문제는 일자리 창출이 국가적 과제이지만 험로가 예상된다는 점이다. 일자리 추경이 막힐 경우 공약은 출발선에만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협치가 절실한 상황인데 터널 속 한줄기 빛도 안보이는 형국이다.
노동계-경영계 함께 안은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계는 지난 두 정부에서 아주 철저하게 배제되고 소외됐다"며 "문재인 정부는 경영계와 마찬가지로 국정의 주요 파트너로 인정하고 대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변호사 출신의 대통령이 노동계를 대접한다는 발언은 노동계 입장에서 그동안의 설움이 어느 정도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을 거다. 다만 "노동계가 새 정부에 요구하고 싶은 내용들이 아주 엄청나게 많을 것이지만 시간이 필요하다"며 "적어도 1년 정도는 좀 시간을 주면서 지켜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경영계도 함께 안았다. 문 대통령은 "저는 친노동이기도 하지만 또 친경영, 친기업이기도 하다"며 "우리 경영계도 정말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데 역할을 해 주신다면 제가 언제든지 업어드리겠다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일제히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재벌개혁, 경제민주화를 외친 대통령의 `친기업`이란 표현은 경영계로 부터 환호가 나오기 충분했다.
대기업 빠진 양질의 일자리 창출
일자리위원회는 일자리 창출 역량 강화를 위한 방안을 내놓았다. 여기서 민간부문 내용을 보면 신성장 산업은 네거티브 규제시스템을 도입하고, 우리 기업들이 해외에서 유턴하도록 대폭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거다. 대표적으로 사물인터넷과 로봇 등 4차 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집중 육성하기로 했다. 특히 `일자리 보고`라 할 수 있는 중소기업 서비스업을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재벌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과 `문어발식 확장을 해소해야 한다`고 한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가 뒷받침돼야 하는 만큼 공정거래위원장에게도 특별히 당부했다. 쉽게 말해 중소기업이 주축이 돼 신성장 산업에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거다. 경영계는 큰 숙제를 안은 셈이다. 지난해 고용노동통계(공기업 제외)를 보면 전체 고용자수는 1,664만여 명이다. 이가운데 대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상호출자제한집단 기업의 고용자 수는 121만여 명. 전체 고용의 약 7%를 차지했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줄곧 8%를 유지했다. 대기업 보다 중소.중견기업의 고용 창출 비중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에 일자리 기여도 역시 높다. 하지만 양질의 일자리, 즉 임금을 포함해 각종 처우가 좋은 일자리는 대기업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란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다시말해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 방향은 맞지만 미세조정이 필요한 부분이다. 물론 대기업들도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존의 관행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일자리 창출 급한데 곳곳 암초
문재인 대통령의 업무지시 1호인 일자리위원회가 오늘로써 조직의 형태를 갖췄다. 정부와 경영계, 노동계 등 단순화된 조직이 아니라 비정규직, 청년, 여성, 어르신, 중소기업, 벤처, 지자체 등 다양한 계층이 함께 하게 된 일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일자리위는 본위원회 이외에 전문위원회와 특별위원회, 지역위원회를 운영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일자리위 운영세칙은 청와대가 어떤 이유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오늘 회의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운영방안 없이 운영하는 일자리위원회. 레일 없이 기차를 우선 만든 셈이다. 당장 오는 30일 노동계가 총파업을 예고한 것도 걱정이다.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공공비정규직노조, 건설노조, 화물연대 등이 총파업을 예고했다.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은 조합원들에게 `사회적 총파업`을 독려했다. 문 대통령이 노동계를 대접하겠다는 발언에도 불구하고 파업이 강행될 지는 지켜볼 일이다. 가장 시급한 11조원 규모의 일자리 추경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6월 임시국회는 물 건너간 것으로 정치권은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이 국회 인사청문 과정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 야당이 반발한 인사에 대해 임명을 강행하면서다. 문 대통령이 대선 과정이나 취임 이후 줄곧 협치를 강조했지만 지금 정치권은 사실상 협치 분위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문 대통령이 높은 국정 지지율을 믿고 뚝심 하나로 밀고 나가기에는 커다란 벽을 만난 셈이다. 국민 지지와 국회 지지 모두를 얻어야 `일자리 대통령`이란 타이틀도 따라 올 수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21일 문재인 대통령, 일자리위원회 위촉장 수여식>